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마저도..인기 식을 줄 모르던 삼청동의 추락

조회수 2019. 9. 19. 14: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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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 ‘강북의 가로수길’이라는 별칭을 가진 삼청동은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동쪽에 있다. 2차로 도로 양옆으로 오밀조밀 모여있는 7~10평 남짓한 1층 상가들은 한옥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경우가 많다. 이곳에 10여년 전부터 카페와 레스토랑, 액세서리점이 하나 둘씩 들어서며 삼청동 일대는 서울 대표 상권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김리영 기자
삼청동 문화거리로 가는 초입에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땅집고 취재팀이 찾은 이날은 외국인을 제외하면 거리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적했다. 삼청동이 한참 잘 나갈 때는 평일 대낮에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려 바글바글했다. 삼청동 초입에서 100m쯤 더 들어가자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빈 가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빙수가게 간판이 걸린 점포와 바로 옆 2개 점포는 줄줄이 공실이었다.

출처: /김리영 기자
삼청동 입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1층 점포 3곳은 모두 비어있다.

삼청동 거리 안으로 들어갈수록 빈 점포는 더욱 늘어났다. 삼청동 거리 중심부에 있던 ‘하티스트하우스’ 문 앞에는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안내문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은 전체가 비었다. 제일모직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지만 작년 5월 폐점했다.


분위기 있는 한옥식 카페였던 ‘카카듀’, 의류점 ‘보이런던’, 조미료 없는 한식당으로 유명했던 ‘복정식당’, 화장품 브랜드 ‘잇츠스킨’ 매장을 비롯해 삼청로 중심에 자리잡았던 음식점과 의류점, 잡화점이 대거 떠났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삼청동 문화거리’와 ‘카페거리’ 일대에 포진한 200여 개 점포 중 약 40~50개 점포가 비어 있다. 영업 중인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장사가 안 돼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 사드(THAAD) 때부터 시작된 침체…이후 경쟁상권에 밀려


출처: /서울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상권지도 및 현재 상권 현황.

삼청동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2017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때부터다. 삼청동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가게들이 매출에 타격을 받았다. 사드 사태 당시에는 삼청동 뿐 아니라 종로 상권까지 위축됐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사드 사태가 진정되면서 명동과 종로 중심 상권은 회복세를 탔다. 하지만 삼청동은 끝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삼청동 상권이 위축된 데에는 주변에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상권이 개발된 영향도 컸다. 삼청동 인근 서촌, 익선동 일대에도 한옥을 리모델링한 카페거리가 조성하면서 삼청동이 가진 독점력이 깨진 것이다. 삼청동을 찾던 내국인 방문객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출처: /김리영 기자
삼청동이 침체한 반면 종로구 익선동 일대에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북적댔다.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시위도 삼청동 상권 위축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다. 삼청동에서 3년 전부터 아동복을 팔아온 상인 남모(37)씨는 “사람이 가장 몰리는 주말은 거의 빠지지 않고 광화문에서 데모가 벌어지면서 삼청동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막혀버린다”며 “삼청동은 전철역이 멀어 길이 막히면 치명타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블루보틀 효과’ 기대했지만…

출처: /김리영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블루부틀 2호점(삼청점)'. 1호점처럼 외부에 긴 대기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올 7월 초 삼청동에는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성수점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업계에서는 블루보틀 입점이 유동인구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개점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상인들 사이에선 “블루보틀도 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한탄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찾은 블루보틀 2호점에는 1호점처럼 수십미터씩 이어지는 대기줄은 없었다.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성수점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삼청동은 창업위험도가 ‘위험’ 수준으로 높은 지역이다. 폐업률은 2017년 1분기 3.2%에서 올 1분기 3.6%로 증가했다. 평균 영업기간은 3년으로, 소매점의 경우 3년 생존율이 2017년 1분기 64.5%에서 2019년 1분기 44.2%로 줄었다. 반면 종로 1~4가는 소매업의 경우 평균 영업기간이 올 1분기 3.3년으로 삼청동(3.1년)보다 수명이 더 길었다. 3년 간 평균 생존률도 2017년 1분기 55.7%에서 올 1분기 59.5%로 올랐다.



■ 임대료는 전성기 수준…전문가들 “특색 되찾아야”


삼청동 상권은 침체했지만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다. 이건선 삼청번영회 회장은 “몇년 전부터 쓰러져가는 상권을 회복시키려고 임대료를 낮추자고 건물주들과 협의하고 있지만 몇몇 건물주는 투자한 돈이 만만치 않아 쉽사리 임대료를 깎지 못한다”고 했다.

출처: /서울시
삼청동과 종로1~4가 소매점 3년 평균 생존률.

삼청동 임대료는 이미 약세로 돌아섰다. 1층 점포는 33㎡(10평)당 보증금 1억원에 월 300만원 수준이다. 작년 같은 기간 보증금 2억원에 월 450만원에서 100만원 이상 급락했다. 하지만 아직도 빈 점포의 월 임대료를 500만원 정도로 유지하는 건물주들이 많다고 상인들은 말했다. 이는 종로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익선동 시세와 맞먹는다. 익선동 종로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익선동의 경우 점포 33㎡(10평)당 보증금 1억원에 월 400~500만원”이라고 했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삼청동은 2008년쯤 전성기를 맞았지는데 10년 전 모습 그대로여서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볼거리가 없고, 특색을 잃은지도 오래인데 임대료는 종로에서 가장 높아 현재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글= 김리영 기자, 최준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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