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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는 끝났다: 국민전선 승리에 부쳐

by 슬로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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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파리 테러 이후 3주 만에 치러진 프랑스 지방선거(2015년 12월 6일)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FN; Front National)은 역사적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최종 득표율은 27.72%. 이전까지 그 어떤 극우정당도 기록하지 못한 득표율이었습니다. 프랑스 국민은 결국 파리 테러의 공포에 굴복한 것일까요. 국민전선이 대약진한 프랑스 선거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편집자)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의 승리는 파리 테러로 인한 일시적 퇴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 역사적 사건은 다수를 차지했던 중도파 자유주의자들을 드디어 국민전선이 흡수했다는 걸 의미한다.
헉!
프랑스에서 중도파란 ‘주류의 죄책감’을 공유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윤리적-서구-백인-남성’이라는 공통 코드를 가진 이들은 “중동 사태는 서구의 침탈적 개입 때문이지, 그러므로 우리가 감내해야 해.”, “직장 내 임금 격차는 남성 중심적 사회 때문이지, 그러므로 우리가 감내해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국민전선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프랑스 정치의 방향이 정해졌다.

포퓰리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포퓰리즘을 단순한 극우라고 생각하기에 권위적 보수주의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포퓰리즘은 20세기 후반 진보 진영의 감수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예를 들면 유럽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여성, 환경, 성소수자, 동물권 등의 문제에서 기성 정당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불끈!
국민전선의 정책 역시 그렇다. 마린 르 펜이 “우리가 우익이라고? 오바마가 우리보다 더 오른쪽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절반 이상 사실이다. 오바마와 비교한다면 르 펜의 정책은 오히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콜빈에 더 가깝다. (나는 콜비니즘 또한 어느 정도는 포퓰리즘을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영국의 좌파 매체인 스파이크드는 진작부터 그를 거세게 비판해왔다.)

출처마린 르 펜, 제레미 콜빈(CC BY SA, 위키백과 공용)

그들은 왜 국민전선으로 전향했나


Logo_NPA나는 국민전선이 빠르게 세를 확장해나가던 시절에 프랑스에 있었다. 그리고 공산당이나 반자본주의신당(NPA; Nouveau parti anticapitaliste) 활동가였던 지인들이 국민전선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놀랄 만큼 빠르고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큰 규모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의 전향은 생각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종래의 이념과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전선으로 돌아선 것이다. “국민전선이 빈곤과 실업 문제에 더 적극적”이라거나 “반자본주의신당은 여권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말하던 그들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열공
그들은 사회당은 물론이거니와 공산당이나 반자본주의신당, 좌파연합을 모두 ‘기성 정당’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국민전선을 사르코지가 만든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새로운 대안처럼 받아들였다.


국민전선에 동조하는 좌파


역사적 파시즘조차 처음부터 노골적인 차별과 폭력을 내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나치는 노동자와 하층 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분배, 복지, 환경, 동물권 등의 문제에서 공산주의보다 더 적극적인 지표를 제공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와 달랐던 점은 하층민의 박탈감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나치는 유태인 학살조차 끔찍한 인종 청소가 아니라 사악한 자본가 무리를 처단하는 윤리적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인들은 그게 큰 잘못이었다는 걸 패전 후에야 깨달았다.
좌절
국민전선 지지자들도 지금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한국의 젊은 좌파들이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도입을 환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제는 좌파 정책처럼 보이지만, 복지를 축소하고 특히 이민자들에게 주어지는 공공서비스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이다.
국민전선의 정책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좌파적이다. 국민전선 지지자들은 르 펜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더 늘리고, 성차별을 없애고, 환경을 보전하며, 사르코지식의 금융화와 국가독점개발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극우의 정서, 나는 피해자다


지금 나는 ‘정책만으로는’ 국민전선의 포퓰리즘을 좌파와 구분할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전선을 한국 노동당과 구분할 방법이 뭔지도 모르겠다.
정색
무슨 근거로 국민전선을 극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 마리 르 펜이 나치 부역자였기 때문에? 아니다. 국민전선도 나치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약자를 향한 도덕심에 호소했다. 이 점이 제일 중요하다.
극우파는 “내가 너보다 우월하니까 너를 팰 거야”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부당하게 빼앗기고 억울하니까 너를 팰 거야”라고 한다. 이것이 극우파의 저변에 흐르는 주요 정서다. 태평성대에는 이런 생각이 발붙일 틈이 없다. 그러나 혼란기에 접어들면 중도파마저 극우를 지지한다. 프랑스의 경우 과거에는 구 식민지나 제3세계를 피해자라고 인식했던 반면에 지금은 자국민을 피해자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극우는 ‘선함’을 가장한다


국민전선이 진짜 좌파와 다른 점은, 국민전선은 카타르나 사우디의 투기적 석유 자본, 환경 오염과 온난화를 부추기는 제3세계 산업, 폭력적인 종교,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이민자, 어눌한 억양의 성추행범 등 눈에 보이는 적(사실은 만들어진 가상의 적)을 규탄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개인의 어려운 실천이 요구되는 좌파와 달리 국민전선은 눈에 보이는 적들을 처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훨씬 쉬운 데다 윤리적 타당성까지 제공하므로, 중도파의 위선에 의지하는 사람이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좌절
피해자를 향한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이 어떻게 윤리를 통과해 극우로 빠져드는가? 최근 아이유 음반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은 “아동학대나 성추행 등을 경험한 피해자가 있으므로”, 또한 “피해자들이 아이유 노래를 듣고 상처를 입을 수 있으므로”라는 이유로 그녀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넥타이에 목이 졸려 학대를 당한 피해자가 있으므로 넥타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진짜 학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도 아니며, 진짜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단순한 혐오를 정당한 도덕적 분노로 착각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극우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헤롱헤롱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포퓰리스트들도 자신들이 유사 파시즘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해결책을 모색하는 윤리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장 두려운 부분이 이거다. 극우는 절대악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외려 선한 것처럼 가장하고 행동한다.

어제까지의 세계는 끝났다


이제 어제까지의 세계는 끝났다. 후세 사람들은 파리테러와 프랑스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5년을 ‘장기 20세기’가 끝나고 ‘단기 21세기’로 접어든 시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난세의 도래다.
100년 전처럼 좌파와 포퓰리즘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더는 이전의 방식으로 좌·우파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윤리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극우파적 행태는 한국에도 많다. 좌파는 그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임금 노동과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공정한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임금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
더욱더 확장해보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왜 안 되겠는가?

“복지 확대나 기본소득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계급 철폐!”

“성 상품화 반대나 스캔들 공론화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성차별 철폐!”

“진보 대연합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대의제 철폐!”

출처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필자 : 손이상(초대필자, 생활가)


 1986년 아시안게임 관람. 1988년 올림픽 관람. 2002년 월드컵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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