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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검찰은 마피아가 되었나: [더 킹] 리뷰

조회수 2017. 1. 20. 16: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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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에 겹쳐지는 우병우, 홍만표, 김태촌의 이미지
“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그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이해가 절실할수록 당파는 심해지고, 이해가 오래될수록 당파는 굳어진다.

(중략) 열 사람이 모두 굶주리다가 한 사발 밥을 함께 먹게 되었다고 하자. 그릇을 채 비우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난다. 말이 불손하다고 꾸짖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말이 불손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중략) 싸움이 밥 때문이지, 말이나 태도나 동작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성호 이익, [성호집] 권 25, 잡저 ‘붕당론’

검사의 계통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면 공안통·특수통·그 외 검사들로 구분할 수 있다. 군사정권 시절 정말 잘 나갔던 검사는 대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을 다루던 공안통이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정치인들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부각된 계통은 특수통 검사들이다. 대체로 권력형 비리 등 말 그대로 ‘특수한’ 사건을 수사·기소하는 검사들이다.

검사들은 이런 분류에 대해 ‘언론의 소설’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영광이라는 검사장 자리는 한정돼 있다. 검사의 정점 검찰총장은 단 1명이다. 성호 이익의 말 그대로 “밥은 한 사발인데 10명이 배가 고프다면” 결국은 쟁탈전이 일어난다. 이것은 검사들에 한정할 일은 아니다. 세상 어디를 가든 있는 갈등과 대결이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통하는 검사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는 것일 듯하다.

군사정권의 어두운 유산 ‘하나회’도 결국 대통령의 비호하에 경호실장·수도경비사령관의 지원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보직과 총애를 독점했던 밥그릇의 유산이었음을 상기하자. 자본주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강조한다. 세상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이다. 공급은 한정돼 있지만, 수요는 넘친다. 이렇게 되면 가격이 뛰고, 그 가치는 더욱 희소해진다.

너도나도 엘리트인 검사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검사장을 향해, 검찰총장을 향해 그렇게 계통은 분류되고, 분류된 계통 안에 학연·지연이 다시 구분된다. 여기에 끼지 못한 검사들은 어떻게 될까? 전국 각지에서 ‘뺑뺑이’를 돌면서, 술 먹고 행패 부린 사람·멱살잡이 등 숱한 그렇고 그런 송치 사건들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부장검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준비한다.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경기 불황 때문에 개업을 한다고 돈을 쓸어 담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성골’ 검사들 

조인성·정우성·배성우 주연의 [더 킹]은, ‘정운호 게이트’의 주요 연루 인물들, 그중에서도 홍만표 변호사의 제1심 공판을 대부분 방청했던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더 킹]은 전과자 출신 아버지를 둔 흙수저 박태수(조인성 분)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뒤, 젖과 꿀이 보장되는 그들만의 세상에 가담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가 검찰 내에서 ‘보스’로 섬기게 된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분)은 말이 부장검사이지, 검찰 내 초월한 권력 집단의 우두머리이다. 말 그대로 검찰 내 프리메이슨의 그랜드마스터쯤 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특수부 검사로서 축적한 각종 비행 자료들은 기본 무기이며, 권력의 분기점마다 그의 선택에 따라 권력집단의 생명이 좌우된다.

여기에 흙수저 출신 박태수가 그 권력집단에 가입해 활동하는 흐름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를 연상시킨다. 나아가 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양상은 SBS 드라마 [펀치]의 확대 버전이다. 캐릭터의 기본 모티프는 실제 인물들의 삶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박태수의 삶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모습들이 있다.

한강식에게는, 전설적인 특수부 검사 출신이지만, 현재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제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홍만표 변호사의 이미지가 흐르고 있다. 그들 모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분기점마다 정권에 줄을 대며 살아남아 검찰 내부에서 달콤한 파이를 손에 거머쥐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검찰판 하나회’를 보는 것 같다. 하나회는 보안사·수경사·육군본부·수도권 일대 사단장 등 군부 내 요직을 서로 대물림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이어갔음을 감안하면, 이들은 완벽하게 검찰판 하나회였다.

그들은 그렇게 ‘성골’을 구성하며 검찰을 휘어잡는다. 한강식이 말만 부장검사이지 배후의 검찰총장인 이유이다. 다만 현대사와 이들의 삶을 연결시키겠다는 영화의 의도 때문에 한강식이 지나치게 승진을 늦게 하는 등 시간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범서방파를 이해하고 보면 더 재밌는 [더 킹]

권력 게임이 전개되는데, 손발 노릇을 하는 조직폭력배가 없으면 섭섭하다. 그에 따라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는 최두일(류준열 분)이다. 최두일은 박태수의 친구이다. 조인성의 배역 이름이 하필 ‘모래시계’의 주인공 ‘박태수’라는 점에서, [더 킹]은 ‘모래시계’의 구도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 것 같다.

나는 ‘정운호 게이트’를 분석하면서, 게이트 연루 인물들의 주변을 맴도는 조직폭력배들의 기류를 느꼈다. 바로 故 김태촌의 범서방파였다.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는 범서방파의 방계조직 행동대장이 운영하던 마카오 정킷방에서 도박했고, 정 전 대표는 실제로 범서방파 구성원들과의 친분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 전 대표는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 이양재 호텔 라미르 회장에게는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 호텔 전세권을 받은 적도 있다. 법조 브로커 이민희 씨는 호텔 라미르 부회장 직함을 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양재 회장은 故 김태촌이 1986년 저지른 뉴송도호텔 사장 린치 사건에 가담했다가 1991년 우병우 검사로부터 징역 10년 형을 구형받은 바 있다.

뉴송도호텔 사장 린치 사건은 故 김태촌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 모 검사의 요구로 부하들을 동원해 호텔 사장을 급습해 전치 8개월의 중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더 킹]의 이야기에도 일부 등장하는 장면들의 근원 실화로 볼 수도 있으니, 알고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이렇듯 권력의 주변에는 언제나 폭력조직이 맴돌고 있었다는 역사를 반영한 영화의 흐름이었다. [더 킹]은 검사의 권력과 비상한 생존 감각·권한을 이용한 장난질·폭력 조직 등 다양한 요소들이 두루 섞여 있다.

왜 [좋은 친구들]을 차용했을까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직접 내레이션을 하면서 주변 풍경을 설명하는 등 여러모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특징은 ‘좋은 친구들’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은 [좋은 친구들]이다. 배신과 뒤통수가 난무하는 등 줄거리의 얼개도 [좋은 친구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출처: 좋은 친구들 (1990)

[좋은 친구들]은 마피아를 다뤘다. 웅장함이나 품위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린 조직폭력배들의 온상을 적나라하면서도 냉소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자기들끼리 좋은 것을 독점하면서 패악을 부리는 집단을 은유적으로 ‘마피아’라고 한다. [더 킹]이 [좋은 친구들]의 페이소스가 짙다는 점 역시 그 ‘마피아’의 요소를 차용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검사, 그들은 마피아일까? 아니면 정의의 대변자일까? 세간에서는 ‘마피아’라는 인식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씁쓸한 인식은 [더 킹]에 대한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정운호 게이트’와 ‘넥슨 게이트’에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적나라한 이야기가 엄연히 현실이라서 재미가 반감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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