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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컬링팀 애칭으로 '앙 기모띠' 권하는 사회

조회수 2018. 2. 23.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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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성희롱에 모두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참 끔찍한 댓글 풍경..

‘앙 기모띠’는 아프리카 TV BJ 철구가 그의 방송을 통해 유행시킨 언어라고 알려져 있다. 어떤 ‘잘알못'(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꾸준히 나무위키 등에 실어왔다.

출처: 나무위키
나무위키 표제어 ‘기모찌’ 설명 중 ‘4. 앙 기모띠’ 항목 에서

해당 문서 등을 본다면 그저 유행하는 감탄사인가 싶을 정도의 이 표현은 실상 어감이나 쓰여온 실제 내력을 살피면 전형적으로 ‘일본 포르노를 음지에서 소비하던 한국 대중이 일반적인 일본어를 포르노 언어로 이해하고 퍼뜨리는 하위문화 현상’에 속한다. 구글로 찾을 수 있는 예시만 해도 2011년인데 이는 해당 BJ 가 그 표현을 쓰기 전의 일이다.

출처: 구글
구글 검색 화면 캡처

‘앙 기모띠’는 BJ 철구 같은 인물이 책임감 없이 지속해서 활용한 데다 어린 집단에서도 또래의 소속감을 확보하는 ‘은어’처럼 널리 활용되어 오면서 점차 대다수 남성 집단에서 흔히 쓰는 ‘성적 농담'(이른바 ‘섹드립’)으로 정착했다. ‘앙 기모띠’는 이런 문화적 맥락을 아는 여성에게 성적 수치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맥락을 아는 남성이 이 표현을 여성을 대상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명백한 언어적 성희롱이다.

누군가는 이 표현을 언어적 성희롱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언어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병들고,  죽는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한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 그 문화적 맥락 속에서 '앙 기모띠'가 어떤 의미로, 어떤 의도로 사용되는 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기분 좋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명백한 성적 의도를 가진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사용된다. 아닌 경우가 있다면 알려달라. 그런데도 언어적 성희롱이 아니라고? 무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억지까지 용서하긴 어렵다. ('18일 2월 23일 오후 2시 45분경 본문 보충. "누군가는 ~ 용서하긴 어렵다."까지)
출처: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앙 기모띠’, 선생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박동우, ’17. 7. 11.) 중에서

모두 즐거운 ‘댓글 성희롱 대잔치’ 

그런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컬링팀이 큰 인기를 끌게 되자 MBC 페이스북 담당자는 ‘마늘소녀가 아닌 다른 애칭을 짓자’며 공모를 제안했다.

출처: MBC 페이스북 페이지
MBC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 캡처

그리고 항상 동물적 감각으로 ‘히트 뉴스’를 ‘펌질’ 재생산하는 위키트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해당 공모전을 소개하는데, 그 베스트 댓글은 다름 아닌 ‘앙 기모띠’에 착안한 말장난이었다.

출처: 위키트리 페이스북 페이지
위키트리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 캡처

현재 시각(2월 22일 오후 5시 40분경) 해당 댓글은 6천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고 있다. 남성 댓글러 대다수는 낄낄대는 분위기고, 여성 댓글러 다수도 이것이 언어적 성희롱이라는 걸 모르는 지 웃음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난 이 소식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누군가 즐거운 소식이라 여겨 소개한 ‘클리앙’ 커뮤니티 게시판 링크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이 글의 초안 메모를 처음 썼을 당시(22일 오전) 클리앙 커뮤니티 게시판 게시물에는 69개의 댓글이 달리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중 해당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뉘앙스가 있는 줄 모르고 그랬다’ 라고 발뺌하기도 어려운 댓글마저 초성 웃음 대잔치의 소용돌이 속에 환호처럼 묻어나올 뿐이었다.

출처: 클리앙 게시물
클리앙에 위키트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캡처해 소개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

클리앙의 ‘즐겁고, 화기애애’한 댓글 풍경은 ‘앙 기모띠’란 표현의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하면 나오기 힘든 반응으로 보인다. 그러니 위키트리 페북 페이지 댓글 풍경도 클리앙 댓글 풍경도 모두 언어적 성희롱에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유행어로 진화하는 ‘여성 폄하’ 

현재 한국 문화계는 미투 운동의 회오리 속에서 예전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쉬쉬하고 있던 성범죄의 앞뒤가 처절한 용기와 고백으로 폭로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클리앙 커뮤니티 같은 곳도 그런 분위기에 다수 이용자가 지지와 격려를 표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기 일과 동떨어진 것처럼 여기기에는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폄하가 얼마나 지독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또 그것이 과거의 구습이 아니라 오히려 형태를 바꿔가며 새로운 유행으로 힘을 얻고 있는지에 대해 동시에 혹은 먼저 살펴볼 일이다.

출처: Aware Helpline

멋진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응원에 대해 여성 폄하 그것도 매우 저열한 포르노성 어휘를 팀 애칭으로 내밀고, 그것이 무척 괜찮은 센스라고 여기는 집단행동에 난 남성의 한사람으로서 고개를 떨구고 싶어졌다.

제발 그러지 말자. ‘앙 기모띠’는 지금처럼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 ‘우리는 그런 뜻인 줄 몰랐다’든지 ‘그런 뜻으로 쓰지 않는데 프로 불편러냐’ 식 변명과 억지로 지켜야 할 표현이 아니다.

이런 언어습관이 제2 제3의 고은, 이윤택을 만들지 말라는 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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