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감경사유가 된 김기춘의 훈장

조회수 2017. 8. 24. 21: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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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1심 판결 집중분석

지난 7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제1심 선고를 했다.

  •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징역 3년 형
  •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징역 2년 형
  •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각각 징역 1년 6개월 형
  •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징역 1년 6월 형에 집행유예 2년
  •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징역 1년 형에 집행유예 2년 (이하 호칭 생략)
출처: 민중의소리(사진 제공)
이른바 ‘문화에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여론의 관심은 조윤선 전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집중됐다.

여론은 판결에 일제히 반발했다. 가장 첨예한 논점은 다음 세 가지였다.

  1.   김기춘에 대한 형량
  2.   조윤선에 대한 일부 무죄 선고 및 집행유예 선고
  3.   박근혜에 대한 공범 성립 부인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는 이 판결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고,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발제자로 나서 판결문이 채택한 법리를 반박했다.

첫째, 박근혜는 지원금·보조금 집행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등 “단순 의견 표명에 그쳤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명령만 합법적이라고 판단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문화예술기금 지원 배제 절차는 정무수석실의 검토를 거치는 체계였다. 조윤선이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김상률은 보고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죄가 인정된 것과도 모순된다.

셋째,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익추구’ 목적의 다른 국정농단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권력자들에게 “성향에 따라 국민을 분류해 지원 여부를 정하는 정도는 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피고인들은 현재 모두 항소를 제기했고, 특검도 항소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이 재판은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3부(부장판사 조영철)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나는 22일 하주희 변호사를 찾아 ‘블랙리스트’ 1심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사안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안들에 어떻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죄가 적용되는지 일단 간단히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1.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現 문체부 제2차관)·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에 대한 사직 강요 (유죄)
  2.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에 대한 사직 강요 (무죄)
  3.  문체부 산하 기관에 ‘좌파단체 지원 배제’ 지시 등

‘노태강·진재수 사직 강요’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됐지만, ‘1급 공무원 3명에 대한 사직 강요’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국가공무원법상 1급 공무원은 신분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노태강·진재수 사직 강요’를 예시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노태강·진재수에게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서 “나가라”고 요구했고, 이에 따라 사직할 의무가 없는 두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노태강은 당시 2급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사표를 내야 할 의무가 없었고, 파면·해임될 이유도 없었다.

출처: 민중의소리(사진 제공)
정유라가 우승하지 못하고 2위를 차지한 승마대회의 심판 내사에서 정유라 편을 들지 않아 박근혜에게 “나쁜사람”으로 찍혀 좌천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사진은 2017년 1월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이렇게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라고 할 수 있다.

– 양형위원회가 설정한 양형기준표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의 양형기준이 없었다.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형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혐의라서, 무거운 형이 선고될 수 있는 혐의는 아니다.

하지만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의 위증 혐의도 있고, 사안도 중하다. 법원이 사안 자체·헌법적 가치관과 관련된 심각성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한다.

국가 권력이 공개적으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표현의 자유 관련 사항을 사전 검열 및 분류를 해서 관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김기춘은 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최고형(5년) 선고도 가능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강력한 심증이 있었던 것 같다.

출처: 민중의소리(사진 제공)
김기춘

– 판결문 121쪽에 따르면, 김상률은 ‘2015년 세종도서 사업 지원배제’와 관련해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유죄가 인정됐다. 반면 판결문 171~191쪽에 서술된 ‘조윤선 무죄 선고 이유’는 “조윤선이 지시·승인을 한 증거가 없고, 보고받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형평에 맞지 않다. 하지만 그런 판단이 나온 데에는 증인들의 증언 취지 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김소영은 “김상률에게 보고했고, 승인을 받았다”고 증언했지만, 조윤선에 대해서는 청와대·문체부 공무원들이 “보고한 적이 없고, 승인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윤선이 재직하던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시절, 각종 지원 배제 시스템이 정무수석실을 통해 운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런 취지의 증언도 있었다.

– 김기춘의 강요 혐의 중 상당수가 무죄로 선고됐고, 그 근거는 대체로 “(문체부 및 산하기관 공무원들이) 겁을 먹었을 정도로 해악을 고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단히 권위적인 정부였고, 김기춘 같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살짝만’ 암시를 줘도, 공무원 입장에서는 강한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 같다는 의문도 들었다.

역으로 실행자들은 (지원배제가 위법행위라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그것이 심각해보였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물론 전문가들도 강요죄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기는 한다. 협박을 넓게 해석해도 구성요건 성립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배제 행위를 실행한 개별 공무원들이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고, “문체부에서 새로 구성한 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공무원들은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등 지금까지 다룬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재판부는 박근혜의 공범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여 당선되었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재판부가 이를 통치행위(고도의 정치성 때문에 사법심사가 배제되는 행위)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취지로 해석한 것 같다. 하지만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됐다”는 사실관계와 정책적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아울러 탄핵심판에서도 이미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서의 공익실현 의무 위반’ ‘특정 이념에 따른 지원 배제는 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재판부의 판단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출처: 민중의소리(사진 제공)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2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암시’를 했고, 그 ‘암시’가 하달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된다면, 그것도 공범으로서의 ‘기능적 행위지배’로 평가할 수 있지 않나. 

이미 판결문에 박근혜의 지시사항 및 발언이 다 제시됐고, 그에 따른 실행도 다 제시돼 있다. 그럼에도 공범 가능성을 부인한 판단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판결문에 제시된 사실관계로만 판단해도 공범 인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에서는 박근혜·최순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고, 공소사실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혐의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다른 재판부에서 심리 중인데 ‘박근혜 공범 여부’에 대해 판단해도 되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공소장에 박근혜가 공범으로 명시돼 기소됐으니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판결문에 따르면, 김기춘의 양형에는 “공직에 오래 봉직했고 훈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참작 사유로 명시됐다. 하지만 김기춘의 공직 생활은 대체로 공안 조작 사건으로 점철돼 있다는 의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는 판단이다. 김기춘이 중앙정보부에 재직하던 시절 개입한 각종 공안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한 사안도 많다. 그렇다면 김기춘의 공직 생활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박근혜의 공범 여부에 대한 판단과 김기춘의 양형 등을 보면,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시각이 녹아 있는 것 같다.

– ‘훈장을 많이 받았으니 감경하겠다’는 재판부 판단에 깜짝 놀랐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사익을 추구한 일이 아니고 의욕이 지나쳤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 같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김기춘이 받은 훈장들. 훈장을 많이 받았으니 형을 줄여주겠다? 김기춘이 그동안 자행한 공안사건의 면면을 살피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 제1심 판결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제1심 판결에는 ‘헌법상 권리 침해’라는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한 관점이 결여돼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가 국민에게 헌법상 보장되는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한 채 언제든 분류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직적으로 지원 배제를 실행한 것이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이 매우 심각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사안의 중대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 같다.

– ‘9,746명의 명단을 만들어 지원을 배제했다. 김기춘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았는데, ‘총기’가 이렇게 흐려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정원을 거쳐 열심히 명단을 추가 작성했다고 하지 않나. 너무 놀라운 일이다. 김기춘도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몰랐을 것이다.

– 항소심에서 보강되거나 추가로 다뤘으면 하는 부분은?

박근혜의 공범 여부와 관련해 제1심 재판에서 특별히 심리를 많이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박근혜는 그 재판의 피고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죄가 나온 부분에 대해 여러 근거들을 종합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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