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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변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 윤덕환 인터뷰

2019의 트렌드 정리와 분석, 그리고 변화를 위한 조건

나는 여전히 트렌드에 무지하고, 때로는 트렌드에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내 감수성의 뿌리는 여전히 90년대에 있고, 내 온라인 정체성의 ‘시효’는 아마도 2010년대 초반까지였던 것 같다. 2010년 중반 이후로는 점점 더 시대에 겉돈다. 

트렌드를 그저 단순히 ‘유행’이나 ‘대중 소비심리’로 한정하지 않고, 당대의 사회와 경제, 문화를 꿰뚫는 시대정신으로까지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리면, 트렌드와의 불화 혹은 트렌드에 대한 의식적인 무시는 현명하지 않다. 시대에 ‘아부’할 필요는 없지만, 시대를 ‘무시’할 필요도 없다. 

그 시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시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욕망, 공동체의 소망을 탐구하는 일은 어쩌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실천해야 할 최소한이기도 하다. 그저 고립한 외로운 개체가 아니라 ‘그때 거기’에서 함께 꿈꾸기를 소망한 ‘우리’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그래야 ‘스스로’ 변할 수 있고, 그래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트렌드 연구자로서 해마다 숫자가 바뀌는 ‘대한민국 트렌드’를 써내는 윤덕환 박사를 다시 만났다. 2019의 트렌드에 관해 듣기 위해서 그리고 2019년과 불화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변화하고, 함께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서.

  • 인터뷰이: 윤덕환 박사
  • 인터뷰어: 민노씨
  • 2019년 1월 18일 합정 인근 카페 (+ 이후 전화와 이메일로 보충)

윤덕환 박사(심리학, 마크로밀 엠브레인 이사)


문제는 ‘공간’이다  

= 두 번째 인터뷰다. 

그러게.

= 새 책(‘2019 대한민국 트렌드’) 쓰느라 고생했다. 

해마다 하는 일이다.

= 책 서문을 보면 ‘공간’을 강조하고 있는데.

트렌드 변화는 여러 영역에서 일어난다. 우리(트렌드 연구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행동 변화와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심리적 공간을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

= 행동의 변화와 그 변화가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심리적 공간’?

그렇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사회심리학의 아버지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가 제안한 ‘생활공간(Life Space)’이라는 개념이다. 레빈은 인간 행동을 그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결과(함수)라고 봤다. 그리고 현대 사회심리학의 토대가 되는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회심리학의 선구자 쿠르트 레빈 (Kurt Lewin, 1890년 9월 9일 – 1947년 2월 12일)

source : 불명

= ‘생활공간’이라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좀 더 그 개념을 설명하면?

레빈의 생활공간은 객관적으로 실존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떤 개인이 그 자신을 둘러싼 대상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으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

= 책을 보면 저자들(마크로밀 엠브레인)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의 생활공간을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렇다.


  1. 생산활동을 하는 회사/조직생활의 공간
  2. 일상생활의 공간
  3. 문화생활의 공간
  4. 한국사회라는 가장 큰 공간.
source : [2019 대한민국 트렌드]

우선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발현되는 ‘직장’이나 ‘조직’이라는 공간이 있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속에서의 내가 투영되는 ‘일상적인 공간(가정에서의 공간)’이 있고, 자신의 이상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인 공간’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끝으로 이 모든 것을 시공간적으로 포괄하며 국민 혹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발현되는 ‘한국(사회)’이라는 공간이 있다.

= 본격적인 인터뷰 전에 하나만. 중앙일보의 ‘인구 1위 오른 50대, 노후 빈곤 위험하다’는 기획 기사를 보면, 사례로 월 1,200만 원 수입의 맞벌이 부부가 나온다. 기자도 일종의 트렌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왜 이런 ‘공감 파괴’ 기사가 나올까.

기자들의 현실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그 기사가 인구에 회자할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의도했을 것으로 본다. (= 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이 지지하는 계층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기사니까. 대한민국 3%를 위한 신문사라는 정체성.

월 1,200만 원 버는 50대 맞벌이 부부의 노후 빈곤을 염려하는 중앙일보 기사 중에서. (강조는 편집자)

source : 중앙일보

변화의 조건

= 사회적인 역할이 공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면서, 소비자의 행동 변화, 특히 네 가지 맥락, 즉 국민(한국), 직업인(직장), 생활인(일상생활), 시민(문화생활)이라는 역할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행동이 변화하는지 관찰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또 중요한 개념이 있는지.

‘시간’이다. 가령 오픈마켓 장바구니에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담아두는 행위는 경제적인 행위인가, 아닌가?

= 관점에서 따라서는 경제활동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대개 어떤 행위의 준비(예비)행위는 실질적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형법은 많은 범죄를 규정하지만, 살인죄 등과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예비행위(준비행위)를 처벌(형법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로 평가)하지 않는데.

과거보다 점점 더 돈보다 ‘시간’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돈’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점점 높은 가치를 가지는 자원을 어떻게 쓰는가도 중요하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행위는 소비행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점점 더 재화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소비자의 선택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간과 관심이라는 자원이 ‘돈’이라는 자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 중요하고 제한된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 인간의 행동 변화가 네 가지 맥락에서 바뀐다고 이야기했는데, 관련해서, 어디서 들었는지는 이젠 기억나지 않는데, 한 일본의 경제학자가 인간은 쓰는 시간을 바꾸고, 사는 공간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중에서 가장 쓸데없는 게 ‘새로운 결심’이라고 말했다고 하는 게 떠오른다. 어떻게 생각하나.

