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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씩 키워본 딸자식에 대해 알아보자

사실 저는 한 번도 공주로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by 뻔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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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디 작성일자2017.08.30. | 3,969 읽음

1991년 5월 24일 가이낙스에서는

나라를 구한 용사가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운다는

육성 시뮬레이션의 전설 프린세스 메이커를 첫 발매한다.

미소녀의 캐릭터 디자인과 더불어 딸을 키우는 방식에 따라

화류계에서부터 공주까지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특히 미소녀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자라면 한 번쯤은 플레이해 봤을 것이다.

이러한 미소녀 일러스트는 젊고 매혹적인 여성 묘사에 있어

최고라 일컬어 지는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프린세스 메이커 이외에도

수많은 일본의 창작 미소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프린세스 메이커는 '정해진 기간 동안 딸을 키워 출가시킨다'는 점이 모성애를 자극해

오히려 남성보다 여성 플레이어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개발 당시의 이름은 '마이 페어 차일드'로

빈민가 출신의 부랑녀를 교육시켜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든다는 스토리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프린세스 메이커 1의 히트에 이어 프린세스 메이커 2는 시리즈 통틀어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새롭게 추가된 사운드 카드에 이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캐릭터 디자인은

게이머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다.

더불어 그 유명했던 일명 dd파일,

이 파일을 지우고 게임을 플레이하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의 딸이 등장하는 버그가 있었다.

이에 제작자 '아카이 타카미'는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이 아닌 실수로 디버그 모드 사양이 남아 버린 탓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3에서는 용사였던 아버지의 직업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됨으로써

인기 콘텐츠였던 딸의 무사수행이 빠지게 되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로부터 8년 만에 나온 프린세스 메이커 4에서는 일러스트 담당이었던 '아카이 타카미'의 건강악화설, 가이낙스와의 불화설 등 여러가지 이슈가 있었고

결국 일러스트 작가가 교체되면서 그림체가 급작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에겐 이 점이 매우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프린세스 메이커 3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딸의 무사수행 콘텐츠 또한 여전히 도입되지 않아

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폭망을 기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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