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줘, 층수 낮춰" 학교 갑질에 몸살 앓는 정비사업

조회수 2019. 5. 4. 0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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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육환경영향평가(이하 교평)’ 과정에서 학교가 조합 측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속칭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무리한 학교 증설이나 일조권(日照權) 확보 요구로 사업이 지연되고 비용이 급증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출처: pixabay

교평은 정부가 2017년 2월 4일부터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생겨났다. 이 법에 따라 학교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에서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면 사업시행인가 전에 반드시 교평을 받아야 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거나 지상 21층 이상·연면적 10만㎡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해당 시·도교육청의 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수 있다. 

출처: 이에이그룹 엔지니어링
교육환경영향평가 절차.

그런데 제도 시행 이후 학교가 조합 측에 과도한 공공기여를 요구하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진 정비구역이 속출하고 있다. 요구사항도 다양하다. “통학로 확보를 위해 건물을 통째로 사달라” “학교 건물을 증축해 달라” “아파트 층수를 낮춰라” 등이다.

경기 광명시 A 재개발 구역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2017년 하반기 광명교육지원청과 조합은 재개발로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을 고려해 학교를 개축하기로 했다. 조합이 학교 측 요구대로 300억여원을 들여 학급 수를 기존 43개에서 61개로 증설하기로 한 것. 하지만 지난해 9월 새로 부임한 학교장이 과밀학급 문제를 들며 기존 협의안을 반대하자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졌다. 교평이 계속 늦어지면서 총 사업비도 기존 7700억원에서 1조원으로 2000억원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명A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학교 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정비사업이 지연·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이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출처: 네이버 지도
서울 송파구 진주아파트 위치. 단지 북쪽 경계에 잠실초등학교가 붙어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학교 측 요구를 수용한 조합 사례도 수두룩하다. 서울 송파구 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단지 맞은 편 잠실초등학교 측에서 일조권 문제를 제기하자 기존 정비계획안에서 288가구를 줄였다. 동작구 노량진 6·7·8 재개발 조합은 근처 학교 진입로를 확장하기 위해 35억원 규모의 건물 한 동(棟)을 매입했다.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 조합도 보광초등학교 이전 건립 비용으로 200억원을 들인 후에야 사업시행인가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교평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심의 단계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학교장과의 협약서를 요구하다보니 사업시행자들이 수백억원의 비용을 쓰더라도 학교 측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중재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하지 않아 민원이 많다”고 했다.


한국주택협회는 해결책으로 ▲평가에 필요한 가이드라인 구축  ▲합의가 어려울 때 사업 지연을 방지할 수 있는 중재안 마련  ▲한국교육환경보호원의 검토기간(20일) 준수 등을 제시했다.

글=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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