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처럼 지어주세요"했다간 뼈저리게 후회할 겁니다

조회수 2019. 12. 8.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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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집짓기] 밑그림이 좋아야 좋은 집을 짓는다

아파트 문화의 대중화와 함께 집은 ‘사각형’으로 고정됐다. 한정된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평면을 쪼개 쓰임새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 그것이 ‘사각형’이다. 그래서 아파트 문화를 ‘사각문화(四角文化)’라고 한다.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절감, 그리고 집단화를 통한 편의성의 증진, 그 높은 효용성에 파묻혀 사라진 것이 집주인의 생각이다. 지어준 대로 살아야 하는 집, 그것이 아파트다. 아파트 문화의 ‘사각(死角)지대’가 바로 이것이다.


단독주택은 무엇보다 집주인의 생각이 우선이다. 주택 모델을 규격화한 단지형 단독주택의 경우에도 집주인 생각이 반영될 여지는 엄청나게 많다. 규격화된 주택이라 하더라도 전체의 건축적인 조화를 위해 외관은 통일성을 유지하지만, 내부는 집주인 생각을 상당부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신이 직접 집을 지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 집의 가치를 100% 좌우한다. 그래서 밑그림을 잘 그려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시공시방서가 포함된 설계도면집. 밑그림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제대로 건축이 된다.

■“마스터플랜없이 공사부터 저질러”


그런데 건축비를 가늠할 때 설계비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 건축주들이 의외로 많다. 집을 짓기 위한 마스터플랜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그려져 있으면 시공업체를 찾더라도 상담이 훨씬 빨리, 효율적으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건축과정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건축과정에서 수차례 설계 변경을 하다보면 건축비가 당초 계획보다 20% 정도는 더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집을 짓는데 대한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공사부터 저질러 놓기 때문이다. 99%의 건축주들이 평생 처음 집을 짓다보니 밑그림을 그릴 때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해 지어 가면서 수정하는 일이 많은 것도 원인이다.


건축은 지극히 기하학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힌다. 이건 쉽게 돈으로 계산이 된다. 그러다보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 설계비로 3.3㎡(1평)에 최소한 50만원 이상 들어간다고 하면 기절할 정도로 놀라는 건축주들이 대부분이다. 건축비 예산에서 설계비를 통째로 빼놓고 시작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전원주택을 발견하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두었다가 ‘이대로 지어 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웬만한 시공사는 자체 건축기사를 통해서 기본적인 도면을 무료-그러나 절대로 무료가 아니다-로 제공하는데, 이런 풍토에서 별도의 설계비를 지불해서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건축주는 별로 없다. 설계비 안들이고도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수천만원의 설계비를 지불하는 것이 억울할 것이다. 그러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게 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세계적인 걸작 '낙수장'은 작품성은 뛰어났지만, 정작 집주인은 집 내부를 관통하는 폭포 소리가 시끄러워 살지 못했다. 집은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작품성만 강조하는 건축사는 피해야”


우선 좋은 건축사를 만나야 한다. 교외 단독주택이 건축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은 미미하다보니 이 분야 설계 경험이 있는 건축사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건축의 미와 작품성을 너무 강조하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세계 3대 건축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미국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작인 ‘낙수장’(落水莊·Fallingwater)은 정작 그 명성과는 달리 집주인은 행복하지 못했다. 자연 폭포를 집 내부로 관통하게 한 설계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지만, 폭포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작품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사가 잦은 곳에서는 대를 이어 우리 가족만 산다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 다른 가족이 이 집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중성이나 보편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많은 유명 건축가들이 이런 요구를 무시한다.


설계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한 나머지 속칭 ‘허가방’에서 건축도면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허가방’이란 ‘집장사’들의 의뢰를 받아 건축신고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면을 만들어 건축허가를 받아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건축사무소를 말한다. 허가방의 주요 업무는 오로지 건축허가를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거주할 때 필요로 하는 필수적인 사항은 제쳐두고 오로지 행정관청의 허가를 받기 위한 이른바 ‘허가용 도면’을 작성하기 마련이다. 실제 건축에 필요한 도면은 이보다 몇배나 많다. 지방자치제 실시로 지역 건축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집을 짓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잘 찾는 것이 건축주들의 숙제가 되고 있다.

시공 과정에 숱한 설계변경을 거친 사례. 특히 목조주택은 창호가 벽구조의 중요한 부분이므로 함부로 변경해서는 안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가장 자주 변경되는 것이 창호의 위치, 크기다.

■설계 자꾸 바꾸면 공사비도 계속 증가


일단 설계도가 완성되면 중간에 설계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 공사 도중에 구조변경이 잦으면 추가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처음에 아예 설계기간을 넉넉하게 잡고 충분히 검토해서 완벽한 도면을 만들도록 하고 원래 도면에 충실하게 지어야 한다. 건축 도중에 자꾸 설계 변경을 해서 공사비가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려면 차라리 설계 과정에 모형을 만들어 보고 검토를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설계비가 더 들어가지만 건축과정에 설계변경을 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외국에서 일반화한 조립식 주택(Panelizing Home)이 우리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축주들의 변덕 때문이다. 콘크리트주택에 비해 목조주택이 갖는 큰 장점 중 하나는 공장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콘크리트주택도 PC(Precast Concrete) 공법을 이용한 조립식 주택이 가능하지만 상당히 큰 시설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목조주택은 아주 작은 작업장에서도 사전 제작이 가능하다. 공사비도 10~15%는 절감할 수 있다. 벽체를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면 인건비와 공기 단축으로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있다. 이런 집이 가능하려면 철저한 사전 설계와 도면대로의 건축이 보장돼야 한다. 집을 짓다가 생각나는 대로 자꾸 뜯어 고치는 풍토에서는 이런 집을 지을 수 없다.


아무리 건축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샘솟아도 스스로 이것을 누르는 자제력과 한번 정한 대로 밀어 붙이는 뚝심이 없이는 절대로 시공업체를 통제할 수 없다. 변덕이 심한 건축주에게는 시공사도 알아서 대응하는 수법이 있다. 아무리 건축주라 하더라도 이런 싸움에서 건축주는 기는 오리요, 시공사는 해동청 보라매다. 싸움은 상대가 예상 못한 비장의 카드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도면대로 지어달라고 하고 팔장끼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뚝심이다. 열에 아홉은 그러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건축주를 만나면 시공사는 몸을 사린다. 건축주가 중심을 잡아야 시공사도 긴장을 한다. 집을 한 채 지어보면 살아온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글=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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