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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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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행정부가 바뀐다. 미국 대선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정치인은 타고나지만, 대통령은 만들어진다’는 게 내 지론이다. 외딴 마을 학교 강당에서 농민과 악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만들어진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과 그 정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캠페인 시작부터 지켜보는 것이다. (필자)

미국은 지난주, ‘공화당 대표주자 트럼프’가 현실이 되는 드라마를 지켜봐야 했다.

현실이 된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

트럼프가 인디애나를, 그것도 과반수(53.3%)로 확보하면서 2위를 달리던 크루즈로서는 아무리 계산을 해도 승산이 나오지 않았고, 곧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3위 케이식도 후보를 사퇴했다.

아무리 환전가치가 전혀 없는 정치인의 약속이라지만, “끝까지 간다”고 외치던 후보 두 명이 그렇게 기권을 해버리자, 미국인들은 이제까지 반신반의했던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가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야말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공화당의 기축세력이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중재전당대회로 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디애나가 트럼프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인디애나는 중재전당대회로 가는 길고, 좁고, 꼬불꼬불한 길의 교두보였다. 인디애나를 잃으면 중재전당대회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인디애나를 잃었다.


하지만 트럼프를 막기 위해 크루즈를 추대해야 한다면 이미 기축세력을 대변할 후보는 없는 것이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후보인 케이식도 4년 전에 나왔다면 공화당 기축세력이 가장 미워했을 ‘진보적인’ 후보다. 기축세력은 이미 완전히 패했다.

* 물론 중재전당대회가 트럼프 저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 물론 인디애나만 확보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언론의 예측 실패

트럼프의 상승세가 이어지던 2015년 10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면 내가 이 칼럼을 먹겠다”며 그럴 리 없다던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밀뱅크(Dana Milbank, 사진)는 이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문지를 어떻게 먹는 게 좋을지 제안을 해달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고 장담했던 뉴욕타임스의 보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 아래 사진)는 그런 약속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종이를 씹어 먹지는 않겠지만, 자존심을 삼켜야 했다.




데이비드 브룩스 브룩스는 ‘공화당 후보 트럼프’를 인정하는 칼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75%가 지난 반세기 동안 생활이 나빠졌다고 말한다”면서 이제 “새로운 미국의 이야기”를 쓸 때라고 주장했다.

이제까지는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미국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그런 옛날 야기를 되살리고 싶어 하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내가 어떤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나라를 불안하게(unstable)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이런 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의 주장대로) 그가 가진 재산이 많다면, 그의 국가 운영은 보수적이 될 것이고 정말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모습?

하지만 트럼프는 여러 가지 다른 말을 한다.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매번 말이 바뀌어서 그 사람의 의제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정치인도 있다.

“거짓말을 한다”는 공격을 많이 받는 힐러리 클린턴이지만, 정작 조사를 해보면 힐러리의 주장에서 거짓말이 차지하는 비율(13%)은 샌더스, 케이식(14%)보다 낮다. 크루즈는 그 두 배가 넘는 30%를 기록했고, 트럼프의 거짓말 비율은 43%로 단연 거짓말 선두다. 그럼에도 대중은 트럼프가 워싱턴 아웃사이더라서 사실만을 말한다고 믿는다. 결국,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백악관은 아이디어를 나누고 토론하는 오바마의 백악관이 아니라) 대기업의 이사회(board room)같은 모습을 할 것이고, 군 장성들은 냉전 시대처럼 다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미국의 무력을 과시하는 정책을 수행할 것이며, 취임 100일 이내에 멕시코와의 국경에 들어설 거대한 벽(wall) 디자인이 발표될 것이다.

