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입양아 형제는 왜 이슬람국가(IS)에 이끌렸을까

조회수 2017. 1. 9. 23: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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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에게도 양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전과자로 살아온 프랑스의 한국계 입양아 형제는 결국 이슬람국가의 유혹에 이끌렸다.

형, 니콜라 

2017년 1월 2일, 파리 경범죄 법원은 32세의 니콜라 모로(Nicolas Moreau)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 이하 ‘IS’)의 테러 모의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다. 1988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된 그는 사춘기 시절 양부모가 이혼하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폭력이나 도둑질과 같은 범죄 행위에 가담하면서 수시로 소년원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2008년과 2013년 사이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만나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관련 기사: 르몽드)

그는 재판 과정에서 2014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시리아-이라크 지역에 체류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시리아의 IS 거점 도시였던 락까에 식당을 차려 IS의 파수꾼 노릇을 하기도 하고, 몇몇 자살폭탄테러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으며, 이슬람 경찰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6월 터키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이송되었다.

출처: Day Donaldson, CC BY

그는 파리 테러 이후, IS에 관한 일급 정보를 프랑스 당국에 제공했다면서 판사에게 자신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18개월 이상의 무거운 형벌은 내리지 말아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무기를 들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또한, 출소하면 프랑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계획이라면서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 검사는 “니콜라 모로는 사회에 극도로 위험하다고 판단되며, 풀려나게 되면 다시 지하드(이슬람 성전)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재판부에 중형을 선고할 것을 요청했다. (관련 기사: 르피가로)

동생, 플라비앙

그의 동생 플라비앙 모로(Flavien Moreau)도 현재 구속 중이다. 니콜라보다 두 살 어린 플라비앙 역시 한국계 입양아다. 그는 시리아, 이라크 지역에 머물렀다가 프랑스에 돌아와 잡힌 첫 번째 지하디스트로 2014년 11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2014년 시리아로 떠났던 그는 단 몇 주 만에 프랑스로 돌아왔는데 그 이유는 금연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플라비앙 역시 청소년 시절 다양한 범죄에 가담하면서 여러 번 구속된 적이 있었고, 감옥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친부모에 의해 버려져 고아원에서 지내던 니콜라는 4살 때 한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기억은 생부가 생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했던 기억뿐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유럽1)

출처: Emilien ETIENNE, “The Boy”, CC BY

플라비앙은 15개월 때 입양되었다.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형제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양부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시절 니콜라는 동생을 끔찍이 아꼈고, 늘 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자청했다. 니콜라는 말이 많고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인 반면, 플라비앙은 내성적이고 늘 혼자 지내는 아이였다고 한다. 실제로 니콜라는 스스로 자신의 별명을 ‘트롱프 라 모르(Trompe la Mort,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여러 번 자살폭탄테러 작전에 가담했음에도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자랑했다.

니콜라 모로의 재판이 있던 날, 재판장에 그의 지인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판사가 당신의 부모는 참석했느냐고 묻자, 니콜라는 아마 재판이 열리는 줄도 모를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체성 찾기 위한 위험한 선택

니콜라는 늘 출신의 문제에 집착했던 것 같다.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인이었던 그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던 시절, 그곳에서 직업훈련을 받았지만, 자격증을 따지는 못했다. 당시 직업교사가 인종차별주의자여서 자신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결국,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전과 14범이 되어버린 니콜라는 락까에서 이슬람 경찰에 지원하기도 했는데, 늘 경찰에 쫓겨 다니기만 했기에 그 반대 상황이 되면 어떨까 궁금해서였다고 한다.

락까에서도 니콜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슬람과 지하드에 매달렸지만,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IS는 모든 국적과 인종, 출신의 무슬림을 아우르는 무하마드 시대의 움마(Umma, 이슬람공동체)를 건설하겠다고 선전해왔지만, 니콜라와 플라비앙은 시리아에서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야 했다. 그곳에서 니콜라는 르코레앙(한국인)으로, 플라비앙은 르쉬누아(중국인)로 불렸다.

출처: 프랑스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되지 못한 형제

몇몇 지하디스트들은 감옥에서 이슬람 교리를 설파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니콜라는 그곳에서도 배척당할 것으로 확신한다.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끼워주지 않는다. 또한, IS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도, 아랍의 히틀러, 바샤르 알-아사드를 지원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는 취조 과정에서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을 욕하며, ‘너희 프랑스인들’, ‘너희 프랑스’라는 말을 반복했다. 검사가 “당신도 프랑스인이잖아”라고 반박하자, “아니.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았어. 양부모집에 나는 4살에서 13살까지밖에 살지 않았어. 우리는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야. 내가 너희 프랑스가 IS와 싸우도록 도운 건, 순전히 IS가 종교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라고 답했다.

희망 없는 세대 자극하는 IS

프랑스 내무부 자료에 의하면 2016년 5월 중순, 1,910명가량의 프랑스인이 지하디스트 조직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다. 1,910명 중 1,090명은 IS에 가담하고자 이라크나 시리아로 떠난 경험이 있는 자들이며, 이 중 650명가량이 현지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도시 외곽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는 무슬림 청년들만 지하디스트 조직에 연루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지하디스트 대부분은 청소년과 젊은 층이며 이들 중 30~40%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케이스다. 정신분석학자인 페티 벤슬라마(Fethi Benslama)는 실업상태에 빠져있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희망 없는 세대에게 IS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잊게 하고 결핍을 채워주는 치명적인 존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니콜라와 플라비앙도 그랬던 게 아닐까. 친부모에게도 양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전과자로 살아온 그들에게 달리 희망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실제로 프랑스를 떠나기 몇 달 전까지 어부로 일했던 니콜라는 자신이 시리아로 떠난 이유를 프랑스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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