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전 강북 명품 주거지 꿈꾼 길음뉴타운, 지금은..

조회수 2019. 4. 19. 15: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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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지. 20년전 만해도 곳곳이 판자촌이었는데, 이젠 동네 전체가 아파트 숲으로 변해서...”


지난 1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 7번 출구를 빠져나오자 2차로인 길음로를 끼고 북쪽으로 20층 넘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도로변 상가는 때마침 하교하는 학생들과 장을 보러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1만5000여가구가 입주한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김리영 기자

1950년대부터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해 달동네로 불렸던 서울 성북구 길음동. 이곳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02년 뉴타운 사업의 첫 삽을 떴다. 이후 길음뉴타운(125만㎡)은12개 단지, 약 1만5000가구의 새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도심 속 미니신도시를 떠올릴만큼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올 4월 ‘롯데캐슬 클라시아’ 아파트가 분양하면 17년여에 걸친 길음뉴타운 사업은 사실상 완료된다. 


땅집고가 강북의 신흥 주거지로 자리잡은 길음뉴타운을 찾아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 

길음뉴타운 아파트 입주 현황. /심기환 기자

◆‘강북 교육 1번지’로 추진한 길음뉴타운

길음뉴타운은 서울시내 뉴타운 중 왕십리(30만6000㎡, 5379가구), 은평(349만5000㎡, 1만5200가구)과 함께 시범 사업지였다. 서울시가 길음동을 뉴타운으로 개발한 이유는 ‘강북 균형발전’ 목적이 컸다. 길음동 일대에는 당시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 개별 조합 단위로 추진되고 있었다. 서울시는 이 사업들을 하나로 묶어서 큰 그림을 만든 후 대규모로 추진하면 도로·공원 등 인프라 확보가 쉽고 집적(集積) 효과로 강남권 못지 않은 신흥 주거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길음동의 입지 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뉴타운 동남부에 지하철 4호선 길음역과 미아사거리역이 있어 서울역 등 업무지구까지 20분대 이동이 가능하다. 여기에 2017년엔 우이신설선 경전철이 개통해 교통망도 더욱 다양해졌다. 버스 노선도 많고 현대백화점과 이마트도 가깝다. 인근 미아사거리에 롯데백화점·길음시장·숭인시장 등 생활편의시설이 풍부하다. 


서울시는 사업 초기 길음뉴타운에 자립형 사립고 유치, 유명 사설학원타운 등을 만들어 ‘강북 교육1번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의욕이 넘쳤었다.  

◆분양가 대비 2배 상승...84㎡ 10억원 넘어서 


그렇다면 17년이 지난 지금 길음뉴타운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당초 기대한대로 강북 대표 주거지가 됐을까. 


당초 길음뉴타운 조성 초기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로 낙후된 지역 여건과 부정적인 이미지 탓이었다. 그러나 뉴타운 완성이 가까워지면서 집값은 많이 올랐다. 모든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분양가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올 초 입주한 길음래미안센터피스 아파트. /김리영 기자

사업 초기인 2003~2005년 입주했던 래미안1~5단지는 분양가가 3.3㎡(1평) 당 600만원 수준이었다. 현재 매매가격은 평균 2000만원대로 3배 넘게 올랐다. 


2010년 입주한 8단지와 9단지 분양가는 5억원대 중반으로 3.3㎡당 평균 1500만~1600만원 수준이었다. 초기 단지와 비교하면 분양가격이 크게 상승했지만 집값도 계속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9단지 전용 84㎡가 9억원에 팔리며 3.3㎡당 최고 2600만원까지 치솟았다.   


양윤정 센트레빌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의 중산층 거주 수요를 흡수했고 뉴타운 조성 이후 신도시급 인프라로 입소문을 타면서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다”며 “최근 지은 아파트는 집주인들이 매물을 잘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5억2000만원대에 분양했던 ‘길음 래미안센터피스’는 올 1월 아파트 입주권이 10억2700만원(6층)에 팔렸다. 현재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온 매물은 11억~12억원을 호가한다. 

길음뉴타운 단지별 거래가격 변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강북의 명품 주거단지 기대했지만...”


하지만 길음뉴타운이 당초 기대처럼 강남을 넘보는 강북의 명품 주거단지로 자리잡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심 한복판에 1만50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치고는 집적(集積) 효과와 인프라 확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길음뉴타운 내에는 어린이공원 2~3곳을 제외하면 사실상 큰 규모의 주민 휴식공간이 부족하다. 유명 사설학원타운 유치 등으로 ‘교육 1번지’를 만들겠다던 서울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교통망 확충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17년 우이~신설경전철 정릉역이 들어왔지만 이용객이 많지는 않다. 시청 근처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씨는 “출근 시간에는 시청으로 나가는 지하철 4호선이 꽉 차서 오는 바람에 2대 이상은 그냥 보내야 한다”면서 “생각보다 출퇴근 여건이 좋지 않다”고 했다.  

2017 년 9월 10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우이역 경전철을 이용하는 고객들. /조선DB

◆역(逆) 전세난 몸살도...가격 조정 지나야 안정될 것


길음뉴타운은 명품 주거지는 아니어도 도심이 가깝는 점에서 신혼부부와 직장인 중심으로 전세 수요는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2017년엔 전세금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할 정도였다. 전세 끼고 집을 사두려는 투자자들이 몰려 ‘갭(gap) 투자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이 당시 자기자본 1억원에 전세금을 끼고 길음뉴타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가 급랭한 상태다. 그동안 상승한 집값 때문에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낮아져 ‘갭 투자’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북구의 전세가율은 올 3월 60%대까지 떨어졌다. 김이희 늘푸른부동산 대표는 “자금력 있는 고객들은 돈을 더 보태서 신축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며 “현재 3억원은 있어야 투자할 수 있고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가 들어오기에는 지금의 전세금조차도 만만찮아 모두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고, 입주 물량 증가 여파 등으로 가격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면서도 “뉴타운 정비 효과를 고려하면 집값이 안정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글=김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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