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자년 새해를 여는 뜨끈한 칼국수 맛집 BEST 4

조회수 2020. 1. 8.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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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꼭 생각나는 칼국수 한 그릇

하얀 밀가루만 봐도 가슴이 뛰던 시절이 있었다. 안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갈색 맥주병으로 반죽 미는 모습만 봐도 식욕이 동했다.


어릴 적 연례행사처럼 먹던 칼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누군가는 밀가루에 물을 섞고 힘을 들어야 했고 또 누구는 닭을 삶아 육수를 뽑아야 했다.

파는 칼국수는 흔했다. 동네 슈퍼에 가면 널린 게 말린 칼국수 면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발로 반죽을 눌러 만든 칼국수는 면에서 튕기는 식감이 동네 조기 축구와 국가대표 축구만큼 차이가 컸다. 체중을 실어 빚은 칼국수는 꿀렁대는 생명체 같았다. 갓 낚싯대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꿈틀꿈틀 육중한 무게감이 이에도, 그리고 두개골에도 느껴졌다.

나는 한 마리 짐승처럼 칼국수 면을 이로 잡아 뜯었다. 칼국수가 허공에 찰나 머물렀다. 상아색으로 빛나는 면이 찰랑거렸다. 면에 육수가 묻어 더욱 빛이 났다. 그 면이 입속으로 후두둑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박고 젓가락질을 했다. 그 시간이 쌓여 나는 나이를 먹었다. 면을 밀던 이들도 나이가 들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칼국수 집들도 비슷한 신세다. 미국산 밀가루를 원조받던 시절 생겨난 집도 있다. 본격적으로 외식을 하던 시기에 문을 연 곳도 있다. 여전히 가장 저렴한 밀가루 원가 하나 믿고 칼국수 집 차리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이름값 하는 대한민국 대표 칼국수 맛집,
일산칼국수

교외에 가면 어디를 가나 큰 건물 올린 칼국수 집이 있다. 그중 유명세와 맛이 비슷하게 따라가는 축을 꼽자면 일산의 ‘일산칼국수’가 꼽힌다. 커다란 주차장은 언제나 만차고 주차를 돕는 이들은 이면도로까지 나와서 차를 정리한다. 처마 밑에 길게 늘어선 줄은 언제와도 비슷한 형국이라 마치 전시물 같은 느낌까지 든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으면 매우 한국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파마머리 중년 여자들이 쉴 새 없이 상을 치우고 닦는다. 사람들은 주섬주섬 자리에 앉아 상을 다시 닦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다. 주방을 보면 마치 곡예를 하듯 면을 삶고 국수를 옮겨 담는다. 어쩔 수 없는 면 요리이기 때문에 주문에 맞춰 면을 삶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주방의 혼잡도가 극에 달한다.

치렁거리는 면이 그릇에 담기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내 앞에도 큼지막한 대접이 놓인다. 대접 안에는 바지락과 닭고기가 넘실거린다. 해산물과 닭으로 육수를 뽑아 섞으면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각각 가진 감칠맛이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탓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떠넣으면 혀가 당기가 침이 도는 달달한 맛이 뚝뚝 떨어진다. 젓가락으로 면을 걷어 올리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만큼 면에 걸린 탄성에 고집이 있다. 그 고집을 이기려면 어쩔 수 없이 고개가 겸손하게 숙여진다.


면이 찰랑거린다. 국물이 튀긴다. 시뻘건 겉절이 김치를 가위로 잘라 입에 넣는다. 시고 짜고 매운 맛이 국물에 섞인다. 전분이 섞여 끈적이는 점도가 생긴 국물을 마신다. 일어날 때가 되면 살찐 거위처럼 뒤뚱거리게 된다. 잘 먹었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넉넉한 닭고기, 푸짐한 국물과 면, 풍성한 김치, 한국 음식이 뭐냐고 묻는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집 중 하나다.


