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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쟁취하라" 인간 VS. 모기 전쟁기

조회수 2016. 7. 15. 17: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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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전쟁의 서막

전 세계 19개 박물관과 연구 센터의 소식지 ‘Smithsonian insider’는 2013년 10월 한 화석에 대해 보도합니다. 무려 4,600만 년 전 화석입니다. 그 화석은 뱃속에 피가 들어 있다고 확인된 ‘모기’의 화석 중 가장 오래된 화석입니다. 인류는 최소 4,600만 년 동안 모기에게 물어뜯겨 왔던 거죠.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은 2015년 가장 인간을 많이 죽인 동물로 사람도, 악어도 아닌 ‘모기’를 지정했습니다. 이들이 추산한 피해자는 무려 72만 5천 명이나 됩니다. 대부분이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모기와 인간이 부대껴온 역사는 이처럼 깁니다. 인명 피해도 컸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장마로 기후가 꿉꿉한데 슬슬 모기도 활개치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모기와 전쟁을 선포하고 싶어지는데, 손에 든 ‘뿌리는 해충약’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인간은 ‘모기 퇴치’를 위해 그간 어떤 ‘무기’를 만들어 왔을까요. 몸으로 때우다가 화학 약품을 만들고 최첨단 퇴치 기계까지 탄생시킨 그 지난한 과정을 3단계로 정리해봤습니다.


1기 – 육탄전

살충 제품이 등장하기 전 육탄전이 주를 이룰 때에는 인간은 고전을 면치 못 했을 공산이 큽니다. 우선 모기는 잠에 취한 사람들의 귓가를 저공비행하며 짜증을 유발합니다. 이성을 잃게 하는 심리전에 능하죠. 더욱 어려운 점은 이들이 시공을 자유로이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작은 몸집과 화려한 비행기술로 요리조리 피하는 모기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뛰어난 후각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쉽게 사람을 찾아냅니다. 서울대학교 농생명대 안용준/권형욱 교수 연구팀은 2015년 학술지 <Scientific Reports> 온라인판에 게재한 논문 ‘A novel olfactory pathway is essential for fast and efficient blood-feeding in mosquitoes’을 통해 모기가 어떻게 피냄새를 감지해 흡혈을 하는지를 밝혔습니다.


비밀은 바로 침 끝에 달린 감각모에 있습니다. 모기는 이 감각모의 후각 감지 능력을 이용해 피냄새를 구분합니다. 정확히 피해자의 몸 위에 안착해 흡혈을 하는 비결이죠.


모기는 직접 인간을 물어뜯는 공격 외에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같은 질병을 옮기는 간접 공격도 자행합니다. 특히 말라리아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매년 3~5억 명 정도가 말라리아에 걸리고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가 바로 모기죠. 모기는 주둥이에 달린 감각모를 포함한 모기의 신체 자체가 하나의 무기인 겁니다. 마땅한 무기가 없어 모기와 ‘육탄전’만을 펼쳐야 했던 인간에게 모기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죠. 


2기 – 생화학무기: 반격의 시작

과학이 발전하며 인간도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적극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 신호탄은 ‘제충국’이었습니다.


제충국은 살충 성분이 있는 국화 계열의 꽃입니다. 제주농업기술원 농업연구센터 생물산업과 양석철 연구원 외 2명이 작성한 ‘자연자원의 관광적 이용기술 개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제충국은 발칸 반도 달마티아(Dalmatia)지방이 원산지입니다. 


살충 효과가 발견되면서 유럽으로 점차 전파되었고 1860년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일본에는 1885년경에 도입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일본에서 들여온 걸로 추정됩니다. 그 후 1935년엔 일본이 세계 1위 생산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식물의 꽃과 열매에는 곤충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피레트린(Pyrethrin)라는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피레트린은 곤충에겐 신경을 마비시키고 죽음에 이르게하는 무서운 독이지만, 사람에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때문에 최근 웰빙 열풍과 더불어 다시 제충국의 천연 피레트린 성분을 이용한 살충제나 농약이 각광받고 있다고 하네요.


제충국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피레트린을 추출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저 꽃을 심어 놓거나 말려서 가루를 내어 태우는 기초적인 방법으로 이용했습니다. 한동하 한의학 박사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말린 볏짚, 풀, 계피, 박쥐, 유황 등을 태우는 ‘모깃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제충국이 수입된 이후엔 이 방식을 차용해 말려서 가루를 낸 제충국과 톱밥을 같이 태워 모기를 쫓아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제충국 분말과 톱밥을 넣고 태울 화로가 필수적이었고 이는 열기로 인해 주변의 온도가 올라감을 의미합니다. 모기는 주로 여름에 등장하는데, 모기를 쫓자고 불을 피우면 모기는 쫓아질지언정 더위와 한 판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제충국의 세계 1위 생산국이었던 일본의 제충국 생산량이 급락했고, 제충국에 의지하던 국가들은 대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마법처럼 DDT가 등장했습니다.


