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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너가 사업 대박났는데 "1100억 탈세"..법원 판단은?

조회수 2020. 1. 28. 17: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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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간 A씨. 봉제인형 수출 사업으로 부를 쌓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이 대주주로 있는 홍콩법인에서 발생한 수익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역외 법인(페이퍼컴퍼니)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A씨가 2011년 한국에서 불구속 기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0~2008년 1136억원의 소득 신고를 누락해 종합소득세 473억원을 포탈(逋脫)하고 947억원을 해외에 은닉·도피한 혐의다. A씨가 2000~2001년 국내에 머무르면서 수익을 거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본인 명의로 구입한 국내 한 주택에서 2년간 연 평균 183일 이상을 체류했다. 그러면서 국내 부동산과 골프장을 다수 보유한 내국 법인의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급여도 받았다. 현행 소득세법은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개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한다.


국세청은 A씨를 '국내거주자'로 규정하며,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정당하게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A씨는 아내와 공동 명의로 미국에 한 주택을 구입해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미국에 연방소득세까지 납부한 ‘미국거주자’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2001년과 2002년을 제외하면 연 평균 330일 이상을 미국에 체류했다. 8년간 엎치락 뒤치락했던 형사·행정소송은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땅집고] 국세청이 역외 탈세 혐의로 기소한 A씨의 세금 포탈 과정을 설명하는 화면. /조선DB

2018년 11월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조세) 등 A씨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 환송했다. BVI 법인을 통해 해외 수익을 빼돌려 탈세한 혐의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홍콩법인 대주주로서 정당하게 취득한 과세연도 배당소득은 한국의 종합소득세 부과 대상이 아니며, BVI 법인에 귀속된 소득에 대해서도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조세협약상 '미국거주자'라고 인정한 것이다.


[땅집고]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조선DB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기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먼저 국세청은 A씨를 ‘기러기 아빠’로 규정하며, 항구적 주거가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은 A씨가 사업상 한국에 체류한 것일 뿐 업무를 마치면 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항구적 주거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A씨의 미국 거주자 지위를 인정해 2000년 이전까지 발생한 소득에 대한 납세의무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2001~2002년 한국에 실제로 183일 이상을 거주했기 때문에 납세의무가 있고 역외탈세의 고의성도 인정했다.


A씨가 미국 연방소득세법상 미국 거주자로 봐야 할지, 한미조세협약상 한국의 거주자로 판단할 지가 재판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국내 거주자 지위 A씨가 한국 내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이 존재하는지 국내 직업과 소득 현황, 국내 소재 자산 등을 고려해 미국 영주권자인 A씨를 소득세법상 한국 거주자로 판정할 수 있는지를 따졌다.


8년간의 소송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①A씨의 국내 체류일이 쟁점 과세연도(2000~2001년) 2년간 누적 일수가 1년을 초과하고 ②국내 법인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급여를 수령한 점 ③A씨가 다수의 국내 자산을 보유한 측면에서 한국 소득세법상 A씨를 국내 거주자로 판단한 국세청의 주장이 타당할 수 있다. 반면 A씨가 적법한 미국 영주권자로 쟁점 과세연도 기간 중 연방소득세를 ‘거주자’ 지위에서 미국에 신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연방소득세법상 미국 거주자로 봐야 한다.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임과 동시에 연방소득세법상 미국의 거주자인 이른바 ‘이중 거주자’로서 양국의 내국세법상 거주자 지위 판정이 충돌하는 경우, 한미조세협약 제3조 ‘과세상의 주소’ 조항을 통해 그의 거주지 국가를 판정한다. 항구적 주거(Permanent Home),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Center of Vital Interests), 일상적 거소(Habitual Abode), 납세자의 국적(Citizenship) 등의 요소를 순차적으로 고려한다.


OECD 모델협약 주석서 제4조 12장에 따르면 항구적 주거는 ‘일시적이 아닌 일정 기간 개인이 가족과 함께 언제든지 거주 목적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거주 요건은 항구적 생활을 이루고 있는 근거지를 판단하는 ‘부가적 요인’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거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가 2년간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지낸 것도 사업 목적상 일시적일 뿐, 항구적으로 한국에 머무른다는 의도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A씨의 수입만으로 가족이 생활하는 것을 고려할 때 A씨의 항구적 주거는 미국에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이다. 이처럼 항구적 주거를 통해 납세자의 거주지 국가가 판정되면, 차순위인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차차순위인 일상적 거소 등의 판정 요건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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