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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여성 혐오'가 아니다? : '여성혐오' 그것을 알아보자.

조회수 2016. 5. 30. 15: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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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여성혐오'를 '고유명사'로 기재하고 소개한 것은 문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으로, 해당 명사 분류는 '추상명사'가 맞습니다.


이에 표기한 내용을 '추상명사'로 바로잡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성혐오'는 '여성 혐오'가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성별을 떠나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조금씩 엇나가는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여성을 혐오한다’는 일반적인 문장과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요약하면 ‘여성 혐오’와 ‘여성혐오’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여성이라는 명사와 혐오라는 명사를 붙여서 여성을 혐오하는 상황을 가리키게 되지만, 후자는 여성혐오라는 네 글자의 새로운 추상명사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라는 지적에 자신은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며 반발하는 사람들 

그렇다 보니 ‘여성혐오가 큰일이다, 여성혐오 사회가 싫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선량한 남성들이 느긋하지 못한 분위기로 ‘여성을 혐오하다니… 저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투로 자신을 변호하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다. 

그럴 경우 서로 각자 말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단어가 단순한 어감으로 이해하고 이해되길 바라기보다 조금 더 명확하게 뜻을 찾아보고 공유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출처: Gerd Altmann, Freiburg/Deutschland

'여성을 혐오한다'는 표현과 조금 다른 추명사 ‘여성혐오’

추상명사 ‘여성혐오’는 사회학 용어로서 여러 종류의 ‘사회적 차별’ 중 하나이다. 짧은 뜻은 실제로도 ‘여성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이지만, 사회학 용어들이 흔히 그렇듯 이를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쓰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어폐가 있다.


(이미지 출처: newmatilda.com)

당장, ‘차별’이라는 표현부터 보자. 차별의 사전적인 뜻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지만 이를 사회학 용어로 쓰기 시작할 때는 서로 가질 수 있는 특성을 고유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위아래 혹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눠버리는 부당한 구분을 가리키는데, 

많은 사람이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차별’ 이라는 표현이 가진 함의가 대중에게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도 그러하다. 추상명사 ‘여성혐오’는 단순하게 여성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해하는 행위를 가리킬 뿐 아니라 조금 더 넓은 뜻에서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모든 행위와 시선’을 가리키는데 이에는 ‘긍정적인 표현’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다.

‘여자가 이런 것도 해요?'

출처: LoveToTakePhotos
'여자가 이런 것도 해요? 대단하네요!’ 하는 칭찬은 바꿔 말하면 ‘여자는 원래 이런 것을 못한다’는 편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이런 칭찬 또한 ‘여성혐오’ 즉 *'Misogyny'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칭찬은 상대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던지는 선의이자 호의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한 사람에게 ‘당신, 여성혐오에 포함되는 행위를 하셨군요’ 라고 설명충 같은 사람이 지적한다면 그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 못해 억울함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여성을 싫어하지도 않을뿐더러, 상대를 칭찬한 것인데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여성에 대한 온갖 편견과 차별’을 가리키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조금 고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아, 내가 칭찬을 한 것인데 그만 여자들은 다 그렇겠거니 하는 편견에서 그런 칭찬을 했구나’ 라고 말이다.

*Misogyny: 한국어로는 '미소지니'라 읽는, '여성혐오' 를 가리키는 사회학용어.


'여성혐오' Misogyny 는 언제부터 개념화되었나?

출처: stokpic
'Misogyny'의 개념과 용어는 무척 오래되었다.

온갖 고찰과 사상이 인류사회에 대한 법칙과 철학으로 정립되기 시작하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Misogyny'는 ‘여자를 깔보는 혹은 멸시하는 현상’으로 서 정립되기 시작했지만,

인류 사회가 20세기를 맞을 때까지 그 현상이 어떻게 여자들을 억누르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몇 학자들만이 논의와 고민을 짊어졌고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에 익숙해진 채 근현대 사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

즉, 개념은 오래되었지만, 그 개념을 제대로 논의하는 것조차 이뤄지지 못한 것은 그만큼 여성들이 사회에서 그만한 지위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식의 순환적 억압의 굴레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신사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건한 영국은 그만큼 많은 사회적 제도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여성에게 정치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영국에 생긴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1928년이다.

‘여성혐오’가 고대의 철학자들에게 기원전부터 발견되고 개념이 정립되었으면서도 그것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천오백 년이 지나 생기기 시작한 것이며, 극히 최근 들어서야 현대사회는 ‘여성혐오’의 넓은 뜻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Misogyny', '여성혐오'의 반대말도 있을까?

모든 정립된 개념에는 그 반대되는 개념이 있듯이 ‘여성혐오’에도 그 반대의 용어가 있다. 즉 ‘남성혐오’(Misandry)인데, 고대부터 근대까지 ‘남성혐오’는 짧고 단순하게는 ‘남성을 그저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의 의미로부터 ‘남성에게 억눌려온 여성들이 거꾸로 남성들에게 반발하는 것’의 의미로 조금씩 바뀌어왔다.

