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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성작가의 추천사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깎아내려서 그를 칭찬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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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7년의 밤]을 최근에서야 읽었다. 2011년에 나온 책이니 근 10년이 되어가는 책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세월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준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휴대폰을 접었다” 같은 표현만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우리사회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갈 길이 먼지를 알려준 것은 책 뒤에 등장한 박범신이라는 유명 남성작가의 추천사였다.

박범신은 내 부모님 세대에 해당하는 1946년생 작가다. 그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글쓰기로 먹고산 세월은 내 나이와 맞먹는다. 각종 유명한 문학상을 휩쓸면서 문단의 ‘어른’ 노릇을 할 만한 나이와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물론 2020년의 시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질 것이다. 한국 문단에서 그 또래의 많은 남성작가들이 어떤 권력을 행사하며 몹쓸짓을 했는지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세하게 배우게 되었다. 박범신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자신보다 20년 젊은 여성작가의 책에 쓴 추천사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정유정 작가를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인 ‘아마존’이 떠오른다. 세계문학상 수작상 [내 심장을 쏴라]는 그녀가 한국문학 판으로 입성하며 힘차게 불어 젖힌 일종의 진군나팔 같은 것이었다.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가,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7년의 밤]은 강력한 전사로서의 그녀가 가진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결정판’처럼 읽힌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내장된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인간 본질을 이만큰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야기로 결집해내는 것은 문단의 ‘아마존’이 아니고선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약한 현대인들의 섬세한 내면을 감성적 이미지에 의존해 표출해온,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소설’들이 아직 종언을 고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 정유정이 보여주는 문학적 성실성, 역동적 서사, 통 큰 어필은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여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 (강조는 ‘필자’)

-박범신(소설가)


그는 추천사에서 정유정이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다고 했다. 박범신에게 한국의 작가들은 작품이 아니라 젠더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흔히 어떤 함정들에 빠진다. 그 함정들이란 뭘까? 바로 앞에 등장한 문장이 힌트가 될 수 있다. “뒤돌아보지 않는 힘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가 그 함정들에 빠지지 않게 해줬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게 “여성작가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즉, 생각을 곱씹는 문장, 압도적이지 않은 서사, 취재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소설작법이 여성작가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물론 그가 아는 한 줌 되는 한국문단의 여성작가(나는 그가 정말로 ‘여성작가’라고 썼는지 살짝 의심이 든다. ‘여류작가’라고 한 것을 출판사에서 고쳐주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내 의심이다)들의 특징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가들은 많은 팬을 가진 엄연한 인기 작가들이다. 그런데 박범신은 그 작가들의 글쓰기를 젠더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물론 누구나 평가할 수 있다. 나도 이 글을 통해서 박범신의 추천사를 평가하는 중이니까. 하지만 박범신은 그걸 별도의 평론을 통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들 중에 속한 작가의 책을 추천하는 말을 통해 하고 있다. 일단 “여성작가들”을 젠더로 묶어서 수준이 낮다고 모욕을 한 후에 ‘하지만 정유정은 그렇지 않다’며 ‘칭찬’을 하는 거다. 이건 오바마가 처음 등장했을 때 “(흑인 정치인 답지 않게) 깨끗하다”고 했던 어느 백인 정치인의 ‘칭찬’과 같은 화법이다(이 말을 한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조 바이든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깎아내려서 그를 칭찬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다.

버락 오바마

출처lednichenkoolga, CC BY 2.0

그뿐 아니다. 박범신은 “나약한 현대인의 내면”에 매달렸던 90년대 소설이 아직도 계속되는데 정유정은 그와 달리 성실하고, 역동적이고 통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 여성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게 90년대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 대목 역시 여성작가들에 대해 쓴 것으로 읽힌다. “통이 크다”는 건 “남자 같다”는 말을 하려는 것임을 누구나 안다. 내 눈에 ‘7년의 밤’은 스릴러 영화적 구성을 가진 책일 뿐인데, 그게 박범신의 눈에는 통이 크고 남성적인 것으로 보이는 거다.

