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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하면 어때!

다회용품 쓰면 눈치봐야 하나요... 그게 구질구질한가요...
슬로우뉴스 작성일자2019.04.17. | 1,504  view

아침에 출근하면 언니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믹스 한 봉지를 종이컵에 타서 후후 불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진배야 너도 한잔할래? 언니들이 물으면 내 전용 스테인리스 컵을 건넨다. 언니 난 여기다 부탁해요, 하고는 같이 티타임을 한다. 3년째다. 그런데 이런 티타임을 할 때마다 언니들 눈치를 본다. 혹시 날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겁이 난다.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갈 때도 그렇다. 라떼 두잔에 아메리카노 한잔, 진배야 넌 뭐 마실래? 그러면 난 이미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손에 쥐고 있다. “언니 전 텀블에 받을게요.” 그러면서도 눈치를 본다. 또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딱히 이유는 모르겠는데 무리 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에 내가 불편함을 끼치는 사람이 된 건 아닌가 고민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남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웠다. ‘괜히 주제도 못 되는 게 어쭙잖게 남을 가르치려 한다고 느끼게 하면 어쩌지.’ 나는 그런 게 너무 걱정스러웠다. 음식물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어딨어요?” 하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썼다. 뭔가 그래야 내가 덜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생리대를 빨아 쓰고,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내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바지 한 벌에 티셔츠 두 장으로 한 계절을 살았다. 그런 나를 남편은 답답해했고 옷을 사서 내 옷장에 강제로 걸어두었다. 갑자기 옷이 생겼으니 버릴 수는 없고 입어야지. 새 옷을 입고 출근했는데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너무 이쁘다며,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칭찬해줬다. 그동안은 정말 보고 있기 힘들었다고도 말해줬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소신은 나를 없어 보이게 만드는구나. 나는 그다음 날부터 마구마구 옷을 사기 시작했다.

그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을 때였는데, 점심을 팀원들과 밖에서 사 먹으면 도시락이 남았다. 저녁에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데 자꾸 가방 속에 있는 도시락이 신경 쓰였다. 고기를 먹고 다들 공깃밥을 시키려 하길래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죄송한데 제가 가방에 공깃밥이 있어서요.
이거 먹으면 안 될까요?”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굳었다. 식당에 와서 무슨 매너냐고 한소리씩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개념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와 도시락을 버렸다. 나는 그날로부터 며칠을 부끄러워했다.

가방에 늘 밀폐 용기를 들고 다녔는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음식이 남았다.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어차피 이거 버리실 거면 제가 좀 싸가도 될까요?”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내게 그랬다. 아, 이거 얼마나 된다고…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뛴다.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 내가 돈이 없어서가 아닌데, 버리는 것보다는 싸서 오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 건데, 왜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하지. 내 삶은 왜 이렇지.

그런 일화들이 내게는 수없이 많고, 나는 아직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추운 겨울날, 평소에는 뜨거운 물주머니를 들고 다니다가도 사람들 있는 곳에선 꺼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 핫팩 좋은 거 많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내가 구질구질해 보일까 봐. 사람들 앞에서 다회용품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좀 전에 꽃시장을 다녀왔다. 구입한 품목들을 비닐에 담아주시길래, 준비해간 종이봉투를 꺼내 이곳에 담아주시면 안 되냐 부탁했다. 꽃집 주인은 흔쾌히 종이봉투에 담아주셨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이 나왔는데, 전통시장에서 장 볼 때 천 가방에 담아달라 그러면 이제는 상인들이 잘 담아주신단다.

과거에는 비닐이 더 깨끗하다며 한마디씩 했고, 주변인들에게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는데, 요즘엔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기쁘다고 했다. 꽃집 주인은 이어서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고.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기업에서도 무분별하게 플라스틱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던 그 사람이 생각나면서 내 안에도 무언가 힘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겁이 난다. 난 그저 모자란 사람이고, 내가 좋아서 다회용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존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 봐, 나는 아직도 눈치를 본다. 그런데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 남들에게 나처럼 다회용품을 쓰라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좀 구질구질해 보여도 그렇게 꽉 막힌 애는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거다. 내 행동이 그렇게 많이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참고로 과거에 나한테 구질구질하다고 말했던 친구가 지금의 남편이다. 남친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아나. 지금이야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나는 그날 이후로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다. 그런데도 내 삶이 여전히 구질구질한 거 같아서, 매일같이 내 하루를 돌아본다. 이 상처는 언제쯤 극복될 수 있을까. 없어 보이면 어때, 진짜 없는데! 구질구질하면 어때, 진짜 구질한데 뭐! 언제쯤 이렇게 호쾌하게 받아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그냥 이런 생각들을 밖에다 내놓기로 했다. 조금씩 내놓으면 무뎌지지 않을까 해서 이런 글도 쓴다.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당신을 해치지 않겠다. 그러니 내게 유난이니 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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