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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대신 시민 행복?

왜 인프라가 중요한가. 왜 인프라와 행복은 서로 별개가 아닌가.

작년 1월에 작고하신 외조모께서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물론 84세의 고령에 중대질환이 발병한 것 자체가 문제였겠지만, 3차 의료기관이 너무 멀었던 관계로 설마 하고 최초로 방문했던 2차 의료기관에서 심근경색을 밝히지 못하고 거의 이틀간 제대로 된 처치를 하지 못했던 것이 두 번째 화근이었다. 발병하신 지 사흘 만에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셨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어 스텐트 삽관이 성공해도 소생 여부가 불투명했던 시점이었고, 결국 수술대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만약 고인께서 서울에 계시다가 아프셨으면 어떻게 되셨을까. 아마 바로 119에 신고가 들어갔을 것이고, 구급차가 번개같이 출동하여 환자를 싣고 가장 가까운 3차 의료기관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물론 아직 그 수가 부족하긴 하지만, 서울에는 많은 숫자의 대학병원과 수준 높은 의료진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필요시 타 병원으로 이송되는 절차도 지방보다는 신속했을 것이고 적어도 수술대 위에서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지막을 맞으셨을지도 모른다.

인프라가 없는 삶이란 이렇게 목숨까지 오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어제(29일)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로써 남부내륙철도, 새만금국제공황, 충북선 고속화 등의 대형 토목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많은 이들이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 이하 ‘SOC’) 예비타당성(‘예타’) 면제에만 귀를 기울이지만, 이외에도 이번 계획에는 각 지역별 핵심 육성산업 및 의료 취약지역에 대한 의료기관 확대 설치 등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 확충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 반응은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쓸모없는 SOC가 많이 포함되었다는 힐난부터 토건족에게 정부가 또 고개를 숙였다, “한국은 인프라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예산을) 시민 행복에 써야”한다 등등 그 양상도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정부가 지금보다 더 일찍이 인프라 확충에 노력을 기울여 지방에 3차 공공의료기관을 더 많이 지었었다면 외조모께서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보다 더욱 행복했을 수도 있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 명절에나마 방문할 수조차 없는 부모에게 이제 전화도 한 통 할 수 없는 자녀의 마음이 얼마나 서럽고 찢어지는지 ‘인프라 대신 시민 행복’을 강조했던 젊은 정치인이 과연 알기나 할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굶어 죽지는 않으니 행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인가.

만약 신분당선이 적시에 개통되지 않았다면 작년 가을에 결혼하여 수원에서 강남으로 통근하는 내 친구의 행복도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신분당선 없이 수원과 강남을 광역버스에만 의존하여 오가는 것은 퇴근길 서울 9호선 급행이나 2호선에 버금가는 아수라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쾌적하고 빠른 신분당선 덕에 내 친구는 배우자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고, 스트레스도 줄어들었을 테니 아마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그 친구는 대기업의 정규직 직원이니 더 이상 행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신분당선

출처 : Minseong Kim, CC BY SA 4.0

반면에 반대편 고양시에서는 백석역 온수관 파열로 인해 한 아버지가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고통스럽게 숨졌다. 이 사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결국 당시의 부실 시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프라에 대한 관리와 유지보수 투자가 그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인프라에 소홀한 탓에 한 가족이 불행의 나락에 빠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 대상도 아니고 입시와 이해 관계도 없으며, 사지 멀쩡하고 먹고 살 만 했으니 더 행복할 자격이 없는가.

인프라가 국민 행복과 직결된다는 데에 더 증거가 필요할까.

사회간접자본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설회사 돈잔치라고, 또는 무엇무엇은 쓸모가 없다고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건설회사 돈잔치라고 해도 그 잔칫상에 초대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이들이 늘어나거나 발생한 소득으로 여기저기서 소비를 할 것이며, 그 중에는 취약계층인 자영업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경제 상황 개선으로 인한 행복도 증가는 행복이 아니라 위선적인 무엇일까. 결국 정부는 토건정책을 통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관리하고 이것이 국민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 젊은 진보 정치인은 경기의 급격한 변동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불행의 나락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한 치도 모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물론 사회적 약자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기본 사고에야 동감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바라보는 부분만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뭐 몰라서 그랬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르면 공부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본인도 여성주의 잘 모르는 남성들에게 공부 하라고 일갈 많이 하셨을 텐데 왜 본인 지적 수양은 뒷전이신가. 그렇게 선택적으로 게으르면 안 된다.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토건을 경제 ‘성장’ 전략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보좌진과 기획재정부의 관료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며, 이들은 토건이 경기 관리의 수단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정책을 일관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오해를 하거나 함부로 무시하지는 말자는 소리이다. 경기 변동의 단기 최적화를 위해서 재정 지출은 필수다. 국민 행복? 이를 게을리 하는 정부야말로 국민 행복을 망치는 정부이다. 자신이 바라보는 부분만 어두운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담으로, 금융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작년의 절반 수준까지 하향 전망되고 있다. 한국 수출의 기둥인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반 토막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은, 결국 올해 수출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좋든 싫든 수출에 경제를 의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큰 수출 품목이 망가지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토건족에게 돈잔치를 연다?

그 돈잔치라도 없으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 빠질지도 좀 생각해주는 정치인이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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