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뿌리가 흔들린다..강소기업 줄줄이 눈물의 경매行

조회수 2020. 4. 23. 22: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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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지난 3월 경기도 한 경매 법정에서 광주시의 마스크팩 원자재 납품업체 S사의 공장 부지(470㎡)가 입찰에 들어갔다. S사는 2016년까지만해도 부직포나 패키지 같은 중간재를 대기업에 납품하며 연 매출 250억원을 올리던 이른바 강소(强小) 기업이었다. 


그러나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으로 중국 화장품 시장 수출길이 막히고, 이어지는 경기 불황에 대(對)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크게 휘청이기 시작했다.

[땅집고] 가동을 멈춘 한 공장 내부.

여기에 올 2월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출 여건이 더욱 나빠지자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S사 임원인 A씨는 땅집고와 만나 “업체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 투자사가 지난해 예정했던 투자를 철회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며 “회사가 한창 좋을 때 확충했던 고정비(인건비·설비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결국 공장이 경매에 넘어갔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누적된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대한민국 경제의 뿌리인 중소 제조업 공장들이 잇따라 경매로 나오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1분기 전국적으로 처음 경매에 부쳐진 공장 등 공업시설은 432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64건)과 비교하면 6.8배 급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면 직원부터 줄이고, 이어서 생산 설비를 매각한다”며 “공장 경매가 늘어난다는 것은 자금난에 빠진 기업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땅집고] 전국 공업시설 신규 경매 추이. /지지옥션

제조업 불황에 파산, 경매 증가


지난달 말 대구시 북구 노원동 ‘제3공단’에 위치한 기계부품가공업체 B사. 200㎡ 규모 공장에 한 때 10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모 대표와 가족 3명만이 출근한다. 그나마 할 일이 없어 TV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사는 대기업 자동차 회사의 3차 협력사로 보호필름 등을 제작한다. 한 때 연간 매출 1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올 들어 일감이 거의 끊어지면서 매출이 예년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땅집고] 대구 북구 노원동 제3공단. /조선DB

B사의 전 대표는 “코로나 사태로 경영난이 더 악화한 게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경기 침체로 이미 버티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매출은 줄었는데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건비가 급증한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전 대표는 “입사한 지 한두 달 된 견습생 월급이 170만원에서 240만원으로 뛰었고 월급 400만원 정도를 받는 20년 경력 기술직 임금도 그만큼 올려줘야 해서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업 경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매출 50대 기업의 2019년 경영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평균 43.2% 급락했다. 매출액은 2018년과 비슷한데 한·일 무역 분쟁에 최저임금 인상 , 주52시간 근무 등의 부작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나마 상위권 대기업은 1~2년간 이익이 급락해도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인 협력사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땅집고]국내 주요 대기업의 영업이익 증감. /조선DB

여기에 코로나 사태는 치명타를 날렸다. ‘2020년 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자동차(-27.8%), 기계장비(-5.9%) 등의 생산액이 전달보다 3.8% 줄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7%(잠정치)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69.9%)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코로나 영향은 일시적...중소기업 성장 동력 키워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소기업 성장 동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가 금리 인하와 기업신용보증 같은 사실상 양적 완화 조치를 시행했기 때문에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겠지만 결국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을 살리는데 쓰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사태만 보지 말고 중소기업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경제 체질 개선이 급선무”라며 “그러기 위해선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경직적 시행,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궤도를 수정해 중소기업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전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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