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질엔 김광석을

조회수 2017. 1. 5. 21: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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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1월 6일, 김광석이 이 세상을 훌훌 떠난 때가 다시 돌아왔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늘 이 때면 마음이 아파. 그의 노래가 남아있는 한 그럴 거야.

예전에 소설가 김별아가 쓴 이런 글을 읽었어. ‘택시 속의 김광석’.

택시 운전을 하는 시인 이야긴데, 글에 인상적인 대목이 나와. 그 시인 택시 기사는 이따금 만나게 마련인 진상 손님들을 다루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는 거야. 뭐냐면, 바로 김광석을 틀어주는 것이라고 하네.

"술에 얼근해져 시름을 객기로 울분을 시비로 터뜨리려는 취객을, 지름길 놔두고 돌아가는 게 아니냐며 쌍심지를 켜는 찰짜를, 세상의 별의별 일로 쌓인 설움을 별의별 생트집으로 풀어내려는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그 나름의 비법이 있다는 게다. 그의 택시를 타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

‘젖은 듯 보송보송하고/ 서걱서걱한 듯 촉촉하고/ 즐거움인 듯 아파하고/ 아픔인 듯 다독여 어루만지는’ 그 목소리. 김현식이면 어떨까 하니 철금성은 호불호가 갈려 잘못하면 시비가 붙는단다. 유재하는 괜찮지 않나 하니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단다.

그래서 김광석, 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라졌지만 가객에게는 영원한 젊음을 곱씹으며 ‘신파인 듯, 아닌 듯/ 꿈인 듯, 아닌 듯’한 그 노래를 듣노라면 취객도 찰짜도 진상도 하나같이 조용해진다고 한다." (따옴표 안 부분은 정기복의 시 ‘김광석’에 나오는 부분이라고 함)

아, 그 택시 한번 타고 싶다. 시인 기사가 김광석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진상이라도 부릴래. 야 씨바 가까운 길 놔두고 왜 이리 돌아가는 거야. 차는 왜 이리 안 가는 거야. 요금이 왜 이리 빨리 올라가. 세상은 왜 이리 엿 같은 거야. 얼른 김광석 안 틀어?

이러다, 성능 좋은 자동차 오디오에서 김광석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거나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하면, 진상질이고 뭐고 당장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겠지.

근데, 난 저 택시 기사가 김광석을 진상 진압용으로만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저이 택시에는 진상 손님이 타든 다소곳하니 얌전한 손님이 타든 늘 김광석이 나온다는 데 500원 걸 수 있어.

2013년 8월에 MBC에서 방영한 [나는 지금 김광석을 부른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지. 사람들이 김광석을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좋아하고 심지어 진상까지도 그 노래를 들으면 얌전해지는 그 이유를 짚어 보고 있어. 거기서 작곡가 김형석은 이런 말을 하네.

"노래는요, ‘나 노래 잘하지’ 하고 부르는 것보다 ‘내 마음 알지’ 하고 하는 게 훨씬 소통이 되잖아요. 노래 때문에 위안받고 노래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추억하고 용서하고… 이것은 꾸며서 되는 일이 아니고 마음이 통해야 되는 것처럼, 그 노래를 소통하게 되고 노래로 마음을 통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광석이 형의 목소리는 갖고 있는 거죠."

또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들어간 김광석 노래를 놓고, 영화음악을 하는 조영욱은 이런 말을 해.

"영화에서 화면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김광석 씨 목소리를 통해서 대신 하는 거죠."

음악에 대해 탁월한 글을 쓰는 임진모는 이렇게 말하네.

"꼭 메시지가 저항적이고 스트레이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 민주화 투쟁기의 모든 사람들이 김광석 노래에 빠져들고 위로받고 거기서 희망을 찾고 했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시대성이 있기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가 더욱더 부각이 되는 거고요."

이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말이 되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것 같아. 나도 그에게 노찾사 배경이라든가, 배가 고파도 TV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80년대식이라 할 고집이라든가 하는 게 없었으면 그에 대한 매력을 좀 덜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의 노래는 시대성에 묶여있다기보다 보편성으로 해방되었다고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시대에서 태어나서 보편으로 자랐다고 해도 괜찮고.

그런 점에서 김광석의 친구인 음악가 박학기가 이렇게 말한 게 더 공감이 가. 강조한 부분은 그가 힘주어 말한 데야.

"어찌 보면 단맛, 쓴맛, 이런 자극적인 맛이 별로 없어요. 그냥 되게 밋밋한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언제든지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의 가사도 처음에 들었을 때 달달하고 솔깃한 가사들은 아니에요. 근데 정말 우리가 살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왔을 때, 가슴에 뭐가 툭 떨어지는 것 같은 이야기가 있죠."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김광석이 정서라는 영기와 사람들을 이어준 채널, 영매, 샤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좀 들어. 사람들의 정서와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마르고 쩍쩍 갈라져 초라해진 마음밭에 서정의 물을 조용히 대주어 왔던 존재가 아니었는가 하는. 그래서 우리는 그를 좋아하고, 그가 있을 때도 좋아하고, 그가 없어도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 그가 없는 자리에는 대신 나 자신이 들어가서 나와 내가 그의 노래로 연결이 되거든.

대학로 학전 소극장 앞에 김광석의 부조상이 있더라. 거기에는 그의 말이 이렇게 적혀 있네.

사람들은 생각해. 그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어떤 때? 투쟁하던 때? 분노하던 때? 그보다는 순수하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하던 때라고 하는 게 좋겠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지금은 비록 주판알을 튕기는 세상에 휩쓸려 가고 있지만, 김광석을 들으니,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는 게 기억나…’ 하며 사람들은 자기 어깨 뒤를 돌아보게 돼. 그건 김광석의 바람이기도 하겠지.

서울에 가게 되면, 정동길에 있는 이영훈의 추모비와 학전 소극장 앞에 있는 김광석의 부조상 앞에 앉아서 책 한 권씩을 읽고 올 거야. 서울에 살게 되면, 계절에 한 번씩은 그렇게 할 거야.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길’도 꼭 한 번 다녀올 테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김광석 노래가 들어간 장면 중 하나는 이거야.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시인 출신이라는 택시 기사는 진상들을 다루기 위해 김광석을 튼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진상 중에는 김광석도 당할 수 없는 족속이 있다는 데 다시 500원 걸 수 있어. 요즘 진상들은 너무 독해. 김광석도 감당이 안 될걸. 굿을 하다 말고 가서 그래. 좀 더 오래 살아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씻김굿을 좀 더 길게 해주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거야.

김광석은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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