1900년대 중반에 개발된 DDT는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모기로 인한 질병으로부터 수많은 목숨을 구했습니다. 미국의 과학사 전문가 프레더릭 로웨 데이비스는 저서 ‘Banned’에서 DDT를 최초의 화합물 살충제로 소개합니다. 


천연 재료인 제충국을 태우기만 하던 최초의 살충제보다 진일보한 셈이죠. 개발자인 스위스의 파울 헤르만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출처: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책 ‘침묵의 봄’을 발간하며 DDT의 유해성을 지적해 논란이 일었고 여러 국가들이 DDT 사용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환경보호국의 ‘DDT Regulatory Hitory: A Brief Survey(to 1975)’를 보면 1972년 미국에서 DDT의 사용이 전면 금지됐습니다. 우리나라는 1986년 금지됐죠. 2001년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정한 국제 협약인 스톡홀름협약(Stockholm convention)에 의해 DDT의 사용이 공식적으로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이 협약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도, 북한은 여전히 DDT를 생산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70년대부터는 스프레이형 살충제, 메트형 살충제 등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에프킬라, 홈키파, 홈메트 등이 등장하며 단박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의 강점은 싼 가격과 어디서든 구하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3기 – 현대 과학 무기

모기는 생존을 위해 약에 대한 내성을 키워갔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가을의 기온이 올라가 심지어 ‘가을 모기’도 생겼습니다. 전문가들은 ‘공동주택,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정화조, 지하 주차장, 보일러실같이 모기가 살기 좋은 환경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인류도 더 확실하게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전장에 등장해 비릿한 단백질 타는 냄새와 함께 모기를 박멸하는 ‘전기 모기채’가 이미 널리 보급되었죠. 마치 K2 소총처럼 개인화기의 역할을 합니다.


또 음식점이나 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푸른빛이 감도는 등도 있습니다. 전기 모기퇴치기, 혹은 모기등이라고 하죠. 이 기기는 모기가 좋아하는 350nm~370nm 파장의 푸른빛을 발합니다. 


빛에 현혹된 모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감전돼 죽습니다. ‘모기 지뢰’ ‘모기 부비트랩’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최근에는 기능은 더 강화되고 크기는 줄어든 가정용 제품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레이저로 모기의 움직임을 감지해 요격하는 무기까지 개발됐다고 합니다. 모기 날개 소리를 추적해 요격하는 원리입니다. 


개발회사인 인텔렉추얼 벤처스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기술이 완성되고 상업화된다면 일정 장소에 레이저 울타리를 만들어 ‘모기 청정구역’을 형성할 수 있을 거라 설명합니다.

출처: 강남구 보건소 장순식 방역팀장

우리나라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2010년 강남구 보건소의 장순식 방역팀장은 물을 진동시켜 거품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초음파 방역기’입니다. 장치는 발진부와 진동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발진부를 모기 유충이 서식하고 있는 정화조 집수정 등에 넣고 전원을 누르면 초당 4만 2천번의 진동을 발생시킵니다. 진동으로 인해 발생된 거품이 모기 유충과 만나면 마치 폭탄처럼 터지면서 유충을 퇴치합니다.


장순식 방역팀장은 <이웃집과학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장치는 겨울에 정화조나 실내에 고인 물웅덩이 등 제한된 장소에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높은 유충 퇴치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 장치에 관해 몇몇 언론에서는 특허 출원을 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네요. 따라서 강남구 보건소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아무런 제한 없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

생태계에서 하나의 종을 인위적으로 멸종시킨다는 건 쉽지가 않죠. 모기는 평소엔 벌처럼 꽃이나 풀의 영양분을 섭취하다가 산란기가 된 암컷만이 단백질 공급을 위해 흡혈을 합니다. 상대적으로 식물의 영양 확충에 도움을 주게 되죠. 


모기를 멸종시키면 먹이사슬의 변화뿐만 아니라 식물의 개체 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모기 박멸 반대파의 입장입니다.

출처: 네이쳐

그렇다고 연 7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손 놓고 볼 수도 없죠. 최근 중남미를 중심으로 창궐한 이집트숲모기가 ‘지카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올해 브라질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기 박멸을 찬성하는 이들은 모기가 사라진다 해도 모기가 하던 역할을 다른 생물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특집 기사 ‘A World Without Mosquitoes’를 보면 다수의 곤충학자, 보건 의료 전문가들은 모기가 사라지면 모기로 인한 질병에 투입되던 예산을 절약해 복지예산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모기와 인간의 전쟁은 언제쯤 막을 내리게 될까요. 현재로선 끝이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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