이를 두고 몇 사회학자는 ‘남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혐오가 타파되면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반발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Misogyny'는 언제부터 한국에서 '여성혐오'로 소개되어왔을까?

출처: Michal Jarmoluk
한국사회에서 사회학 용어 'Misogyny'가 '여성혐오'로 소개된 시기는 검색엔진과 언론 자료의 기록들을 토대로 볼 때 1997-1998년 사이 듀나 같은 문화평론가에 의해 나타나기 시작하며 2000~2008년 무렵까지는 긍정적인 표현까지 아우르는 ‘차별’보다 ‘여성을 혐오하는 행위’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혐오’ 가 ‘여성을 혐오하는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가리키는 현상어라는 것이 ‘새롭게 추상명사화된 시기에 비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Misogyny' 가 '여성혐오'라는 단어로 번역된 것은 오역인가?

위와 같은 현상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Misogyny’를 ‘여성혐오’로 번역해서 뜻이 제대로 와 닿지 않도록 하였느냐고 상식적인 반론을 제기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번역자의 오역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Misogyny 라는 용어 자체가 번역 이전에 실제로 단순하고 짧은 ‘여성을 혐오하는 것’만을 뜻하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지금의 ‘여성을 멸시하고 폄하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다.

그러니 Misogyny 를 ‘여성혐오’로 번역한 것을 오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도 영문 위키백과에는 Misogyny의 첫 뜻을 서두에 짧게, “The hatred or dislike of women or girls.” (여성이나 어린 여성에 대한 증오 혹은 반감) 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어떤 표현으로 번역되었는지’ 가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언어의 사회적인 특성을 살필 때 ‘어떤 뜻으로 쓰이게 되는지’가 훨씬 중요한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현재 ‘치킨’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 영어 단어로서의 ‘닭’을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닭도 아닌 고기로서의 부위도 아닌 ‘완성된 요리’로서 ‘치킨’이라는 단어를 구사하고 있는 사회지만 아무도 ‘치킨’이라는 단어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그 함의를 잘 몰라 곤란을 겪는 일은 없다.

그러나 실제 쓰이고 있는 의미를 참작하면 ‘치킨’은 당장 ‘프라이드 치킨 요리, 혹은 기름에 튀긴 통닭요리’라는 다소 긴 표현으로 바꿔서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치킨’을 ‘닭’으로 알고 있는 사람과 ‘프라이드 치킨 요리’로 알고 있는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현재 대부분 사람은 ‘치킨’이란 단어를 두고 그런 불편함을 겪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여성혐오’를 두고 다른 번역어나 개념어를 찾는 것보다는 1997년부터 소개되어 온 이 단어의 넓은 뜻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출처: Sharon Ang, Singapore/Singapor

'여성혐오'에 직면 중인 한국사회

출처: 1985년 영화 '레모'의 한장면, 실제 대사이다. Warner Bros.
출처: 1985년 영화 '레모'의 한장면, 실제 대사이다. Warner Bros.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비극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라는 표현에 대해서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해당 사건은 한국 형법에서 ‘여성혐오’ 혹은 ‘여성증오범죄’로는 분류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현재 사회의 반응과 시각에서 ‘여성혐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여성혐오’는 ‘오직 남성만이 여성에게 가지게 되는 현상’도 아니며, ‘남성이 여성을 미워하는 현상’은 더더욱 아니다

여성이 같은 여성에게 ‘넌 여자가 되어서 왜 그렇게 조신하지 못하니’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성혐오’이다.

남성이 같은 남성에게 ‘넌 남자가 되어서 왜 그렇게 용감하지 못하니’ 라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여성혐오(혹은 반발적 의미에서의 남성혐오)’이다.

한쪽 성별에 대한 고정적인 역할 강요와 편견이 곧 증오와 혐오로 이어지고 작게는 개인 간의 스트레스 크게는 집단 간의 폭언을 불러오는 것은 모두 ‘여성혐오’ 같은 용어가 아니면 쉽게 짚기 어려운 ‘기성사회의 구조’이자 ‘현재’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여성혐오’를 두고 남성과 여성이 대립할 것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해결해가야 할 장벽임을 직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사회는 계속 성별에 기반을 둔 갈등과 대립이 제2 제3의 강남역 살인사건을, 제3 제4의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낳게 되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야기하는 사회적 공포는 굳이 '살인 상해사건'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숨 쉴 수 없는 세상, 그저 빨리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집에서 어르신과 남성들의 시중을 들다 자신이 그 어르신이 되어 시중을 받기 전 까지 쉴 수 없는 세상' 이 주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는 한국사회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가 가장 크게 직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성혐오’가 ‘여성을 혐오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것, 그 뜻부터 서로 일러주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출처: OpenClipartVe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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