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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뉴스는 본질적으로 나쁘다

조회수 2016. 5. 10. 19: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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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코끼리다, 모든 뉴스는 본질적으로 나쁘다

이 콘텐츠는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가 펴낸 '나쁜 뉴스의 나라' 에 대한 서평입니다. (편집자)
출처: 나쁜 뉴스의 나라 ㅣ 조윤호 지음 ㅣ 한빛비즈 펴냄
‘나쁜 뉴스의 나라’는 사실 흥행에는 위험한 제목이다. 망가진 공영방송과 조중동 종편의 패악질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진보와 보수 언론의 정파성, 시장에 종속된 무력한 언론, 온라인 저널리즘과 공론장의 붕괴 등등. 제목이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있는 데다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좌빨이고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을 집어 들지도 않을 것이고 제목만으로 최소 3분의 1 이상의 잠재 독자들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책 ‘나쁜 뉴스의 나라’는 ‘나쁜 뉴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빛비즈는 책 잘 만들고 잘 파는 출판사고 이런 제목의 책이라도 어떻게든 팔리게 할 거라고 믿지만, 사실 이 책은 뉴스를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뉴스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뉴스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그리고 모든 뉴스를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다시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Part of the By A Wall series. CC0.

프레임

조윤호 기자는 비판적 뉴스 읽기를 위해 언론의 의제설정과 프레임을 살펴보라고 제안한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강조했듯이 대중에게 중요한 의제를 던지는 세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의제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적 의제가 되도록 하는 키핑이다. 아젠다 키핑에서 중요한 것이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팩트를 정해진 틀에 따라 받아들이게 하고, 특정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을 바꾸기도 한다.

조선일보가 ‘통일은 대박’ 프레임으로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 통일나눔펀드로 수천억 원을 조성해 바꾸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조선일보는 ‘88만원 세대’에 맞서 ‘실크로드 세대’를 띄우더니 지난해에는 ‘달관 세대’를 띄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힐링 담론을 누른 것은 ‘삼포세대’에 이은 ‘흙수저 금수저론’이었다. 뉴스는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라 재구성된 사실이고, 프레임을 이해해야 사실 이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잘못된 원인 분석은 조건을 살피지 않음으로써 발생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건, 원인과 결과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인과관계’라는 이름으로 연결된다. … 분석적으로 기사를 읽기 위해서는 그 기사 안의 문장을 무작정 사실이라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 기사 역시 가설로 구성돼 있다. 문장을 해체해 원인과 결과로 나누고, 인과관계의 끈을 이어주는 조건이 합리적인지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텍스트 안에 있다.”

보도하지 않는 힘

이 책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진실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고 우리가 읽고 있는 모든 뉴스는 수많은 사실 가운데 선택된 일부일 뿐이다. 진실의 실체는 거대한 코끼리와도 같다. 부분을 볼 수 있지만, 전체를 파악하는 쉽지 않고 파악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애초에 취사선택된 진실의 한 조각이라는 전제를 두고 본질을 추론하는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뉴스 소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출처: CC0.
‘진짜 미디어의 힘은 보도하지 않는 힘에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본인들이 원하는 이슈를 의제로 설정하고 특정한 프레임의 틀 안에서 사안을 인식하도록 보도하는 힘이 명시적 권력이라면 사회 지배계층에게 불리한 이슈를 아예 의제로 만들지 않는 침묵의 힘은 묵시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도되는가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게 보도되지 않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조 기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우리가 컨텍스트를 읽어야하는 이유는 이처럼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텍스트가 컨텍스트와 결합되면서 지니는 효과 때문”이다. ‘대선 개입’ 이슈가 ‘대선 불복’ 프레임에 무너지고 엘리엇이라는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편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비화한다. 조 기자는 “5W1H의 육하원칙에 맥락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텍스트 뒤의 권력의 컨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의 기자회견 직후 안상구의 범죄 전력이 언론에 공개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확산되자 조선일보는 “대자보를 처음 써붙인 주현우 씨는 노동당(옛 진보신당) 당원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오래된 여론 조작 기법이다. 제 버릇이 어디 갈까. 조선일보는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주치의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사실을 대단한 것인 양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출처: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우민호, 2015) ⓒ 쇼박스
철도노조가 파업하면 고액 연봉을 흘리고 항공기 조종사 노조가 파업하면 골프채 논란을 퍼뜨리는 것도 식상하지만, 늘 통하는 고질적인 수법이다. 동아일보는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의 방송 인터뷰 영상에서 뒤쪽 책꽂이에 ‘현대 북한의 이해’ 같은 책이 꽂혀 있다는 이유로 “그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다”며 “‘평범한 은행원’만은 아닌 것 같다”고 황당무계한 의혹을 내놓기도 했다.

