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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은 왜 상장하지 않았을까

조회수 2019. 12. 16. 16: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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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인수합병은 국내 유니콘 기업이 향후 직면할 딜레마를 보여준다.

연말 스타트업 비즈니스와 딜 업계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우아한형제들(이하 ‘배민’)의 매각이다. 그러나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가 아닌 M&A(Merger & Acquisition; 인수합병) 방식의 매각을 선택한 것 때문에 업계에서는 의견이 다소 분분한 편이다. 

실제로 투자자 입장에서 상당히 재미가 떨어진 한국 시장에 배민과 같은 유니콘이 상장하는 것은 의미가 상당히 크다. 단숨에 코스닥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다른 스타트업들의 좋은 모범이 될 수도 있었던 터였다.

때문에 배민이 기업공개 대신 M&A 를 선택한 것은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을 잘 살펴보면 배민이 사실 국내 상장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또한 이는 배민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유니콘 기업들 전체가 향후 직면하게 될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는 문제를 보여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그들의 성장을 위해 현금을 공급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그 반대급부로 지분을 공급받고, 이후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을 나눠 갖는 한편 ‘엑시트’(Exit; 창업자 입장에선 ‘출구 전략’,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 회수’)을 통한 자본이익 취득을 그 목표로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창업주의 지분 희석이다. 이는 모든 스타트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지분 희석으로 인한 경영진의 딜레마

배민의 경우 몇 가지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창업자들의 지분은 13%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올해 상장한 우버의 창업자 지분으로 추정되는 24% 보다 10%p 정도 낮은 수준이다. 물론 이는 지난해 말 세쿼이아와 CIC가 중심이 된 3,600억 규모의 대규모 투자가 집행되며 급격히 낮아진 것이긴 하지만, 외부에서의 투자로 인한 지분 희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 해당한다.

이렇게 대주주 지분이 많이 희석된 경우, IPO를 진행할 시 공모주 물량에 대해 투자자들과 창업자 사이에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IPO에는 신주를 추가로 발행하여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는 신주발행 방식과 기존 주주들 보유 지분을 엑시트(Exit)하는 구주매출, 그리고 이 둘을 혼합하는 방식이 있는데, 대주주 지분이 희석된 상황에서의 IPO는 창업주와 투자자 모두에게 일종의 딜레마 상황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각종 신사업 투자와 동남아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김봉진 대표의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 방식의 IPO를 활용할 경우 상당량의 신규 자본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추가적인 지분 희석을 감내해야만 한다. 반대로 구주 매출을 활용하게 될 경우 창업자와 투자자는 막대한 재무적 이득을 거두겠지만, 배민의 미래 투자 자원 마련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두 방식을 혼합할 경우 신주 물량의 비중 때문에 공개 절차가 늘어질 위험이 있다.

출처: 우아한형제들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합작 투자(조인트 벤처) 구조

때문에 배민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가치를 높게 책정하는 다른 모기업을 찾아 엑시트(Exit)를 수행하고 그 모기업의 배민에 대한 투자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시장 상장시의 구조적 불리함에도 그 원인이 일부 존재한다.

한국 시장 상장의 구조적 불리함

배민의 미래 핵심 경쟁력은, 다들 아시겠지만, 동남아를 위시한 신시장 진출 및 AI를 위시한 딥 테크(Deep-Tech)에 있다. 실제로 배민을 인수한 딜리버리 히어로는 배민의 주요 기술 중 하나인 가짜 리뷰 판독 AI 및 자율주행 배달 로봇 개발 등의 신사업에 많은 가치를 부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가치의 부여가 한국 시장 상장시에는 상당히 절하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는 배민이 그 자체만으로 영국의 딜리버루나 미국의 도어대쉬와도 견줄 만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 상장할 경우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은 한국 주식시장에서만 자본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족쇄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딜리버리히어로는 독일에 상장돼 있는데,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일 증시의 시가총액은 약 2.1조 달러로 한국의 1.3조 달러 대비 60% 이상 큰 시장이다. 프랑크푸르트 거래소 역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본이 몰려드는 허브이다.

출처: 딜리버리히어로 (‘배민’ 합성)
글로벌 비즈니스 지도

때문에 한국 시장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확장을 노리는 배민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더 높이 평가받고, 더 많은 자본 획득의 기회가 있는 시장에 기대는 것이 당연히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라더니 게르만 민족이 되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배민 인수보다는 자체 서비스 출시에 바빴거나 지배구조 등 각종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인수를 검토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결국, 배민의 엑시트(Exit)는 현재 새로이 성장하는 산업을 기존의 레거시 대기업들이 품을 수도 없고,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참여시켜서 시장의 발전을 한 단계 도모할 수도 없는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 준 것이다. 앞일이야 알 수 없다지만, 배민의 엑시트(Exit)를 지켜보는 많은 스타트업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발달 없이는 아무리 제2, 제3의 배민이 등장한다 한들 유사한 상황만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다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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