박범신이 비판하는 (정유정을 제외한) 여성작가들의 글을 옹호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장 내 머리에 떠오르는, 그 그룹에 속한 몇몇 작가들의 글을 생각해보면 나는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청준이나, 고은, 박범신 같은 한국의 유명 남성작가들의 작품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개인의 취향 문제다.

하지만 박범신은 그 얘기를 자신이 비하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의 책 뒤에 떡하니 붙여놓았다는 게 다르다. 이건 권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처음 이 ‘추천사’를 읽으면서 ‘아무리 70대의 유명 작가라고 해도 이런 꼰대같은 말을 추천사로 쓸만큼 우리나라 문단이 만만한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문단 내의 남성권력’의 현현(顯現)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작가들을 비하하는 말을 여성작가의 책 뒤에 써 붙여둘 수 있는 권력.

그런데 사실 이 추천사의 압권은 따로 있다. 정유정이 다른 여성작가들과 다르다는 걸 말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인 아마존”이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소설가는 이렇게 낡은 비유는 써서는 안된다. 닳고 닳은 표현을 비유를 쓰는 건 글쟁이의 자존심이 허락해서는 안될 문제다. 그런데 박범신은 그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지 추천사 도입에 쓰고, 결말에 또 한 번 사용한다. 정유정은 그냥 “여전사 아마존”도 아니고 “괴물 같은” 소설(의) 아마존이란다.

아마조네스(단수형: 아마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이다. ‘아마존’의 어원은 ‘가슴 없음’에서 유래했다.

출처작가 Pierre-Eugène-Emile Hébert의 1860년 작, 퍼블릭 도메인

박범신의 생각에는 젖가슴을 가진 종류의 인간은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작업도 창의 던지는 일처럼 가슴이 방해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한 여성작가의 능력을 칭찬하기 위해서 아마조네스를 비유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글쓰기는 남성의 일이고, 남성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여성이 글쓰기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아마조네스처럼) 자신의 여성성의 일부를 도려내거나 전적으로 거부해야 하며, 그 결과 남성에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다. 박범신은 그렇게 하는 여성작가에게 자신이 추천사를 허락해주는 것이고, 그걸 하사하는 대가로 다른 여성작가들의 뺨을 공개적으로 때릴 지면을 얻어내는 거다.

여성이 줄기차게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은 성범죄자들의 개별적인 일탈행위만이 아니다. 성범죄는 눈에 띄는 문제고 실체가 분명한 범죄라는 점에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표준이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여성들의 숨이 막히는 진짜 이유는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면 여성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 정해진 룰대로 작동하면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몇 배로 뛰어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박범신의 주장처럼 세상의 표준이 남성이고, ‘디폴트'(default; 기본 설정(값))의 인간도 남성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여성은 절대로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성공한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심지어 ‘가슴 하나를 도려내도’ 그저 여성 중의 으뜸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참고로, 아마존의 어원은 ‘가슴 없음’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에서 ‘a’, ‘an’, ‘am’이라는 접두사가 쓰이면, ~이 없다는 의미인데, ‘mazos’는 가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류층 아마존은 활을 쏘기 위해 오른쪽 가슴을, 하층 아마존은 방패를 들기 위해 왼쪽 가슴을 잘랐다고 한다. (편집자)↩

박범신의 추천사는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가 사용한 아마조네스 비유가 그랬고, 그의 여성작가 비하가 그랬고, 이런 비하적인 글이 추천사로 읽혔다는 사실이 그랬다. 적어도 2011년에는 그랬던 것 같다. 9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이 조금은, 그러나 분명하게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 약간의 희망을 준다. 하지만 그 희망은 안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그만큼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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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 by. 박상현 초대필자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메디아티 콘텐트랩장이었고, 미국 정치뉴스에 관심을 갖고 짬짬이 글을 썼습니다. 현재는 코드의 미디어디렉터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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