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는 왜 빌 게이츠를 청와대에 데려갔을까?
초고속인터넷 비화:
손정의가 빌 게이츠를 청와대에 데려간 이유
1981년 9월 자그마한 사내가 귤 상자 위에 올라서서 두 명의 직원에게 회사의 비전과 미래에 대해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소프트뱅크라는 회사의 창립 순간이었다.
과감한 투자와 실험정신으로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된 사나이
두 직원은 몇 달이 못 가 초라한 회사와 사장을 등졌지만 1994년 주식이 공개된 소프트뱅크는 2천억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모으며 일본의 IT 업계를 주름잡았다.
재일교포 3세, 암울함 속에서 미래를 보다
손정의(孫正義), 손 마사요시(Son Masayoshi)는 재일교포 3세다. 그의 조부모는 대구 태생이고 2차대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와 정착한 세대였다. 할머니의 정겨운 대구 사투리를 잘 기억할 정도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손정의였지만, 일본말을 잘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모습은 재일교포에게 쏟아지던 차별로 성까지 ‘손’이 아닌 ‘야스모토’라고 감춰야 했던 어린 손정의에게 반발심과 도피의 대상으로 바뀌어갔다.
그의 그런 경향은 10대 초반부터 그에게 사업가의 기질과 함께 해외로 눈을 돌리게 했다. 집을 졸라 한 달간 미국에 연수를 다녀왔을 때 그는 더 크고 긴 유학생활을 염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장사로 가정경제를 일궈오던 아버지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병원의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을 하자 가정과 그의 앞날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 닥쳤다.
손정의는 당시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이끌어낸 당대의 변혁가이자 무사 그리고 사업가였던 ‘사카모토 료마'(坂本 龍馬; 1836-1867)에 자신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나라에서 생긴 고민, 다른 사람들을 대가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손정의는 집에 남아 아버지와 가정을 돌봐달라는 가족들을 거꾸로 설득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고 피했던 할머니라는 존재를 스스로 마주하며 ‘유학을 떠나기 전 잠시라도 내가 싫어했던 조상의 나라, 할머니의 나라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며 용기를 내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한국땅을 밟았다.
그렇게 그가 찾은 대구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서로 주고받는 온정과 덕담을 보며 손정의는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가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 때 ‘다른 사람 덕을 생각하라’며 대구의 길가에서 속삭이던 할머니의 덕담은 손정의의 가슴에 깊이 남았고, 그 역시 당시를 회고하길 “‘내가 누구인지 도움받은 상대가 몰라도 좋다. 그저 누군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면.’ 하던 깨달음이 정보기술로 인류를 행복하게 하자는 소프트뱅크의 창립이념이 되었다.”고 한다.
손정의와 IMF를 맞은 한국과의 인연
1990년대 중반부터 손정의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찾았던 정겨운 나라 한국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의 부도로 시작된 경제 한파의 결정타는 한국 굴지의 기업들을 문 닫게 했고 여파는 국제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그해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부도위기가 초래했음을 공표하고 정·재계의 지원정책들을 서둘렀지만 이미 때가 늦어 같은 달 한국은 국가신용 대폭락과 함께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12월에 IMF 조약이 체결되었다.
손정의는 그 이듬해 다시 한국을 찾게 되었다. 10년이 지나 2011년에 당시 상황을 회고한 손정의의 증언은 다음과 같았다.
빌 게이츠와 손정의를 청와대에서 만났다.
사진에서 김대중 대통령 외편에 있는 인물이 손정의.
(공공누리에 따라 e-영상역사관의 공공저작물 이용)
김대중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한국이 망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손 사장이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라고 말한 것이다.
김 대통령이 내 답을 듣고서 옆의 빌 게이츠 씨에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더라. 그러자 빌 게이츠 씨도 100% 찬성한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신들 두 사람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한번 그렇게 해보겠다’고 답했다.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다.
기운을 북돋아 드린 것이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알았다고 말한 뒤 우리의 만남 다음 주에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진짜 그렇게 발표한 것이다!
진짜 그렇게 발표했고 그렇게 한국의 인터넷은 세계제일이 되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막론하고 정보기술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던 손정의의 철학이 때마침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던 한국의 대통령과 만나 일으킨 기적이었다.
손정의가 이어온 할머니의 철학,
“모두 남들 덕분인 기라”
오늘날 한국은 인터넷 회선의 강국일 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나라이다. 그런 한국의 정보기술 발전에 어떻게 보면 작은, 어떻게 보면 큰 도움을 준 손정의는 타인을 돕는 정보철학을 유지하며 일본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이즈음 그 모든 일의 원인이 된 손정의의 할머니가 말했다는 그 덕담을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손정의의 회고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과 빌 게이츠의 사심없는 조언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IT 정책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음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