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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남 테헤란로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이것은

조회수 2019. 4. 7. 0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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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찾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줄줄이 들어선 대형 빌딩에 들어가 어떤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지 살펴봤다. 대개 1~2층에는 시중은행 지점, 공기업 지점, 스타벅스와 투썸 플레이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이나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역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출처: / 이지은 기자
강남 테헤란로 대로변에 있는 오피스 빌딩 1층에는 시중 은행 지점이, 상층부에는 공유오피스 브랜드 '워크플렉스'가 입점해있다.

하지만 3층 이상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직은 낯선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패스트파이브·위워크·스파크플러스·워크플렉스…. 이른바 공유 오피스 업체다. 공유 오피스는 한 회사가 건물을 큰 덩어리나 아예 통째로 빌려 작은 공간으로 나눈 뒤 재임대하는 시스템이다. 이날 강남역 주변 대형 오피스 빌딩 다섯 곳 중 하나꼴로 공유 오피스가 점령하고 있었다.

출처: / 코람코자산신탁
국내 공유오피스 분포도.

실제 테헤란로 일대는 서울에서 공유오피스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서울시내 공유오피스 51곳 중 30곳 이상(전용 8만㎡·약 2만4000평)이 테헤란로에 있다. 특히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의 60~70%를 차지하는 위워크와 패스트파이브 두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테헤란로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고 있다. 두 회사가 보유한 서울 시내 공유오피스 지점의 50% 이상이 테헤란로에 몰려 있다. 위워크는 16개 지점 중 8곳, 패스트파이브는 16개 지점 중 12곳을 각각 테헤란에 뒀다.

공유 오피스가 증가하면서 테헤란로에 입주하는 기업도 덩달아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8년 강남구에 입주한 벤처기업은 1723개. 전년(1521개)보다 202개 증가했다. 빌딩 공실도 빠르게 줄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테헤란로 오피스 공실률은 2017년 4분기 7.2%에서 지난해 4분기엔 6.5%까지 떨어졌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같은 기간 강남 신사역(4.9%→8.4%), 도산대로(5.7%→7.9%), 강남대로(18.5%→18.5%)의 공실률은 늘거나 변화가 없었다"면서 "공유오피스가 밀집한 테헤란로 빌딩들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린 셈"이라고 했다.

출처: /윤동진 기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가 일명 '테헤란밸리'로 뜨고 있다.

사실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 시장은 큰 위기를 겪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계속 치솟는 임대료와 '판교테크노밸리'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저금리 등의 여파로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 빌딩은 몸값이 뛰고 임대료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주머니 사정이 궁한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판교테크노밸리가 입주하면서 이른바 탈(脫) 테헤란밸리 러시가 일어난 것. 이 때문에 2013~2015년에는 5~7% 선이던 테헤란로 오피스 빌딩 공실률이 최고 11.6%(2015년 3분기)까지 치솟기도 했다. 임차 수요를 뺏긴 테헤란로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는 것은 물론 6개월씩 ‘렌트프리(무상임대)’ 조건을 내걸고 임차인을 찾아 나섰지만, 빈 사무실을 채울 수 없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테헤란로 빌딩에 공유오피스가 하나 둘 들어서고 떠났던 중소 벤처기업들도 다시 입주하면서 테헤란로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이지은 기자
테헤란로 인근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강남 3호점의 라운지 바.

공유오피스업체들이 테헤란로에서 경쟁적으로 출점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여전히 테헤란로에 입주하고 싶어하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많은 탓이다. 그 이유는 테헤란로가 접근성도 뛰어나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것. 테헤란로변은 과거부터 대한민국을 이끄는 신생기업들이 탄생한 곳이다. 20여년 전 시작됐던 ‘닷컴 열풍’도 이곳에서 시작됐고,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IT 기업이 된 네이버, 넥슨, 엔씨소프트 등도 모두 테헤란로에 ‘호적’을 두고 있었다.



스타트업의 ‘돈줄’인 벤처캐피털기업(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기업)의 대부분(81%)도 테헤란로 일대에 몰려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투자자들이 몰려 있는 곳에 사무실을 차려야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출처: / 이지은 기자
스타트업 뿐 아니라 대기업도 공유오피스를 활용하면 임대료를 절약할 수 있다.

현재 테헤란로 공유오피스 임대료는 1인(2.5~3평) 기준 월 30만~50만원 선이다. 임대료 자체는 저렴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임대 계약 조건이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계약 기간을 한 달 단위로 갱신할 수 있고, 보증도 필요없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수천만원을 마련하고 최소 2년 단위로 계약해야 하는 기존 사무실 임대보다 훨씬 유리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매년 업체 수가 늘고 있는데도 테헤란로 공유오피스 각 지점별 공실률은 1~3%에 불과하다. 이는 자연 공실률(5~8%)보다 낮은 수준이다. 패스트파이브 신논현점 관계자는 "보통 스타트업의 성패가 갈린다고 여겨지는 3~6개월간 임대하는 기업 비중이 가장 높긴 하지만, 부담 없는 계약 조건 때문에 공실이 생겨도 금방 다른 기업이 자리를 채우는 등 회전율이 높다 "고 말했다.



테헤란로 건물주 입장에서도 공유오피스 업체가 반갑다. 보통 공유오피스는 2~3층 이상에 입점하는데, 3~5개 층을 한꺼번에 5~10년 동안 장기 임대해 빌딩 공실률을 대폭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공유오피스를 유인하기 위해 최초 계약시 임대료를 많게는 20%까지 할인해주는 등 스타벅스 못지 않은 ‘키 테넌트(key tenant·핵심 세입자)’로 대접하고 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공유오피스 등장 시기와 강남구 부동산 상황이 맞아 떨어진 것도 테헤란로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원인”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테헤란로 공유오피스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은 1인 기업이나 10인 이하 소기업 입주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들도 공유오피스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패스트파이브 측은 기업이 일반 사무실을 임대하는 대신 공유오피스를 활용할 경우 보증금·건물유지비·청소비·식음료비 등을 포함해 한 달에 3억3000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60평 사무실 기준). 실제로 KB이노베이션·광동제약·OB맥주 등 몇몇 대기업들은 특정 팀을 선별해 팀원 전체를 테헤란로 공유오피스로 입주시킨 상태다.

빌딩 업계에선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는 개인·기업 입장에선 별도로 오피스를 얻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공간 사업이 당분간 더 각광받을 것으로 본다. 현재 테헤란로에 집중된 공유오피스 시장이 전역으로 확장되면 국내 건물 공실률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공유오피스 기업이 '돈 되는 건물'인 대로변 대형 오피스 빌딩만 골라 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면도로에 위치한 건물들 공실을 채우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김영정 빌딩드림 이사는 “공유오피스 업체끼리 경쟁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면서 "공유 오피스 업체 입장에서는 고객 1인에게 받을 수 있는 임대료는 지금이 가장 높은 수준일 수도 있다”고 했다.



글=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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