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 없는 틱 장애.. '개콘' 떠나야했던 개그맨 근황
어린 시절부터 항상 반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가장 웃긴 아이로 불리며 최연소로 KBS 공채 개그맨에 합격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넘치는 재능과 연기력, 개인기까지 갖춘 그는 동료와 연출가에게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계속된 틱장애가 그의 무대를 빼앗아갔습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포기할 수도, 방황할 수도 있었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되면서 더 열심히, 밝게 살아가고 있다는 그, 김진 씨의 근황입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2005년에 공채로 데뷔했어요. KBS 공채 20기, 16년 차, 16년째 유망주입니다.
개그콘서트 하던 당시에 제 메인 코너를 많이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노래로 들으면 딱 알아요. '아버지가 사다주신~♬ 마징가 마징가~♬' '마징가' 주인공이 윤형빈 김진이예요. 아니다 김진 윤형빈이에요ㅋㅋ
'다른 코너에서도 활약하셨어요'
유세윤, 오지헌, 김시덕 씨랑 같이 나왔던 혈액형 개그라고 있어요. 코너 명은 'B.O.A'. 김시덕이 O형이고 오지헌이 B형, 유세윤이 A형, 그리고 제가 AB형이에요. 혈액형별로 캐릭터가 있는 거죠. 그 외에도 '짜장면 배달 왔습니다~ 안 시켰는데요? 알아요ㅋ~' 이러고 나가는 그냥 사이코적인 코미디도 했었어요.
'개콘'에서 하차하게 된 사연이 있으신가요?'
계기가 있죠. 틱 장애가 좀 심했었어요. 지금도 눈을 좀 많이 깜빡거리고 입을 좀 이렇게 하고 코를 좀 만지고 이 정도 해요. 이 정도를 보면 사람들이 쉽게 말하면 '정신없다 쟤...'라고 말해요. 그런데 제가 심할 때는 막 팔 돌리고 계속 만지고 많이 흔들고 비틀고 막 옷 잡아당기고 그래 가지고 방송에 좀 부적합했던 것 같아요.
'개그맨 활동 하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체험 삶의 현장'을 출연했을 때예요. 정명훈 선배하고 같이 닭똥을 푸러 갔어요. 계속 제가 얼굴 만지는 거 알죠? (코를 만지는 틱이 있는 거 느끼셨죠?) 아니 똥을... 제 얼굴에 자꾸 똥을 묻히는 거예요. 당시 카메라 감독님이 '아휴 김진 씨 왜 자꾸 카메라 봐요~' 뒤에서 찍고 있는데 내가 틱 하니까 카메라 보는 줄 알고 그러신 거죠. 그래서 '실은 감독님 제가 틱이 좀 있어가지고..' 하니까 '미안해요 몰랐어요' 그러시더라고요.
2006년에 '개콘' 인기가 엄청났어요. 카메라 감독님들도 상당히 무서웠어요. 3번 카메라 감독님이 녹화 도중에 저한테 '야!!! 개그맨 신인이지? 너 왜 자꾸 딴짓하냐?'라고 하셔서 정명훈 선배가 옆에서 '아.. 감독님 이 친구가 틱 장애가 좀 있는데요..'라고 해줬어요. 감독님은 사실 제가 웃고 있는 장면을 담아주려고 이렇게 하고 있던 건데 제가 계속 딴 곳을 본 거죠.
'틱 장애 때문에 '개콘'을 그만 두게 되신 건가요?'
제가 당시에 다큐멘터리에 나갔어요. 그런데 방송에 나간 후에 문제가 있었어요. 틱장애인 들을 위한 복지와 혜택이 제 마지막 목표이기도 해요. (당시 방송에서) 그분들을 위해서 뭔가 이렇게 '앞에서 외쳤다'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는데, (공식적으로) '네가) 장애라고 말했기 때문에 앞으로 개그를 할 때 네가 당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 당시) 내가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버텨낼 수 있는, 좀 더 좋은 지혜가 필요했겠죠. 근데 사실 그때 우울증이 처음 온 거죠. 정말 내 삶의 모든 게 '개그맨'을 향해 있었는데 개그맨이 된 나는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나 나무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동료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활약 중이에요'
제 동기들이 유민상, 이동윤 (턱시도), 김재욱 (제니퍼), 윤형빈, 변기수, 박휘순, 신봉선, 정경미, 그 다음에 출산드라.. 사람들이 진짜 나만 몰라요ㅎ 우리 기수 진짜 잘 됐어요. 저만 남았어요..
