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아이돌, 당대 최고 춤꾼 만복이 근황

조회수 2020. 11. 13. 11: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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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그룹 잉크를 기억하시나요? 7인조의 적지 않은 인원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멤버가 있습니다. '그래 이젠'이라는 곡에서 그의 '등 튀기기 춤'은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요. 늘 긍정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로 무대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예능까지 섭렵했던 그, 이만복 씨의 근황을 전해드립니다.

'잉크의 이만복,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세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저는 용병이었어요. 용병. '너 한국말하지 마라. 네 이름은 토니야.' 그래서 뒤에서 춤만 추고 들어가는 역할을 했었죠. 아마 임백천 선생님이었을 거예요. 그 선생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어로 저한테 말을 시키셨어요. 'What's your name?' 근데 저는 순간적으로 '만복인데요' 한 거죠.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방송국에서 예능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회사에서 '(무대 할 때) 앞으로 나가라'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잉크를 먹여 살렸습니다ㅎㅎ

'춤으로 워낙 유명했었어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그때 당시에는 브레이크 댄스 막~ 이렇게 췄죠. 패션 춤, 말춤 막 이런 거ㅎㅎ 제 트레이드 마크 '등 튀기기'는 제가 개발한 거예요. '등을 튀겨서 일어난다' 해서 '등 튀기기 춤'이에요. 침대에서 연습했었거든요. 나중에는 자막이 나왔어요. '따라 하지 마시오'라고.. 진짜 그 춤이.. 저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손을 짚고 하는 거거든요. 이게 너무 강렬해서 두 번째를 뭐.. 앞 튀기기를 보여줄 수도 없잖아요. 다음 활동에도 뭘 보여주고 그래야 되는데 거기서 더 이상 뭘 하겠어요 제가ㅋㅋ 그게 두 번째 활동 때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건데 말이에요. 

'당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제가 예능을 좀 나가고 등 튀기기를 많이 하고 그랬을 때 집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집 앞에) 학생들이.. 딱 나오는데 헤엑~? 이게 뭐야? 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절 알아봤을 때였고 군인들이 특히 좋아했고 누나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등 튀기기 차례에 딱 나오면 이 소리가.. '와악!!!!!' 하고 딱 보면 만복이라는 이름이 너무 많이 쓰여있는 거예요. '만복이 사랑해♡' 이런 것들이요. 제 생각에 노래를 안 듣고 등 튀기기 기다렸던 것 같아요ㅋㅋ

'활발했던 활동.. 어느 순간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잉크 2집을 만들면서 반응이 슬슬 좀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 혼자만 예능이라든지 드라마라든지 촬영을 하고 그랬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게 음악과 춤이었는데 그거를 버리고 돈을 벌려고 사업적으로 뛰어들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해요. 금전적으로 좀 많이 힘들었었거든요. 사업을 해봤는데 하는 것마다 솔직히.. (잘 안 됐죠) 크게 바베큐 집도 했었고, 이자까야도 했었고, 조그마한 클럽식으로도 했었는데 잘 안 됐죠. 

'어린 시절 이야기도 궁금해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우리 때는 '혼혈'이라고 하는데 아버님이 미국 군인이셨고 어머님이 혼혈아세요. 제가 뱃속에 있을 때 아버님은 하와이로 파견을 가셨대요.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셨나 봐요. 엄마한테 '미국으로 부르겠다'라고 얘기했는데 엄마가 찾으러 가신 것 같아요 미국으로. 세 살 때인가, 네 살 때 가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안 돌아오신 거죠. 지금까지.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저는 그래서 키워주신 할머니의 '이' 씨 성을 따서 (한국 국적) 이름을 '이만복'으로 지었죠. 할머니가 암자(*큰 절에 딸린 작은 절)에 사셨는데 거기서 제가 28년을 산 것 같아요.

'혼혈 가정..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좀 많았었죠. 초등학교 가야 될 나이가 됐는데 까만 사람이 저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당시 비슷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근데.. 유치원 다닐 때 걸어가는데 누가 나보고 '깜둥이'라고 처음에 놀렸던 게 기억이 나요. '너 너희 나라로 가 깜둥아.' 이런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태권도를 배운 게 기억이 나요. 할머니가 '까맣다고 놀려도 이해하고 넘어가라' 그러셨어요. '근데 3번 4번 계속 놀리면 싸워라' 하셨어요. 중학교 올라가면서 달리기가 빠르다 보니까 축구부에 들어갔고, 운동부에 들어가다 보니까 누가 놀리면 운동부 친구들이 또 가서 같이 도와줬죠. 자기들은 놀리면서ㅋㅋㅋ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근데 그걸 기분 나쁘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내려놨기 때문에 그때부터요. 잘 이겨냈어요. 그리고 친구들은 아마 다 알 거예요. 학교 다닐 때 제가 싸움을 좀 잘했다는 거는요. 나 알지 다들? 나 이만복이야ㅎㅎ 내가 초등학교 때 전교 4 캡인가 그랬던 거 다들 기억하지? 제가 안타까운 거는 우리 딸... 사실 우리 아들은 놀리는 거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딸한테 그 시기가 왔더라고요.

'댄싱9'에 따님이 출연 했었다고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그게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고 딸이 초등학교에 갔는데 갑자기 저보고 학교에 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올게 왔구나. 방송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댄싱 9'에 같이 나간 거예요. 방송이 나가고 난 후 갑자기 우리 딸내미가 '아빠, 학교 좀 와주면 안 돼? 학교 부모님들이 아빠를 다 알아봐. 친구들도 보고 싶대' 라면서 애들하고 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더 난리예요. 매일 학교 데려다 달래요. '너 다 커서!! 또 데려다 달라 그러고!! 요즘도 내가 운전해 준다 너' 이러죠ㅎㅎ 공부도 잘하고 나름대로 잘 놀고 상장도 많이 받아와요 아빠랑은 다르게. 오빠랑은 다르게. 너 하나밖에 없다 우리 집안에ㅋㅋ 아들은 아빠를 똑같이 닮아 가지고..

'부모님을 찾았다고 들었어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는데 처음에는 안 찾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얘기해서요.. 화도 좀 나고.. 근데 이제 우리 아들 딸 보니까 그래도 뿌리는 알고 싶고 해서 찾았는데 (버린 게) 아니라고 반겨주시더라고요.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말만 안 통하는 것뿐이지 느낌으로 다 통합니다ㅋㅋ 전 영어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뭐 '알러뷰' 하면 '알러뷰 투' 요정도만 하거든요ㅎㅎ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저보고 미국에 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이제 같이 살자고 하셨는데 저는 이미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고 하는 일도 여기 있으니까요. 근데 오히려 한국에 있었기에 '만복이'를 알리지 않았을까요? 이제 정말로 좋은 일 많이 할 거고 좋은 모습으로 다 할 테니까 지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요즘은 너무 재밌게 잘 지내고 있어요. 앨범도 냈는데 제가 낸 타이틀곡도 부르게 좀 해주세요. '마누라가 바가지 긁어대도~ 돈 앞에 자기야 사랑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출처: '근황올림픽' youtube / 텐아시아 / '이만복' youtube

근황올림픽에 출연하게 됐는데요, 좋네요. 저를 좀 많이 생각해 주시고 예뻐해 주시면 좋겠고 구독 많이 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뜹니다ㅎㅎ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 받아야 할 사랑을
대중분들이 저한테
주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거기에 버금가게
못 해서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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