강남에서 만나는 칼국수 한 상,
논현 한성칼국수

강남 논현동 ‘한성 칼국수’에 가면 교외가 아닌 강남에서 어떻게 칼국수를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칼국수를 시키면 단정하게 사기그릇에 받혀 나온다. 그릇에 담긴 칼국수는 얌전히 애호박 고명만 올라갔을 뿐 별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먹어야 할 것처럼 점잖은 모양새다.


양반다리 한 다리를 더욱 받듯이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젓가락을 놀린다. 혀에 올라온 국수 가닥은 부드럽고 미끈거린다. 얽히는 것 없이, 거친 것 하나 없이 매끄럽게 혀를 거쳐 몸속에 밀려온다. 사골과 고기를 삶아 뽑은 국물은 온 세상의 진기를 달이고 달인 듯싶다. 처음 본 그릇은 작다 싶었지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넉넉한 한 끼가 된다.

강남에 온 칼국수 집은 국수만 팔지 않는다. 야트막한 접시에 담아 파는 수육은 소고기인 탓에 만만찮은 값이 나간다. 그러나 점잔을 뺄 틈은 없다. 삶은 기술이 좋아 질긴 구석 없이 살살 녹아 버린다. 이런 고기라면 굳이 구울 필요가 없어 보인다. 센 불에 화르륵 볶아 불맛이 야금야금 느껴지는 낙지볶음을 시키면 상 위에 술병이 늘어난다. 이 집의 특기라는 모둠전은 접시 담음새부터가 알차다. 노릇노릇 노란색이 어여쁜 전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지하에 낮게 자리한 이곳에 고소한 냄새가 풍기면 사람들 웃음소리도 그만큼 커진다.


육향 가득 진한 국물의 맛,
연희동칼국수

아마 국물의 밀도로만 따지면 연희동 ‘연희동칼국수’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이곳 역시 매시 매분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그 좁은 연희동 골목에서 주차장을 가진 몇 안 되는 집이기도 하다. 이 집은 지상, 지하로 층이 나뉘는 데 운 나쁘게 지하로 가게 되면 미리 값을 치러야 한다.


자리를 잡으면 한눈에도 피곤에 지친 중년 여자들이 그릇을 날라 준다. 면은 전형적인 칼국수라기보다는 제주 고기국수에 흔히 쓰이는 중면에 가깝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면이 아니다. 국물을 마셔보면 이 집에 사람들이 밀려드는 이유가 단박에 느껴진다. 한우를 우려 만들었다는 국물은 고기의 육향이 120% 들어가 있다. 이 국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고 땀이 이마에 맺힌다. 어르신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이유도 아마 이 묵직하고 뜨거운 국물 때문인가 싶다.


칼국수 한 그릇에 담긴 고향의 맛,
오장동 고향집

이 모든 것이 지나고 그저 국수 한 그릇만 바라게 될 때는 오장동 ‘고향집’에 들른다. 마치 예전 살던 집처럼 단독건물 작은 마당이 딸린 이 집에 가면 중년이라 부를 수 없는 머리 하얀 노인이 손님을 맞는다.

직접 반죽을 빚는 고향집은 국수를 먹기 전에 주인장의 기력과 건강부터 살피게 된다. 먼지 하나 내려앉지 않은 방안에 앉아 엉덩이를 지지고 있으면 국수는 천천히 앞에 다다른다. 거칠지 않다. 부드럽다. 상냥하다. 이런 말들이 떠오르는 면을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건져 올린다.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면을 이로 씹는다.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홍콩의 완탕피를 먹는 것처럼 하늘거리는 면에는 서늘한 기품이 서렸다. 이 기품 덕에 앉아 먹는 사람들도 허겁지겁 분초를 다투지 않는다. 대신 대접받는 옛 손님처럼 시간을 들여,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국수 한 그릇을 비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맑고 순하며 따스한 칼국수 한 그릇. 국수 한 그릇 잡숫고 가라는 수더분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지금. 이 집을 지키는 주인장에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바란다. 그래서 이 국수 한 그릇을 오래오래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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