그런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 공화당이지만, 그들의 현재 걱정은 좀 더 가까이에 있다. 자신의 목숨이다. 많은 미국인이 사랑하지만, 훨씬 더 많은 미국인이 반대하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면, 11월에 있을 대선과 의원 선거에서 상하 양원 중 최소한 한 곳, 즉 상원을 민주당에 넘겨줄지 모른다..(*) 현재 스칼리아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오바마가 추천한 중도(온건진보) 메릭 갈랜드에 대한 청문회조차 거부하고 있는 공화당이 태도를 바꿔 임명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오늘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힐러리의 승리(힐러리 347, 트럼프 191)라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트럼프 지지율이 힐러리를 앞섰다”는 헤드라인보다 덜 섹시할지 모르지만, 맞는 이야기인 것은 미국의 대선은 직선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현재는 상하원 모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하지만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화당 티켓을 따낸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려면 신문지를 씹어 먹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공화당은?

이제 남은 것은 각 당의 전당대회를 통한 대관식일 뿐, ‘힐러리 로담 클린턴 vs. 도널드 J. 트럼프’ 구도는 사실상 정해졌다. 특히 이제부터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의 승리를 재확인하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샌더스는 아직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트럼프의 후보확정으로 민주당 내에서 샌더스에 대한 사퇴 압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샌더스는 끝까지 간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어쩌면 며칠 내에 사퇴를 발표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잠재력이 무섭게 커지는 중에 이길 수 없는 경선에서 힐러리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샌더스 본인이 가진 의제를 위해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 모든 후보들이 사퇴 몇 시간 전까지 그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각 당은 대표주자 뒤에 줄을 서거나 반기를 들 것이다. 당장의 관전 포인트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그들은 다음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입을 다물고 트럼프를 묵인하거나
2. 트럼프 편으로 재빨리 이동하거나
3. 제3의 길을 찾거나

그 ‘제3의 길’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일지 아니면 다른 당을 찾는 해당 행위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 vs. 라이언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러한 드라마를 보여주는 일이 며칠 뒤에 일어났다. 바로 트럼프와 하원의장 폴 라이언의 대결이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여러분들, 이 만찬 초청장을 받고 참석 여부를 밝힐 때 식사에서 원하는 메뉴로 스테이크나 생선요리 중 하나를 고르게 되어 있었죠? 그 둘 중 하나를 고르셔야 하는데 여기에 계신 (공화당) 분 중에는 그중에서 고르지 않고 ‘폴 라이언’이라고 적으신 분들이 있는데, 그런다고 폴 라이언이 나오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나 생선 중에서 고르시는 겁니다, 좋든 싫든.
공화당 전당대회를 만찬에 빗댄 농담이었다. 스테이크는 트럼프, 생선은 크루즈였는데, 둘 다 싫은 공화당원들이 (중재전당대회로 갈 경우) 하원의장 폴 라이언이 전당대회에서 출마 선언을 해서 후보에 오르기를 원한다는 걸 비꼰 것이었다. 물론 중재전당대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트럼프는 유일하게 남은 공화당 후보다.

폴 라이언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밋 롬니가 러닝메이트로 삼은 젊고 촉망받는 정치인이다. 대선에 패배했지만, 주가는 계속 상승했고, 테드 크루즈를 비롯한 티파티의 끊임없는 흔들기에 지쳐 아예 정치에서 은퇴해버린 존 베이너의 뒤를 이어 현재 하원의장(House Speaker)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원래 그 직책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상 끌려 나오다시피 한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베이너를 끌어내린 세력이 멀쩡하게 남아있어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만약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백악관과 싸움을 해야 하는데 티파티를 비롯한 반(反)기축세력은 의회에 그대로 남아 (베이너가 처했던 상황과 똑같이) 자신은 그들과 민주당의 백악관 사이에 끼어서 새우등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고,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라이언에게 문전박대당한 트럼프

하지만 신중한 라이언은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를 반대 혹은 저지하는 발언을 거부했다.(*) 그리고 “누구든 절차에 따라 공화당 후보로 뽑히는 사람을 지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 말이 ‘트럼프가 후보가 되어도 지지겠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지난주에 사실상 공화당 후보가 된 트럼프 측은 그때 받은 약속어음을 바꾸러 갔다. 하지만 돌아온 폴 라이언의 대답은 싸늘했다:

“나는 아직 트럼프를 우리 당의 기준을 받드는 기수로 인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 사실 그런 신중함이 공화당 기축세력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서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이 공화당, 민주당을 불문하고 기축세력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측근이 공화당 기축세력의 지지를 구하러 갔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뺨을 맞은 셈이다. 현대 미국 정치사에서 당의 후보가 하원의장의 지지를 받지 못한 예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트럼프 본인도 인정하듯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축세력에 속한 큰 손 기부자의 돈이 필요한 상황인 걸 생각하면 라이언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라이언의 말은 그러한 트럼프의 필요를 미끼로 트럼프 길들이기에 들어간 라이언의 샅바 싸움일 가능성이 있다.

라이언의 계산: 문제는 ‘보라색 주’ 

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원의장은 하원 다수당에서 선출한다. 따라서 라이언의 직책은 공화당의원들이 이번 11월 선거에서 잘 싸워줘야 유지된다.

전에도 썼지만,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보라색 주들(퍼플 스테이트: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색이 분명하지 않은 중도파 주)에서 출마하는 공화당의원들이 많이 낙선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해왔다. 물론 지난 10여년 간의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공화당이 하원을 잃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라이언은 그런 보라색 주 의원들에게서 꾸준히 압력을 받고 있다. ‘내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면 나는 낙마한다. 어쩔 거냐’는 것. 게다가 원래 그런 공화당 색이 짙지 않은 보라색 주 출신의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당파성이 심하지 않은 지지기반의 특성상 중요한 법안을 두고 민주당과 협상해도 다음 선거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하원의장과 같은 기축세력의 중요한 우군이다. 라이언은 당내에서 티파티와의 힘겨루기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라이언의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은 바로 그런 보라색 주 출마자들에게 ‘원하면 같은 당 후보인 트럼프를 공격하거나 거리 두기를 해서라도 11월 선거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지역구 출마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7월에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있을, 트럼프가 후보로 등극할,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까지 나왔다.

갈등의 봉합 혹은 확대

물밑 접촉으로 화해를 시도했던 트럼프는 “당의 단합을 이야기하더니 이게 뭐냐”고 분노했고, “나도 아직 라이언의 의제를 지지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트럼프답게 쏘아 붙였다.

하지만 정치는 어디까지나 협상의 예술이고 트럼프 역시 협상으로 단련된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에 이번 주에 비공개회동으로 라이언을 비롯한 공화당 기축세력을 만날 계획이다.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그러한 협상이 깨질 것에 대비해 7월 전당대회에서 의장을 맡게 된 라이언을 끌어내릴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한 트럼프의 위협에 라이언도 굳이 전당대회 의장직에 연연할 생각이 없다고 대꾸했다. 트럼프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그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것. 

트럼프와 라이언이 이렇게 공방을 벌이는 동안 공화당원들은 진영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에 대해 린지 그래엄 상원의원은 지지 거부를,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지지를 표명했다. 젭 부시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살아있는 유일한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인 아버지와 형 부시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들은 전혀 의견을 내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힐러리의 계산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힐러리 클린턴은 그런 싸움 속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 트럼프에 실망한 공화당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빨간 팀, 파란 팀 나눠서 싸우지 말고 ‘아메리카팀’에 참여하라”고 반(反)트럼프 공화당 유권자들에 팔을 벌렸다.
물론 힐러리의 이런 노골적인 중도 노선은 샌더스를 상대로 승리를 확신하지 않으면 택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샌더스는 사실상 승리가 힘들어졌고, 힐러리의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내려오라는 큰 압력을 받고 있지만, 지난 3일 인디애나 경선에서 승리하며 건재를 과시했고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적어도 가장 많은 대의원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의제를 확산하는 것이 유종의 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공화당 기축세력까지 긁어모아 거대한 중도세력을 만들어 기득권층의 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힐러리를 보며 더욱더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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