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피, 캐릭터 디자인의 정점에 선 토끼

조회수 2016. 8. 12.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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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꿈을 좇던 소년

출처: "나는 아이들이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세계를 만든다"

1927년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주 위트레흐트 시에서 태어난 소년 헨드릭 브루너는 출판사 경영자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항상 책과 그림을 좋아했다.


항상 자신만의 스케치북에 다양한 그림을 채워 넣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던 헨드릭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렘브란트와 고흐의 미술 세계에 푹 빠져 강렬한 색채의 화풍을 선호하며 유화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마무리되던 즈음 다니던 고등학교 교육에 염증이 났던 헨드릭은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으나 그 바람에 사이가 좋았던 아버지와 큰 대립을 빚게 되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는 데는 성공하지만, 덕분에 헨드릭은 화가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출판 가업을 잇기로 하였다. 

출처: 위트레흐트, 위키백과

책을 만드는 일과 같이 할 수 있던 디자인

헨드릭의 아버지는 헨드릭이 학교를 마치고 출판사를 그대로 물려받고 전업 화가로서의 꿈만 포기해준다면 그 외 부업까지 말릴 작정은 없었다. 두 부자는 아들의 장래와 아버지의 은퇴를 두고 다음과 같은 합의를 하게 된다.


집안 이름을 그대로 붙인 '브루너 회사'를 아들이 물려받는 대신 출판과 더불어 디자인 분야의 일도 할 수 있도록 갈등을 풀어나간 것이다. 그 덕분에, 헨드릭에게는 본격적인 미술 공부의 길이 열리게 된다. 


헨드릭은 네덜란드의 다양한 서점들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의 출판사 연수와 더불어 유럽의 미술관과 화랑을 돌며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현대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특히, 페르낭 레제와 앙리 마티스의 입체주의적 표현양식은 일생에 걸쳐 헨드릭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출처: 페르낭 레제, 1881년 2월 4일 ~ 1955년 8월 17일
출처: 페르낭 레제, 건설자들 1950
출처: 앙리 마티스, 1869년 12월 31일 ~ 1954년 11월 3일
출처: 앙리 마티스, 달팽이 1953

경영자가 아닌 디자이너로서의 길


회사의 경영을 맡고 싶지 않았던 헨드릭은 할아버지의 중재를 통해 아버지와 다시 한 번 자신의 진로에 대해 대립하게 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식이 가족 경영 회사에 적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양보를 받아 헨드릭은 브루너 사에 전속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된다.


이제 헨드릭은 디자이너 딕 브루너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디자인을 하게 되는데, 특히 입체주의적인 표현과 추상적인 회화형식을 활용해 다양한 책들의 장정을 만드는데 천재적인 기질을 보이며 점차 책 디자이너로서는 물론 포스터나 도안 쪽에서 큰 두각을 발휘하게 된다. 


1953년 약혼 중이던 여성과 결혼한 딕 브루너는 그 결혼을 기념해 그의 첫 그림책 '사과'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당시 '더 스테일'이라는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사조의 영향을 입어 색채로서는 원색을, 선으로서는 수직과 수평을 중요하게 여기는 매우 단순한 그림 철학에 정착하게 된다. 


출처: 더 스테일 경향의 주창자 헤리트 리트펠트가 1917년 디자인한 적청 의자.

네인티여, 혹은 미피라고 불리는 토끼의 탄생

자신만의 디자인 주의를 완성한 딕 브루너에게는 수 없는 아이디어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는 회사의 상징으로 디자인했던 '곰'에 이야기의 살을 붙여 '검은 곰'이라는 동화 시리즈로 내놓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의 눈에도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그림 동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 '사람의 말을 하지 않는 토끼 동화' 를 생각해내고 1955년 마침내 글자가 없는 그림책 '네인티여'를 내놓는다.


네인티여는 네덜란드어로 작은 토끼를 뜻하는 Konijntie 라는 말에서 더욱 아이들이 발음하기 쉬운 발음을 찾아 단순화한 토끼를 뜻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보이지 않고 현실성도 보이지 않는 구성에 그림은 지극히 단순하게 그려진 동화를 두고 당시 비평가들과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부정적인 뜻을 표했지만


네인티여를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그 작은 토끼에 빠져들어 갈 뿐이었다. 


전 세계 다양한 이름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미피

출처: 브루너 컬러, adobe.com

프랑스어로는 모페, 독일어로는 닌첸, 영어로는 미피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토끼는 어디까지나 '그 나라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하면 된다'는 딕 브루너의 친절한 작명 원칙과 함께 후일 '브루너 컬러' 라고 불리게 되는 특징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원색의 디자인을 입고서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다양한 그림책 시리즈로 선보이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영어와 발음이 같은 미피로 이름지어졌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가 되어 정식 이름이 네인티여 플라위스가 된 이 토끼는 '몽실몽실한 모양'을 뜻하는 플라위스(Pluis) 라는 모양에 잘 어울리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모습의 여자아이가 되었다. 토끼에게는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작가가 토끼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하는 등 성별에 맞춰서 옷을 그리기보다 옷에 맞춰서 성별을 만드는 디자인 우선의 철학도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이들의 눈에 단순하게 보이는 토끼는 뜻밖에 어른들에게, 특히 미술 사가들에게는 해석과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특징적인 색상들은 물론 언제나 얼굴의 방향과 시선을 그림책을 펴든 독자에게 정면으로 두는 연출 등도 다양한 해석을 불렀는데, 딕 브루너는 그에 대해 '항상 책을 통해 독자인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라며 그로서 '더욱 친근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주려는 것이라 했다. 


헬로 키티 시리즈와의 저작권 싸움 소동

출처: 1973년 만들어진 헬로 키티

딕브루너의 미피와 친구들은 전 세계의 수 많은 동화작가들, 디자이너들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 산리오 라는 일본의 캐릭터 전문 기업은 1974년 '헬로 키티'라는 이름의 유명한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그를 토대로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들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특히 1976년 발표된 산리오의 토끼 캐릭터 '캐시'는 정면을 응시하는 기본 디자인, 눈과 입, 서 있는 모양새, 원피스 복장까지 미피의 닮은꼴이나 마찬가지여서 딕브루너가 은퇴를 결심하고 있던 2010년 결국 미피의 저작권을 관리하던 회사 메르시스가 캐시를 미피의 표절작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큰 화제를 빚었다. 


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1년 은퇴를 결심하고 잡음을 없애고 싶었던 딕 브루너의 요청에 따라 소송은 취하되었지만, 오히려 산리오측이 회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염려한 나머지 35년 만에 자사의 캐릭터 캐시에 관한 모든 상품을 생산 중단함으로써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미피의 모습들

출처: 로테르담 길, 명예의 전당
출처: 딕 브루너의 작업 모습

딕 브루너는 은퇴했지만, 그가 남긴 미피와 친구들은 오늘날 네덜란드는 물론 세계 여러 곳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중앙 박물관에 있는 딕 브루너 하우스는 미피는 물론 작가의 작품에 관한 아름다우면서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어 해마다 네덜란드를 찾은 이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미피는 전 세계에서 동화책만 850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은 물론 다양한 영상 작품과 애니메이션들, 그리고 그 디자인으로 구성된 여러 가지 일상 소품들이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최근 미피의 입이 X 자 모양인 데 대해 짓궂은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미피의 입은 어디까지나 토끼의 입 모양을 그대로 단순화한 모양이라 한다.

출처: 암스테르담의 미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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