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른자위 땅이 헐값에도 안 팔렸던 이유

조회수 2019. 4. 19. 14:42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고준석의 경매시크릿] 경매, 권리분석만이 능사가 아니다


출처: 신한옥션SA
경매에 나온 서울 종로구 구기동 소재 토지(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번호 2016-105290).

서울 북한산 자락에서 전원주택 부지를 찾고 있는 B(53)씨. 경매로 나온 땅을 살펴보다가 다음달 9일 9차 매각기일을 앞두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소재 1913㎡ 규모 토지(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번호 2016-105290)를 발견했다. 너무 외딴 곳이 아니고 주변에 다른 주택들도 몇 채 들어서 있어 집짓고 살기에 좋아보였다. 게다가 최저입찰가는 최초감정가(2억4866만원) 대비 83% 떨어진 4171만9000만원. 저렴한 가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출처: 신한옥션SA
최초감정가 대비 83% 저렴한데도 8번이나 유찰된 구기동 땅.

등기부를 보니 1순위 가압류, 2순위 가압류, 3순위 경매개시결정(강제경매) 순이었다. 등기부에 공시되는 모든 권리는 경매로 소멸하기 때문에 매수인이 인수할 권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지목이 전(田)이어서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및 제출이 필요한 토지이나, 해당구청에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할 수 없다’는 문구가 있었다. 증명서 미제출시에는 매수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취득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이것이 8차까지 유찰된 이유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농지취득자격증명 하나 때문에 여덟 번이나 유찰된 것은 아닌듯 했다. B씨가 현장탐방을 통해 가장 골치아프다는 유치권이나 법정지상권, 분묘기지권도 확인했지만 해당 사항이 없는 땅이었다. 막상 경매에 참여하려던 B씨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출처: 이지은 기자

경매에 참여할 때 권리분석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경매에 있어 권리분석은 전부가 아니라 일부다. 물론 매수인이 인수하는 권리가 딸린 경매 물건은 부담해야할 권리(돈)만큼 유찰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경매가 훨씬 더 많이 유찰된다.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경매의 매력이지만 저렴하게 매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매수한 이후에 미래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면 그 경매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B씨가 관심을 가진 토지의 경우 매수인이 인수하는 권리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8차까지 유찰된 이유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미래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경매에 나온 구기동 땅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보면 개발제한구역 및 공원자연환경지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신한옥션SA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된 구기동 토지.

개발제한구역 안에서는 건축행위가 제한된다.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竹木)의 벌채,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 또는 ‘도시·군계획사업’의 시행을 할 수 없다(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2조 참조). 또 공원자연환경지구 및 국립공원에서는 공원시설만 신축할 수 있다(자연공원법 제23조 참조).


B씨가 경매로 사려던 구기동 토지의 경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비오톱1등급’까지 지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환경 친화적 도시를 건설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비오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영역이라는 뜻의 ‘토포스(topos)’를 결합해 만든 용어다. 총 5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보존 강도가 높고 개발 규제가 엄격하다. 따라서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된 땅은 ‘절대개발불능토지’나 다름 없는 것. 개발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있어 그 어떤 건축물도 신축할 수 없다. 

출처: 신한옥션SA
2016타경105290 매각물건명세서.

내년 7월1일부터 시행하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공원자연환경지구 및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사항은 비교적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비오톱1등급은 해제될 계획이 전혀 없다. B씨가 구기동 땅을 최저가격으로 낙찰받아도 미래가치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매에 참여하면 절대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글=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