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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감독이 반지의 제왕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

역사는 역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네요...* by 뻔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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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디 작성일자2017.12.19. | 7,67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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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러분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높은 분이라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본 적이 없을 뿐 더러

비주류 영화만 만들어오던 감독에게 선뜻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엄청나게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은 최소한 스티븐 스필버그 급은 돼야 감히(?) 반지의 제왕을 연출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이에 따라 반지의 제왕과 피터 잭슨 감독의 결합은 시작부터 많은 우려를 안고 시작됐습니다.

이 때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연출하기 전에 받았던 세간의 평가는

‘고어물을 좋아하는 B급 영화 감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죠.

심지어 피터 잭슨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터 잭슨은 어떻게 반지의 제왕을 맡을 수 있게 됐을까요?

1990년 대 할리우드는

<쥬라기 공원>의 대성공에 영향을 받아 영화에 CG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잭슨도 자신의 영화에 CG를 적절히 녹일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고 있었죠.

원래 잭슨은 1933년 작 <킹콩>을 보고 영화감독을 꿈꿨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첫 선택은 <킹콩> 리메이크 였습니다.

그러나 장소 섭외 문제로 인해 킹콩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았죠.

이에 따라 원래부터가 지독한 톨키니스트였던 잭슨은 차선책으로
반지의 제왕을 구상하게 됩니다.

일찍이 반지의 제왕은 제작 기술 문제나 분량 문제로 인해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조차도 포기했던 소재였습니다.

그 와중 뉴질랜드의 햇병아리 감독이 반지의 제왕을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어떻게든 할리우드와 연줄을 맺고 투자를 받아야만 했죠.

이 때 그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성추문으로 이슈가 된 하비 웨인스타인이었죠.

미라맥스의 사장인 웨인스타인은

잭슨의 영화이자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천상의 피조물>을 인상깊게 보았고

잭슨과 '퍼스트 룩'이라는 계약을 맺게 됩니다.

내용인즉슨, 미라맥스에서 잭슨을 지원하는 대신 그가 추진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첫 번째로 검토할 수 있다' 라는 것이었죠.

이후 반지의 제왕 아이디어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갔고,

웨인스타인과 잭슨은 ‘제작비 7500만 달러’ 그리고 '2편의 영화' 라는 내용으로 사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잭슨은 제작비 견적을 내러 뉴질랜드에 파견한 프로듀서로부터

"제작비가 두 배로 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게 됐는데요...

이 때문에 잭슨은 다시 열린 협상에서 총제작비 2억 달러 + 3편으로
제작하면 안되겠냐고 조심스레 제의합니다.

이 받아들여질 리 없는 조건 앞에 웨인스타인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투자사를 하나 더 찾아오든가, 두 시간 짜리 한 편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아예 프로젝트를 엎으라며 잭슨을 몰아세웠죠.

그러나 반지의 제왕의 엄청난 분량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는 건 물론이고

프로젝트를 엎는 건 더더욱 내키지 않았던 잭슨은

차라리 본인이 발품을 팔아 제작사를 전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무모해보이는 계획을 믿어줄 제작사가 나타날 리 없었죠.

7번을 거절당하며 크게 낙담한 잭슨은

뉴질랜드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마지막으로 '뉴라인 시네마'와의 미팅에 참여합니다.

사실 당시 뉴라인시네마는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거리가 아주 먼 회사였기에 잭슨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난다는 말처럼 잭슨에게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뉴라인의 공동대표 로버트 셰이는 두 편의 영화 제작 계획을 열심히 설명하던 잭슨을 가로막고 물었죠.

"시나리오는 세 권인데 영화도 세 편 만들지 그래요?"

천군만마를 얻은 잭슨은 반지의 제왕을 각색하는 작업에 돌입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1978년 작 애니메이션 반지의 제왕의 프로듀서였던 사울 제인츠가

자신이 소유한 원작 판권을 누구에게도 팔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하지만 될 놈은 된다는 말처럼 그 무렵 웨인스타인은

우연히도 제인츠가 프로듀서를 맡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1년 넘게 제인츠를 설득해 잭슨을 감독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게 됩니다.

원작자인 톨킨조차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이라 못박았던,

당시의 기술로는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바로 그 반지의 제왕을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 피터 잭슨.

비록,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내가 만든 최고의 영화들이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만 남아있을 것이다" 라는 농담을 현실화시키고 있긴 하지만..

그가 영화사에 남긴 업적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겠죠.

중간계의 쩌리 취급받던 호빗이

반지를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피터 잭슨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반지의 제왕에 녹여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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