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거 연대기

조회수 2019. 8. 1. 10: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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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7080"

라이드매거진의 자전거 섹션에 새로운 기자가 출근을 시작했다. 독자들로서는 내가 읽는 기사를 쓰는 기자의 키가 몇인지, 얼굴은 잘 생겼는지, 몸무게는 몇인지 등의 것들은 궁금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어떤 자전거를 타고 어떤 자전거를 타왔으며 자전거를 몇 년이나 탔고 어떤 자전거를 가장 재미있게 탔는지를 더 궁금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라이드매거진 자전거 섹션에 출근을 시작한 김상교 기자의 첫 기사는 편집부의"나의 자전거 연대기"로 정해졌다. 기사를 보면서 우리 독자들도 자신만의 자전거 연대기를 정리해보거나 한 번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세발자전거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주 어렸을 적의 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아주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 우리 가족 앨범 안에 있었더랬다.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 내 최초의 기억인 걸로 추측해봐서는 아마도 서너 살 나이였던 것 같았다.

어렸을 적 우리 집안 형편이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짠순이’였던 엄마가 사줬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옆집 아이의 세발자전거였든지, 엄마의 지인이나 친척에게 빌려왔든지 했을 거다. 그리고 그 세발자전거는 또 다른 아이에게 돌아갔을 것 같다. 그렇다! 빠른 결론을 내리자면 공유형 자전거의 시초는 ‘세발자전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집에 불난 적은 없었는데 비교적 잦은 이사로 세발자전거를 탄 내 사진이 들어있던 우리 가족 앨범은 분실됐다.

네발자전거

 

내 기억에 남아있는 첫 번째 자전거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 동네 친구 녀석의 네발자전거였다. 자전거를 탄 그 녀석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야! 나 한 번 타 봐도 되냐?”라는 나의 소심한 부탁에 그 녀석은 흔쾌히 자전거 핸들을 내게 내줬다.

 

사실 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었지만 ‘보조바퀴의 도움이 있다면 나도 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본 것이었다. 자전거초보인지라 허둥지둥 페달을 내딛었다. 그리고 페달을 굴렸다. 이것이 나의 첫 라이딩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 뒤로도 동네 여러 친구 녀석들의 자전거를, 그것도 무려 두발자전거를 “나도 한 번 타보자! 친구 좋은 게 이런 거지!”라고 말하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빼앗듯이 빌려 탔던 것 같다. 그러다 넘어져 다리에 피가 나고, 무릎이 까진 건 영광의 상처였다.

쌀집자전거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너 자전거 탈 줄 아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 외쳤다. 엄마는 옆집에서 쌀집자전거를 빌려와 놓고는 이 걸 타고 근처에 쌀방앗간을 하시는 큰아버지댁에서 쌀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자전거 짐받이에 서너 되 정도의 쌀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전거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부터 나는 자전거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엄마는 동네아주머니들과 함께 집 앞 평상마루에 앉아 수다를 떨고 계셨다. 동네아주머니들이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등에 식은땀이 다 났다.

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

 

중학교에 다닐 무렵 자전거 유행이 선풍을 끌던 시절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중고교학생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띄었는데, 아버지도 우리 형제에게 자전거 한 대를 사주시며 말하셨다. “형이랑 동생이랑 같이 잘 타거라.” 이것이 바로 가족공유형자전거의 시초였다.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알루미늄 프레임에 지금의 하이브리드와 비슷한 생활자전거였는데, 주말에 친구들과 비교적 멀리 4시간 정도의 왕복코스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재밌었다. 그때는 그런 걸 ‘하이킹’이라고 했더랬다.

 

아무래도 두 살 터울의 남동생 보다는 내가 형인지라 자전거는 거의 내 소유물이었다. 자전거 사이즈가 동생에게는 큰 편이었기 때문에 동생이 자전거를 타면 가끔 넘어졌다. 동생의 무릎이 까지고, 자전거에도 생채기가 많아졌다. 이때 나는 자전거 ‘피팅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때 우리집은 빌라 4층이었는데, 초창기에는 4층까지 올려다놓고 자전거자물쇠를 채우다가, 차츰 자전거를 들고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기 귀찮아져서 1층에 자전거를 두고 다니다 도둑을 맞았다. 자물쇠만으로는 자전거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어야만 했다.