진실을 유추하는 전략  

이 책에서 아쉬웠던 건 뉴스 제작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애초 기획 의도였던 어떻게 뉴스의 행간을 읽고 진실의 실체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쁜 뉴스의 시대, 뉴스를 불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불신하는 것만으로는 나쁜 뉴스를 퇴치할 수도 없을뿐더러 극복할 수도 없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나쁜 뉴스 가려내기’는 ‘초급편 : 텍스트 읽기’와 ‘중급편 : 컨텍스트 읽기’, ‘고급편 : 언론산업 읽기’로 이어지는데 텍스트와 컨텍스트, 언론산업을 읽는 것만으로 나쁜 뉴스를 가려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쁜 뉴스의 시대라고 하면 언제 좋은 뉴스의 시대는 있었나? 나쁜 뉴스를 가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나쁜 뉴스 속에서 진짜 뉴스를 골라내고 수면 아래의 진실을 유추하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쁜 뉴스의 나라’라서가 아니라 원래 뉴스는 이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뉴스도 상품이고 선택받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개가 사람이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완벽한 객관이라는 건 가능하지 않으며 모든 기사에는 편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뉴스를 의심하되 사실의 조각들을 맞춰 진실을 유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윤호 기자의 이 책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출처: 눈을 감고 거대한 코끼리의 뒷다리를 만질 수는 있지만 전체와 실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뉴스가 전하는 사실이 진실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위키미디어, CC0.

맥락에 작동하는 권력 

뉴스는 발생하기도 하지만 만들어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생한 사실 가운데 뽑고 추려서 뉴스를 만드는 건 기자의 판단이지만, 그 기사가 데스킹을 거쳐 최종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수많은 이해관계 충돌을 통과해야 한다. 이건 좋고 나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고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가치의 무게중심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뉴스룸 안에서도 뉴스 가치를 보는 눈은 다 다르다. 오히려 오랜 경험을 축적한 데스크의 판단이 기자보다 정확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의 전제조건은 데스크와 기자가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기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뉴스룸의 내부구조다. 이 전제조건이 없는 한 뉴스가치에 대한 판단 차이는 데스크가 기사를 누락시킬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언론사의 내부구조를 알아야 무엇이 뉴스가 되는지, 뉴스 가치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이유다.”
조선일보에 조선일보의 편향이 있다면 한겨레는 한겨레의 편향이 있다. 명백한 팩트 조작과 악의적인 왜곡, 아젠다 어뷰징을 비판해야겠지만 때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둘 다 봐야 사안이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된다. 이제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조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권력이 컨텍스트를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야 뉴스의 이면과 사실 너머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맥락이 아니라 맥락에 작동하는 권력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출처: epSos.de, CC BY
좋은 기사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좋은 기사가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를 몰아내는 게 이 ‘나쁜 뉴스의 나라’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면 불신과 냉소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좋은 뉴스를 발굴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고 추천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뉴스를 의심하고 비판하되, 외면하지 않고 실체와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게 ‘나쁜 뉴스의 나라’에 사는 독자(국민)들의 책무다.

궁극적인 해결은 독자의 몫 

이 책에서 말하는 ‘나쁜 뉴스’는 ‘bad news’가 아니라 ‘잘못된 뉴스(wrong news)’의 의미다. 뉴스 시장의 생리는 잘못된 뉴스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뉴스 생산자들의 선의와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독자들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일까. 뉴스의 맥락에 작동하는 권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기득권 세력이 획정한 프레임을 깰 수 있다. 여전히 언론의 역할이 크지만, 독자들이 나서야 할 때다.
“진보언론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권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파성과 영향력을 유지하되 ‘정파 언론’이라는 인식으로 언론의 신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한다. 결국, 저널리즘의 본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파성이 가리고 있는 것은 ‘저널리즘의 가치’다. 정파 저널리즘의 온갖 폐해는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보수적 가치,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서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인용한다.

“문제는 원칙 없음이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누락하거나 축소하고, 왜곡하는 등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채 특정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것이 ‘정파 저널리즘’이 언론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언론사의 자정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뉴스 수용자가 언론이 무엇을 누락하거나 숨기고 왜곡했는지 밝혀낼 눈을 가질 때만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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