오마에 겐이치(Omae Kenichi, 大前硏一)가 한 말이다. 중요한 건 세 가지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 ‘프레지던트’, 2005년 1월 11일)

= 세 가지를 동시에 바꾸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래서 우선순위가 필요한 것 같다. 시간, 공간,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인데. 만나는 사람은 3순위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을 바꾸면 만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바뀌니까.

=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 중에서 어떤 게 더 우선순위인가.

일률적인 것 같지 않다. 시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있고, 공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 윤 박사 경우엔 어땠나.

내 경우에는 아침에 쓰는 시간을 바꿨다. 기존에는 조금 일찍 출근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을 최소한 ‘2시간 반’ 이상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시간에 책도 읽고, 구상하고, 글도 쓰고. 신문 읽고, 라디오 듣고, 공부도 하고, 전화로 일본어 수업도 듣는다.

= 그래서 몇 시에 출근한다는 소린가.

6시 30분에서 7시쯤.

= (…..)

(…..)

= 그랬더니 어떤 변화가 생겼나.

기존에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저녁 남는 시간에 책을 쓰거나 하는 생산적인 일, 즉 ‘아웃풋’ 활동을 했다. 공부하는 ‘인풋’ 시간을 일과 이후로 미뤘더니 피곤해서 안 하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쫓겨서 쉬고 싶더라. 그런데 ‘인풋’하는 시간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으니 내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 시간을 바꿔 쓴지는 얼마나 됐나.

3년 정도. 박사 학위받고 나서 바꿨다.

= 심리적인 효과 말고, 더 구체적으로 ‘지표’상 바뀐 게 있다면.

글을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정보를 수용하는 감수성이 더 예민해졌달까. 예전에는 정보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시간을 앞당겨 쓰면서 정보를 나 자신이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량이 생겼달까.

= 통상 시간을 바꾸는 게 어려울까, 공간을 바꾸는 게 어려울까. 아니면 사람을 바꾸는 게 어려울까.

주변에서 이야기해보면, 시간을 바꾸는 걸 더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 공간을 바꾸는 건 상대적으로 쉽게 느끼는 것 같다. 개인차가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을 바꾸는 건 인위적으로 계획할 필요가 없고, 그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

= 공간을 바꿨다는 건 좀 막연하고 추상적인데, 구체적인 예를 들면.

주말에 회사를 나가곤 했는데 (= 왜?) 잔업도 하고, 기타 등등…. 지금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회사에 가지 않고, 학교(집에서 가까운 모교)에 간다. 학교에 가면 훨씬 더 집중이 잘 된다.

= 사립대학을 가깝다고 (근처 사는 주민이) 들어갈 수 있나.

돈을 내면 들어갈 수 있다. (= 얼만가?) 1년에 10만 원. 고려대 기준이고, 이용하는 시설은 학교 전 시설. 다만, 졸업생 기준이다.

= 여담인데, 학교 가면 옛날 생각 안 나나.

전혀 안 난다. 학교를 굉장히 오래 다녔는데, 9년째 책을 써오고 있는데, 계속 학교에 갔기 때문에…. 계속 다녀왔던 공간이라서 익숙하고, 정리가 더 잘 된다. 항상 가는 대학원 도서관의 그 자리에서 공부하고 일한다.

대학 도서관

source : 고려대

= 오마에 겐이치의 말처럼 정말 ‘결심’은 부질없을까.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게 오마에 겐이치의 지론이다. ‘결심이 부질없다’는 건 그 소신을 다소 강조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의지와 행동, 인간의 의식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상호작용한다. 바꾼다는 결심이 없으면 환경이 변화할 수는 없으니까. 인간의 의지 요인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 인터뷰하면서 “책의 방향성”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썼다. 그 말을 듣다 보니 트렌드 연구자의 ‘목적’이 궁금하다. 그것은 ‘행동의 변화’를 초래하는 계몽성이랄까, 목적성까지를 포함하나. 즉, 소비자 행동을 ‘유도’하거나 ‘계몽’하려는 철학적인 지향성까지를 포함하나. 아니면 그 ‘행동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까지인가.

계몽적 목적성은 전혀 없다. 우리는 단지 소비자 행동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명사들의 책 읽기]라는 방송에 출연한 적 있다. 해당 TV쇼의 진행자가 “요즘은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을 밀어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야기인즉슨, 너무 유튜브에 몰입하고, 소셜미디어에 중독되면서 정작 자기 주변사람들을 챙기지 못하고 밀어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러니 좋지 않다고. 일종의 가치평가를 한 거다. TV 토론의 진행자로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비자행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행동에 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왜 유튜브에 몰입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트렌드를 분석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 가치판단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영역은?

자연인으로서는 누구나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트렌드 연구자로선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나도 자연인으로서는 가치를 판단한다. 다만, 가치판단에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고, 그 가치판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특히 공적인 영역, 가령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는 더 엄격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근거가 따르지 않을 때에는 그 가치판단은 소비자 개인에게 억압이 될 수 있고, 기업에도 부당한 규제가 될 수 있다.

= 시간 공간 바꾸는 얘기를 조금 더 해보면, 나 같은 사람은?

공간을 바꾸면 좋을 것 같다.

=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 대부분은 생활공간을 자신의 의지나 계획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히 경제적) 선택권이 없다.

인정한다. 대부분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럴 텐데, 최소한 머무는 공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을 거다. 그런 공간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바꿔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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