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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갑질' 폭로와 '사과의 조건'

15년 경력의 스타일리스트 A 씨의 '아이린 갑질' 폭로와 이에 대한 아이린과 소속사의 사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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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경력의 스타일리스트 겸 에디터 A 씨가 아이돌 여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20여분 동안 "낯선 방에서의 지옥같은" '갑질'을 당했다고 자신의 SNS에 주장했다(10월 20일). 현재는 삭제된 해당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250명의 일반 승객을 두고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킨 소시오패스의 전형인 대한항공의 조현아, 등교와 하교를 케어하고 담당해주는 50대의 운전기사에게 갑질과 욕설을 한 TV조선 방정호의 싸이코패스 초등생 딸 기사를 보면서, 한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하면 저 지경에 이를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오늘 내가 그 '을'의 위치에서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밟히고 당하는 경험을 했다. 가까운 이들에게서 검증된 인간실격 + 하하호호 웃음가면을 쓰고 사는(난색으로 유명하지만) 꼭두각시 인형+ 비사회화 된 ‘어른아이’의 오래된 인성 부재+ 최측근을 향한 자격지심과 컴플렉스+ 그 모든 결핍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멍청함+ 처음 본 사람에게 바닥을 그대로 노출하는 안하무인. 나는 이미 그녀를 만나기도 전에 전해들은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오늘 그 주인공이 쏜 전기침에 쏘여 말을 잃었다. 손과 발, 뇌가 묶인 채로 가만히 서서 그 질색하는 얼굴과 요동치는 인간의 지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앞뒤 상황은 물론 이해를 구할 시간도 반복된 설명도 그 주인공에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15년을 이 바닥에서 별의별 인간들을 경험하고는 인생사에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했고 이제 거진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낯선 방에서의 지옥같은 20여분이었다. 완벽히 인사는 생략, 의자에 앉아 서있는 내 면전에 대고 핸드폰을 손에 끼고 삿대질하며 말을 쏟아냈다. 나한테 그러는 건지 그 방에 있던 모두에게 그러는 건지 모를 정도로 흥분 상태였다. 어쨌든 오늘의 대상은 나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 꼴을 다 당했다는 거지? 당한다는 거지? 그가 혀로 날리는 칼침을 끊임없이 맞고서 두 눈에서 맨 눈물이 흘렀다. 니 앞이고 누구 앞이고 쪽팔릴 것도 없이 그냥 눈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무얼 위해서? 누굴 위해서? 어떤 걸 보여주고 싶어서? 돈을 벌게 위해서? 누가 날 선택해서? 부탁을 받아서? 왜 이런 굴욕을 당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행동은 한참을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 대 인간,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하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근데 그냥 사라졌다. 혹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 녹취를 했다. 그녀를 향해 행동을 취해야 겠다. 나는 글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고 그 내용이 더없는 효과를 내기 위해 결과를 남기고 돈을 받고 일했던 에디터였고 매체의 기자였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그리고 내 두뇌를 영리하고 영악하게 굴려볼 생각이다. 한 인간에게 복수가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 오랜만에.... #psycho #monster

아이린은 자신이 그 갑질의 장본인임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10월 22일 오후 9시경). 그 사과문은 아래와 같다. 

아이린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태도와 경솔한 언행으로 스타일리스트 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함께 노력해주신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는데 성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큰 상처를 드린 점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니 저의 부족한 언행이 많이 부끄러웠고 스태프분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과 이번 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아이린의 사과문

출처아이린의 인스타그램

아이린이 사과문을 올린 직후, 아이린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도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아래는 그 공식입장 전문이다.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아이린 관련 온라인에 게재된 스타일리스트 글에 대해 당사의 입장을 말씀드립니다.
아이린은 오늘 오후 해당 스타일리스트와 직접 만나, 경솔한 태도와 감정적인 언행으로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였으며,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한 마음입니다.
당사 역시 이번 일에 책임을 통감하며, 당사 및 소속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모든 관계자 및 스태프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앞으로 함께 하는 모든 분께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A 씨의 폭로문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당한 일을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다소 부풀려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이른바 피해자의 '정황의 과장' 이론). A 씨의 글에도 정황의 과장이라는 (자연스러운) 피해자로서의 심리적 경향이 드러나긴 한다. 하지만 약간 의외의 요소가 발견된다. 

찬찬히 A 씨의 글을 한 번 더 읽어보시라. 의외로 사실을 적시한 부분이 극히 적다. A 씨의 폭로문 대부분은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전문'), 자신의 감정 토로, 그리고 주장(의견)이다. 폭로 대상의 '문제의 행위'를 묘사하는 객관적 사실 적시는 극히 적다. 그 사실은 아래 세 가지로 추출된다. 

  • "인사 생략"
  • 의자에 앉아 서 있는 A 씨를 향해 핸드폰을 손에 낀 상태로 "삿대질"하며 "말을 쏟아냄"  

유명한 갑질 사건(땅콩회황 사건과 조선일보 손녀 사건)으로 분위기를 잡은 뒤에 폭로 대상에 관한 '들은 이야기'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결국, A 씨가 당한 '갑질'이라는 건 ) 인사 생략 2) 삿대질 3) 말 쏟아냄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인사 생략과 삿대질이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된 사실'이고, "말 쏟아냄"은 도대체 어떤 말을 어떻게 쏟아낸 건지를 그저 읽는 이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다. 