(솔직하게) 지켜보는 게 죽을 맛이었어요. 진짜 죽을 맛이고.. TV를 보잖아요? 첫 번째, 화가 치밀기 시작해요. '나 저거 할 수 있는데. 아 내가 저기 나갔으면 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데..' 이게 잘못된 거예요. 내가 정말 저만큼 할 수 있으면 가야죠. 오디션 봐야죠. 근데 오디션 볼 용기도 없고 떨어지면 또 내가 실패자가 될까 봐 나 스스로 자존감은 땅바닥에 있고 자존심만 높아 가지고... 저는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해요. 틱 장애 때문 아니에요 지금 봤을 때는. 근데 틱 장애가 있고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에서 우울증이 왔을 때는 그 모든 게 틱 장애 때문으로 보인다는 게 나를 내가 죽이는 거잖아요.
'틱 장애로 곤란한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 틱을 막 하니까 놀리기 좋잖아요. 사실 폭행도 많이 당했어요. 아픈 사연도 많이 있어요. 근데 오히려 성인이 됐더니 놀리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뭐 말만 하면 '틱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틱 있는데 괜찮아? 운전해도 돼?'라고 해요. 아무 생각 없이 농담 한 마디씩 하는 거 사람 죽이는 겁니다. 틱 장애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요. '참을 수 있으면 참으면 되겠네. 하지 마.'라는 식으로요. 본인이 똥 마려울 때 누가 귀에다 똥 싸라고 말해 줘요? 내 몸이 그냥 느끼고 화장실로 가는 거 아니에요? (틱이라는 건) 이런 행위예요. 똥 참을 수 있잖아요. 참을 수 있어요. 참으면 안 되니깐 안 참는 거죠.
'힘든 시기, 그래도 극복하셨어요'
누군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면 들리잖아요. 그거를 해석해서 듣는 거예요. 번역해서 듣는 거죠. '저 X끼 X신 새 X 틱 있네~'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 때가 있어요. 그 소리가 들어오는 순간 '아이고 저 사람이 화가 많구나. 불쌍해 어떡하지? 안아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요.
들린 거는 번역해서 듣고 내 마음속에서 해석을 다르게 해서 입으로 필터를 거쳐 뱉어요. '불편한 일 있으세요?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하면 그 사람도 녹아요. 그 사람도 변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살다 보니까 내가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방송 쉬고 나서는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장사도 해보고 와인바도 해보고 청바지도 좀 팔아보고 감사하게 결혼을 했어요. 애기가 이제 두 달 되었습니다. 60일 됐어요. 그리고 방송에도 많이 못 나왔지만 전 행사의 달인이에요. 동네에 있는 작은 시장 행사 말이에요. 이 사무실 4분의 1만 한 공간에 노래방 기계 하나, 전자레인지 한 세 개 쌓아놓고 하는 행사부터 '삽시도 노래자랑'도 갔다 온 사람이에요. 들어가면 못 나와요ㅎ
'마지막으로 근황올림픽 시청자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긴 영상 봐주시느라 너무 감사드려요. 근황 올림픽, 참 좋은 프로입니다. 이렇게 잊혀 가는 사람들을 찾아서 한 번씩 살아갈 힘을 주고 말이죠. 여러분도 이 영상 보시고 힘 얻으시고 나의 없는 부분 자꾸 생각하고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많이 가진 거 그거 느끼시고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거,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 거,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여러분 건강하시고, 저도 열심히 살아갈 테니까 여러분도 이 시기에 힘드신데 파이팅하시고 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정말 한 다섯 가지만 잘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더 인사 잘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 잘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말 잘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 잘하고
'기회를 주셔서 고맙다' 이렇게만 하면
그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도와줄 분들이 계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