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집에 세 든 자녀, 보증금 못 받고 쫓겨날 수도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고준석의 경매 시크릿] 부모 자식간에 임대차계약도 대항력 인정받을 수 있나?
서울지하철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H씨(34). 그는 다음달 7일 2차 매각기일을 앞두고 있는 경기 광명시 하안동 주공12단지 아파트(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사건번호 2018-7958) 경매에 참여하기로 했다. 저렴하게 신혼집을 장만하려고 틈틈이 경매 공부를 하던 차였는데, 이번에 경매에 나온 주공12단지가 근무지까지 출퇴근하는 데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어 마음에 쏙 들었던 것.
등기부를 보니 1순위 근저당권, 2순위 근저당권, 3순위 경매개시결정(임의경매) 순이었다. 모든 권리는 경매로 소멸한다. 게다가 최저매각가는 3억7380만원으로 최초감정가 5억3400만원 대비 30%(1억6020만원) 떨어진 상태였다. 만약 최저매각가 수준으로 낙찰받는다면 대출을 받지 않고도 매수할 수 있어 H씨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의 부동산 표시를 확인해보니 채무자 겸 소유자는 박○○이며 두 명의 임차인이 있었다. 이 중 한 명만 대항력을 갖춘 것으로 나왔다. 대항력은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引渡)’와 ‘전입신고’를 마쳤을 때 그 다음날부터 제 3자에 대해 임대차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효력을 말한다. 먼저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은 박○정. 그는 박○○의 자녀다. 나머지 임차인 최○영은 박○○의 또 다른 자녀 박○진의 배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매 초보 H씨는 채무자 겸 소유자 자녀의 대항력도 인정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부모 자식간 임대차계약도 당연히 대항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임대차계약이 ‘정상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다. 부모 자식간의 임대차계약이 정상인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자녀가 미성년자가 아니어야 한다. 이 자녀는 부모와 독립된 세대원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임대보증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임대차계약이 정상적이라고 보고, 소유자(채무자)의 자녀가 임차인이라도 대항력을 인정한다.
그런데 H씨가 관심을 가진 이 주택의 등기부에 따르면 소유자(채무자)는 1950년생이며 1994년 5월 2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어 자녀 박○정의 전입신고일은 1994년 4월 22일이다. 당시 소유자의 나이(44)를 감안하면 박○정은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미성년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임대차계약서가 있어야 하고 보증금 지급 사실도 함께 입증할 수 있어야 대항력을 인정받는다.
나머지 임차인 최○영은 경매개시결정일 전에 전입신고를 마쳤다. 게다가 배당요구종기 전에 배당요구까지 한 상태. 즉 최○영은 소액임차인에 해당한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에는 임차인 최○영의 임대차기간이 2014년 8월 5일~2019년 8월 5일이며 보증금 5000만원에 ‘방 3칸 전부’를 임차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는 임차인 박○정이 갖춰야 하는 대항력 조건인 ‘주택의 인도(점유)’와 상충하는 내용이다.
즉 부모와 자식이 임대차계약을 맺어도 대항력을 갖출 수는 있지만, 이 광명시 하안동 주택 경매의 경우 임차인 박○정은 대항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임대차 계약 당시 박○정이 미성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함께 부모에게 보증금을 지급했다는 것도 입증해야할 뿐더러, 무엇보다 다른 임차인 최○영이 경매 주택에 실거주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