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한국식 신파의 늪에 빠지다

조회수 2017. 7. 29. 00: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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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 리뷰

“자원해서 갔다고…? 하시마를…?”

MBC ‘무한도전’ 2015년 9월 12일 자 방영분에 출연한 ‘하시마 섬(端島) 강제노역 피해자’ 김형석 씨는, 강제노역을 부인하는 일본의 주장을 듣자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시마 섬의 옛 실상을 김형석 씨의 한 마디처럼 정확하게 상징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군함같이 생긴 외모 때문에 일명 [군함도]라고도 불리는 하시마 섬에는 해저탄광이 있었다. 현재는 나가사키 시가 소유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미쓰비시가 소유했다. 따라서 탄광 운영 주체도 미쓰비시였다.

강제로 징용된 조선인들은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가혹한 환경과 노동 강도에 치를 떨며 하시마 섬을 ‘지옥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출처: MBC, 리얼스토리 눈
군함도에서 겪은 ‘강제노역’을 증언하는 김형석 옹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도 있었지만, 하시마 섬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주둔 중인 일본군의 총알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거친 파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익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시마 섬에 관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논쟁이 크게 불거진 이유는,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 때문이었다. 등재의 이유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시마 섬은 조선인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민간인들이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하시마 섬, 군함처럼 생겨서 붙여진 별칭은 ‘군함도’

일본, “강제노역은 아니다” 

이에 대한 일본의 공식 입장은 “노동이 가혹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강제노역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유네스코는 한일 간 협의를 주문했고, 한일 간 협상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그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로 일하게 됐다.”

결국, 이 문장의 해석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발생했다. 강제노동의 주체가 명시되지 않았고, ‘강제노동(forced labour)’이 아니라 한 바퀴 돌린 ‘forced to work’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하지만 ‘labour’든 ‘work’든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work’에 “일하다”라는 의미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뻔히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사 책임을 부인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변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labour’든 ‘work’든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work’에 “일하다”라는 의미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뻔히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사 책임을 부인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변명일 뿐이었다.

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에 처해졌으며, 위험한 작업 중 신체를 보호해 줄 안전장치는 전혀 없었다. 소년들도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갱도에 들어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가혹한 상황이 끝난 날은 1945년 8월 9일이었다.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었다.

이후 하시마 섬의 일본인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하시마 섬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의 손에 그 노동의 대가를 쥐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인들은 각자 작은 배를 띄우고 조선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나 일본이 “forced to work”라는 문구에 대해 엉뚱한 해석을 하는 등 역사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군함도: 하시마 섬에서 찍은 [태양의 후예]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총제작비 267억 원이 투입됐고,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으며, 황정민·소지섭·송중기 등 흥행 배우들이 대거 동원됐다. 약 3주 후면 광복절을 맞이하기 때문에, 이를 치밀하게 계산한 개봉 시점으로 추정된다.

[군함도]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캐릭터는 송중기의 ‘박무영’이다. 광복군 소속 OSS(미국 CIA 전신) 요원으로서, “독립운동 관련 인물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하시마 섬에 잠입하는 캐릭터다.

1990년대 초 인기 절정의 드라마였던 MBC [여명의 눈동자] 속 장하림(박상원 분)과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장하림은 故 장준하 선생의 젊은 시절을 토대로 창작한 캐릭터였다. 박무영도 故 장준하와 장하림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故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소속으로 OSS 요원으로 활약한 적 있다.

장준하 1944년 1월 모습

문제는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가 ‘송중기’였다는 점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였다.

따라서 송중기 특유의 멋을 활용한 설정은 영락없는 “하시마 섬에서 찍는 태양의 후예”로 보일 소지가 충분했다. 애초에 하시마 섬에 OSS 요원이 잠입하는 사건 자체가 있지도 않던 일이었다.

따라서 송중기를 활용한 잠입 액션 설정은 누가 봐도 송중기를 이용한 흥행 욕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무너뜨린다.

그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살리든지 전체적인 이야기를 살리든지 둘 중 하나를 취해야 했지만, [군함도]는 어느 것 하나 챙기지 못했다.

황정민·소지섭·이정현 등에게 저마다 개입된 ‘조선인의 삶’은 겉핥기만 훑고 지날 뿐이며, 특히 소지섭은 송중기처럼 그동안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들 속 설정을 다시 입혀놓은 ‘재탕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머물렀다.

부실한 시나리오의 문제를 제작진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 한국영화 특유의 고질적인 ‘신파 과잉’도 빠지지 않는다. 마치 “일본이 이렇게 우리 조상을 괴롭히는 장면을 묘사한 영화를 감히 비난하겠느냐”는 자신감의 과시로까지 읽힌다.

하시마 섬의 잔혹한 풍경에는 주목하되, 일본인들은 그저 비현실적인 고전 악당에 머무르며, 조선인의 고난도 수박 겉핥기마냥 훑고 지날 뿐이다. 잔인함은 비추되 그에 대한 인간적 성찰은 아쉽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쉰들러 리스트]가 흑백을 고집한 이유 

스티븐 스필버그는 왜 [쉰들러 리스트]에서 흑백 촬영을 고집했을까? 왜 감독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했을까? 로만 폴란스키는 왜 [피아니스트]에서 세밀한 암시로 비극을 묘사했을까?

비극에 대한 훈계조 어투는 오히려 작품을 망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객을 비극에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객이 왜 돈을 내고 감독의 훈계를 들어야 할까? 류승완 감독은 배우들에게 과도한 비중을 뒀고, 영화음악도 과하게 사용함에 따라 고질적인 ‘한국 신파’의 늪에 빠졌다.

특히 송중기를 활용해 연출한 ‘군함도판 태양의 후예’는 영화 제작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송중기와 [태양의 후예]에 대한 추억팔이를 내세워 여성 관객을 불러 모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중기 마케팅 효과’가 아니라면 대형 탈출극이 왜 나와야 하는지 의문이다.

[쉰들러 리스트]는 애초에 스티븐 스필버그조차도 흥행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배급사 유니버셜도 [쉰들러 리스트]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쥬라기 공원] 연출을 요구했을 정도였다. 유니버셜은 특히 흑백 촬영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붉은 외투를 입고 등장하는 소녀. 이는 단순한 볼거리나 극적 장치가 아니고, 영화의 긴 러닝 타임을 고려해, 영화 전체의 흑백 화면 질감을 조율하기 위한 기술적인 필요로 설정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쉰들러 리스트]는 세상에 공개돼 전 세계의 극찬과 함께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의 흑백 화면은 마치 기록영화를 보는듯한 생생함을 전해주며 [쉰들러 리스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회자된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모두 ‘하시마 섬의 조선인’에 머물렀어야 했다. 류승완 감독도 냉정한 관찰자가 돼야 했었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 앞에서는 유명 배우와 유명 감독도 한 명의 후손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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