이것은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A 씨는 "나는 글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고 그 내용이 더없는 효과를 내기 위해 결과를 남기고 돈을 받고 일했던 에디터였고 매체의 기자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글을 쓸 이유는 없다.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분석적으로 검토하면, A 씨의 글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어찌보면 아주 무책임한 글에 가깝다(비난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쉽게 추정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주관과 인상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이 글이 폭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가장 강력한 무기를 글 말미에서 슬쩍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무시무시한 핵탄두의 이름은 "녹취"다. 

많은 이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녹취"라는 단어 하나로 있었을 지 모르는 공방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이런 폭로가 있으면 폭로 대상은 어떻게든 자신을 방어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전면적인 반박이든 아니면 부풀려진 사실에 대한 억울함의 토로이든. 하지만 (폭로문에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폭로 대상이 스스로 공개 사과문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갑질'을 스스로 기정사실화했다. 

나로선 A 씨의 폭로문을 읽어도 도무지 아이린이 무슨 짓을 했다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도대체 아이린이 어떤 구체적인 갑짓을 했다는 건가? 갑질의 구체적인 내용은 도대체 무엇인가? 알 길 없다. 하지만 "녹취"라는 강력한 단어의 전략적 노출과 (아마도 이로 인한) 아이린의 순순한 사실 인정만으로 이 갑질 폭로 게임은 끝났다. 그리고 폭로 대상이 인정한 사실을 내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이 폭로문은 굳이 평가하자면, 문장이나 내용으로서는 아주 형편 없는 폭로문이지만, 그 효과로만 본다면, 폭로자의 말처럼 아주 전략적이고 영리하다("내 두뇌를 영리하고 영악하게"). 

아이린의 사과문과 SM의 공식입장문

나는 아이린의 사과문을 누가 썼는지 모른다. 아이린이 직접 썼는지 아니면 소속사에서 대신 써줬는지 나는 알 길 없다. 다만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속죄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잘 정리된 '사과문 예시문' 같은 글이 거기 있었을 뿐이니까.


SM의 공식 입장문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흔히 읽어봤을 법한 그저그런 뻔한 수사들이 마치 '샘플'처럼 놓여 있을 뿐 그 글에서 '미안함'도 나는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바티스텔라라는 학자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 바티스텔라는 '완전한 사과'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참조: 박근혜의 두 번째 사과와 ‘공개 사과의 기술’

  1.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2.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3.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4.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5. 그리고 속죄와 배상 제시

아이린의 사과문이나 SM의 공식 입장문은 위 다섯 가지 요소 중에서 몇 가지나 충족하고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1.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내가 보기엔 거의 혹은 전혀 없다.


2.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아주 추상적인 형태로만 있다.


3.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잘못된 행위 자체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수조차 없다. 그저 추상적인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4.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이 약속은 당연히 아이린의 사과문이나 SM의 공식 입장문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1~3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약속은 공허할 뿐이다. 

공개 사과의 '마지막 조건'에 관하여

그리고 마지막 조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과'의 조건이 남았다. 이 조건에 관해선 좀 더 자세히 써야겠다. 

5. 속죄와 배상 제시

A 씨의 폭로문이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한다는 점은 앞서 살폈던 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폭로문에 담긴 '억울함'과 '분노'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도 앞서 확인한 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폭로 행위에 내포된 '공적 가치, 사회적 가치'다. 

A 씨의 분노는 어느 한 개인의 분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분노, 공적 분노다. 그것이 공적 분노로서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아이린의 '갑질'이 공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린의 갑질은 그저 '성격 더러운' 어떤 아이돌 가수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다. 

그 갑질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 '돈과 권력', '사회적 지위'였다면, 그 갑질은 사회적이고 공적이다. 조현아의 행위도 조선일보 손녀딸의 행위도 아이린의 행위도 그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행위이면서 공적으로 문제되고 '함께' 걱정해야 하는 행위인 이유는 그래서다. 

무엇보다 A 씨는 자신의 경력을 걸고 아이린의 갑질을 폭로했다. A 씨의 폭로로 인해 아이린과 아이린이 속한 아이돌 그룹의 경력은 위험에 빠졌고, SM엔터테인먼트의 쇼 비즈니스도 일정하게 타격을 입겠지만,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위험'이다. 폭로자 A 씨로 인해 그 위험이 가시화했지만, 그 위험을 책임져야 할 장본인은 아이린과 SM엔터테인먼트이지 A 씨가 아니란 말이다(물론 아이돌 그룹의 다른 멤버들도 일정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A 씨는 이 폭로 행위로 자신의 경력을 걸어야 할 아무런 '잘못'(책임)이 없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내부고발자'가 아이돌 쇼비즈니스에서 살아 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이린과 SM의 사과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과의 조건'은 A 씨가 이 폭로 행위로 어떤 불이익도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언명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없다. 

우리는 갑질 폭로에는 진심으로 분노하지만, 그 폭로자, 그 내부고발자의 미래에 관해서는 무심하다. 폭로가 정당하다면, 그 폭로자는 그 폭로 행위로 인해 어떤 불이익도 당해선 안 된다. 그리고 가해자는 폭로자(피해자)에게 어떤 불이익도 생기지 않도록 구체적인 '보상'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사과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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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 by. 르나르도문 초대필자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난 탕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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