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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옥 마당에 굳이 황토를 깔았던 이유

조회수 2019. 9. 1.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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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집짓기] ⑫되돌아본 우리의 옛집(하)

이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 주거문화가 아파트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를 새삼 절감한다.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아파트를 기준으로 각론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매년 새로 건축하는 주택 중 순수 단독주택(다가구주택 제외)의 비율이 9.0%(2015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ㅁ'자형 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 향단.

본격적인 건축 개론에 앞서 우리 옛집에 대한 얘기를 먼저 시작한 이유는 ‘우리가 살던 집은 어떤 집이었나’에 대한 고찰을 토대로 새로운 집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자는 취지다. 먼저 현관문과 방문에 대한 얘기를 했고, 이번에는 대청마루와 마당의 상관관계를 풀어보려고 한다.



■옛집 마당에 황토 깔린 이유


앞서 잔디마당을 가꾸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 얘기했지만, 우리 옛집 마당은 황토 그대로였다. 우리 조상들이 잔디 가꾸는 게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냉난방 기계가 없었던 옛적에 한여름 무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한 과학적인 건축공학 기술이 깔려 있다.

협소한 대지에 마당을 만들기 어려운 현실에서 주택 내부로 마당을 끌어들인 일본의 주택.

마당을 맨땅 그대로 두게 되면 한여름 복사열로 마당에서 뜨거운 열이 발생해 집 주변 공기를 위로 끌어올린다. 이때 대청마루 북쪽으로 낸 쪽문을 열면 북쪽의 찬 공기가 대청마루를 통해 마당으로 빨려 들어온다. 공기는 찬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흐른다. 대청마루 남쪽은 전체를 개방하고 북쪽은 쪽문을 내어 좁은 구멍에서 넓은 쪽으로 공기가 이동할 때 가속도가 붙는 원리(베르누이의 법칙)를 이용했다.


마당의 복사열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힘이 더해져 대청마루의 공기 순환이 가속화된다. 한여름 대청마루에 목침을 베고 누우면 저절로 낮잠이 들 정도로 시원했던 것은 과학적인 지혜가 깔려 있던 것이다. 이런 자연 냉방 원리를 모르고 마당에 잔디를 깔면 복사열이 떨어져 공기 순환이 억제된다. 겨울에는 반대로 대청마루의 북쪽 쪽문을 닫아 따뜻하게 데워진 마당의 복사열을 마당에 가두어 집안의 온기를 붙잡는다. 마당을 맨땅으로 두는 이유다.



■“요즘 거실은 조망만 앞세워”


현대식 단독주택은 한옥에 없던 현관을 만들면서 대청마루(거실)와 마당이 공간적으로 단절되었고 마당에 잔디조경까지 하면서 주택 내부의 공기 순환이 구조적으로 차단됐다. 단독주택 설계 상담을 하다보면 우리 옛집의 대청마루와 지금의 거실은 기능적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단독주택 거실 내부에 쪽마당을 두어 빛과 공기의 숨구멍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경기 용인 동백지구의 '동연재'.

전면의 조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대청마루와 거실의 자리를 잡는 점은 공통이지만, 요즘은 대청마루를 통한 주택 내부 공기 순환에 대한 고려는 거의 하지 않는다. 오로지 조망이 최우선이다. 가능하면 거실 뒤쪽(주로 북쪽)에 옆으로 긴 창을 내 전면 거실창과 맞바람이 통하게 할 것을 권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뒷집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시선보다 높은 위치에 통풍만을 위한 창이라도 내라고 권하면, “눈으로 보지도 않을 창을 왜 내느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창은 조망과 통풍, 채광, 단열, 차음의 5가지 기능을 한다. 거실이 과거 대청마루의 기능까지는 못하더라도 통풍 기능은 살려두는 것이 기능적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거실 창은 조망 한가지 목적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70~80평에 불과한 일반적인 택지개발지구 단독주택지에서 이웃집과 조망이 부딪치지 않고 거실 창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택을 ‘ㅁ’자로 짓고 중정(中庭)을 두는 기법을 많이 쓴다. 우리 전통 가옥에서 이런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집이 경북 경주 양동마을의 ‘향단(香壇)’이다.



■후원에서 꽃 키우고 나무 길러


‘향단’과 같은 ‘ㅁ’자형 집 마당은 쪽마당이 대부분이다. 땅이 좁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택 내부의 공기 순환을 고려한 기능적인 이유다. 대신에 후원(後園·뒷마당)을 넓게 두었다. 꽃을 키우고 나무를 기르는 일은 주로 이 후원에서 했다.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별당마님이 그 역할을 했다.

'ㅁ'자형 마당을 갖춘 경북 경주 양동마을의 전통 한옥 '향단'.

요즘 짓는 집은 후원을 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든 마당은 앞쪽으로 모은다. 외부에 집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려면 앞마당(Front yard)을 넓게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구주택의 경우는 앞마당은 주차를 위한 기능만 하고 조경과 조망을 위한 마당은 뒤쪽에 몰려 있다. 실속을 숨기느냐, 드러내느냐 하는 것에서 집을 짓는 관점의 차이를 본다. 기능과 실속은 사라지고 겉멋과 과시의 욕구만 가득찬 집들이 넘쳐난다.


옛것을 살리지 못한다고 해서 알 필요조차 없다고 하는 것은 논어(論語), 맹자(孟子)를 지금 읽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와 같다. 일생 단 한번 밖에 기회가 없는 집짓기에 앞서 우리 집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새겨두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글=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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