나의 로망 클래식 로드바이크

 

대학생이 되고 장발의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자전거로 통학을 했더랬다. 자전거는 흰색 프레임에 드롭바가 달린 클래식 로드바이크로 다른 학과의 여학생들로부터 “자전거 타는 저 학생은 무슨 과에 뭐하는 애냐?”와 같은 관심의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첫 로드바이크와의 여정은 매우 짧았다. 같은 과 친구가 “자전거를 잠깐 타 봐도 되냐?”고 해서 흔쾌히 ‘OK’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 녀석이 내리막을 내려가다 주차되어 있던 각그랜져와 접촉사고를 내버린 것이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차량의 수리비를 물어내야 했고, 내게도 이전 것과 비슷한 클래식 로드바이크를 새로 사주었다.

 

나의 두 번째 클래식 로드바이크는 은빛 프레임의 클래식 로드바이크였는데, 학교 앞 자전거보관소에 자물쇠를 걸어뒀던 자전거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세상은 넓고 ‘자전거도둑 엄복동’도 너무 많은 활약을 하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잃어버린 내 자전거와 아주 흡사한 자전거를 타는 중학생을 길에서 본 적이 있다. 그 학생을 따라서 쫓아가려고 달려보았지만 자전거는 사람 보다 빨랐다. 그리고는 꽤 오랬동안 나는 자전거와 인연이 없었다.

‘라이더 본능’ 하드테일 MTB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인 되고나서 자전거를 타고 인천의 섬, 신시모도와 장봉도를 3박4일 동안 라이딩을 하는 기회가 생겼다. 나의 첫 자전거여행이었는데, 스프링 샥이 달린 하드테일 MTB를 대여해서 섬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3박4일 동안 달렸더니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이때 나는 자전거에 패드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흔히 말해 생활형 MTB에 더 가까웠던 하드테일은 잠들어있던 나의 ‘라이더 본능’을 다시 일깨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 마음 속 미니벨로

  

그러던 중 어느 날, 내 마음 속에 미니벨로가 들어왔다. 어떤 자전거를 구입할지 나름의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기에 미니벨로를 탄 사람들이 꽤 세련되어 보여서 검정색 미니벨로를 구입했다. 20인치 작은 바퀴의 자전거였지만 이 녀석을 타고서 꽤 여러 곳을 달렸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미니벨로를 타고 인천에서 부산까지의 국토종주를 완료했다.

  

이때부터 나는 자전거 헬멧을 비롯한 스포츠고글, 져지, 빕숏, 장갑 등의 자전거용품 구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나는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카본 로드바이크인 건가?

 

지금은 카본 로드바이크를 타고 있다. 가볍고 잘 나간다. 주말이나 주중 야간에 자전거 타는 지인들과 함께 하는 라이딩이 즐겁다.

 

클릿페달 입문기에 필수인 낙차, 이른바 ‘클빠링’을 겪어야 했지만 클릿입문은 일종의 걸음마와 같은 것이었을 뿐이고, 클릿페달은 로드바이크와 나를 한 몸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아스팔트 도로의 원래 주인이라 주장하는 자동차 운전자들과 약간의 감정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사이클링은 즐겁다.

“너무 편해” 전기자전거

 

최근에는 첼로의 전기자전거 불렛 ST를 시승해봤다. 속도 모드에 따라 전혀 다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3단계의 하이모드에서는 웬만한 승용차나 모터사이클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체감을 느꼈다. 1단계의 에코 모드와 2단계의 노멀 모드에서는 일반 자전거와 비슷한 속도감이었지만 다리와 무릎에 전혀 무리가 없었고 편안했다.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는 타고 싶지만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어르신들이나 주부들에게 잘 어울릴 법한 자전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조카의 풀 서스펜션 MTB

 

지난 명절에 시골 친척집에 인사를 드리러갔다가 시골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풀 서스펜션 MTB가 눈에 띄었다. 자전거의 주인은 중학교 3학년의 5촌 조카였는데, 놀랍게도 “다운힐(Downhill)을 즐긴다”고 말하더라. “위험하지 않냐?”고 내가 묻자, “다운힐 할 때 넘어지기는 한다”며 기특하게도 자전거 탈 때는 헬멧과 보호구를 꼭 착용한다고.

 

천방지축 개구쟁이였던 조카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이런 프로페셔널한 풀 서스펜션 MTB를 탄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늠름해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 올림픽에 나가는 건 아닐지 계속 응원하면서 두고 볼 일인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전거에 대한 좋지 못했던 기억은 거의 희석이 되어, 결국 자전거는 인간에게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선물’인 것 같다. 이 글을 모두 읽고도 올 여름에 아들, 딸에게 자전거를 사주지 않는 엄마와 아빠는 진짜 엄마 아빠도 아니다. 그리고 잊지말자! 자전거 사줄 때 헬멧은 필수다. 자녀가 어리다면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는 신의 한 수!

 

※ 사진은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글: 김상교 기자
제공: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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