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걸려 보스턴을 교통 지옥에서 구한 '빅딕'

조회수 2017. 10. 29. 17: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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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고가 뜯어내고 지하도로, 터널로 교통난 해소..과도한 투자비는 문제

지금부터 약 10년전인 2007년 12월 31일. 미국 보스턴시의 악명 높은 교통난 해소와 21세기형 도심 재개발을 목표로 진행되던 ‘빅딕(Big-Dig·땅을 크게 팠다는 뜻)’ 프로젝트가 종료됐다. 빅딕 프로젝트는 공식 논의되기 시작한 1982년부터 준공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 프로젝트 구상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결실을 맺는데 30년이 넘게 흘렀다. 


정식 명칭은 중앙간선도로·터널 프로젝트(The Central Artery/Tunnel Projet·CA/T). 보스턴 외곽과 도심 간 약 26km를 연결하는 6차로 도로를 8~10차로로 넓히고, 고가(高架) 도로를 철거하고 지하도로로 대체하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이다.

출처: 보스턴시청
보스턴에 교통 혁명을 가져온 빅딕 프로젝트가 끝난 뒤 공원화된 도심 모습.

교통 지옥에서 친환경 도시로 변신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면서 교통난으로 악명 높다. 1950년대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2만여 명을 외곽으로 이주시키고 도심 관통 도로를 건설한 것. 10년에 걸쳐 건설된 도로가 6차선 고가도로(Central Artery)였다.


고가도로 건설 당시에는 많은 청사진이 있었다. 외곽에서 막힘없이 시내로 진입하고 차량은 고가도로 밑에 주차하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하루 교통량은 이미 설계 최대치인 7만 5000대에 이르고 1990년대에는 매일 20만대의 차량이 통행하며 도시는 매일 14시간 동안 교통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교통 체증에 따른 연료 소비나 물류 지연으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5억 달러에 달했다. 사고율도 미국 도시 내 고속도로 사고율의4배에 달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고가도로의 교각 밑은 슬럼화했고 시민들은 소음으로 고통받았다.


빅딕은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도시 도로망을 재건해 만성적 교통 체증을 해결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시행한 것. 실제 보스턴에는 사업 종료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출퇴근 혼잡 시간대에도 통행 시간이 단축되면서 연간 200만 달러의 시간과 연료비 절감 효과를 얻게 됐다. 도로를 지하화해 얻어진 약 27에이커(ac·약 109만㎡)의 지상 공간에는 대규모 공원과 상점이 들어서면서 일산화탄소가 12% 줄었다.

출처: 보스턴시청
고가도로 철거 전(왼쪽)과 철거 후 공원을 만든 모습.

미국 최대 규모의 공공 토목사업

빅딕은 보스턴 도심 한복판을 통과하는 93번 도로 지하화를 비롯해 터널, 다리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I-90(소머빌~시가지, 6.5km) 터널구간 및 I-93(차이나타운~동부 보스턴, 6.5km) 등이 주요 구간이다. 로건(Logan) 국제공항과 시가지를 잇는 구간에는 ‘테드 윌리엄스 터널’(Ted Williams Tunnel)이, 찰스강을 가로지르는 구간엔 사장교인 ‘자킴 벙커 힐 대교’(Zakim Bunker Hill)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공공 건설사업 중 최대 규모다. 기술의 복잡성과 공사 금액으로는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완성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막대한 비용도 소요됐다. 전체 사업에 148억 달러가 투입됐다. 이는 파나마운하와 후버댐 건설비와 맞먹는다. 피크타임에 하루 투입 인력5500명, 24시간 근무에 주6일 근무, 150대 기중기 사용, 인건비를 포함한 하루 공사비가 약 300만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출처: 보스턴시청
찰스강을 가로지르는 자킴 벙커힐 대교.

도시 활동에 지장없는 공법 적용

대형 사업인 만큼 빅딕은 시공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프로젝트 종료 때까지 도시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기술자들은 다양한 공법을 적용했다.


우선, 운행 중인 지하철 안전을 저해하지 않고 터널을 뚫어야 했다. 이 사업은 1914년 건설된 지하철 노선의 1.2m 위에 터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기술자들은 지하철 노선 주변에 110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암반까지 박았다. 지하철 노선 주변으로는 콘크리트 터널이 만들어졌으며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둘째, 남부 철도 밑을 지나는 지하터널 건설 공사는 매일 15만명이 이용하는 철도 철로의 변형 없이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도시 전체의 70%가 매립지 위에 건설된 보스턴은 대부분 연약지반으로 늘 붕괴 위험에 놓여 있었다. 지반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냉각기법이 적용됐다. 지반을 얼려 강화시킨 후 터널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도심을 관통하는 고가도로 밑에 지하도로를 건설하는데 지하도로 건설 중에도 차량이 고가도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서는 고가도로를 통과하는 차량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주벽을 설치하기 위해 슬러리 월(slurry wall·지하연속벽) 공법을 적용했다. 완성된 지주벽은 지하 고속도로 터널 벽으로 활용했다.

출처: 보스턴시청
테드 윌리엄스 터널.

부실 시공 논란에 예산 초과도 부담

빅딕은 건설 중 기존 도시의 파괴 없이 도시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공학 기술들이 적용돼 토목공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미래 도시 개발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칭송도 받았다. 하지만 건설 과정과 준공 후 몇몇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선, 부실 시공 논란이다. 2004년 9월 15일, I-93터널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이는 슬러리 월이 지하수 수압을 견디지 못해 생긴 것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이 사고를 계기로 공사 구간 내 다른 누수 지점들이 추가로 발견되기도 했다. 


부실 자재(資材) 공급 문제도 발생했다. 2005년 6월 매사추세츠주 경찰은 지하 도로에 사용된 콘크리트를 공급한 업체를 부실 자재공급 혐의로 조사했다. 기준 미달 품질의 콘크리트를 공급한 것으로 밝혀져 업체 담당자들이 기소됐다. 2006년 7월 10일엔 테드 윌리엄스 터널 입구 근처에서 12t에 이르는 대형 콘크리트 패널이 무너졌다. 천장 패널 공사에 사용된 에폭시 접착제가 하중을 견디지 못했던 것. 사고로 터널을 지나던 여성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공정률이 94%로 일부 구간이 개통·운영 중이던 상황이었던 만큼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출처: 보스턴시청
보스턴 도심에 놓여있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공원으로 만드는 모습.

두번째로, 사업관리 주체가 없던 것도 문제였다. 대형 토목사업에 경험이 부족한 MTA(메사추세츠 유료도로공사)는 벡텔-파슨스 컨소시엄과 사업관리 용역 계약을 맺고 설계·계약·공정관리 등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다. 결국 발주기관의 감독 기능은 약화했고, 컨소시엄은 자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했다. 사업에 도입한 혁신적 시공 기술에 대한 검토는 물론 인터페이스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곧 부실 공사, 비용 초과, 안전 기준 위반 등으로 귀결됐다.


마지막으로, 천문학적 공사비가 소요되면서 시민에게 많은 부담을 안겼다. 실제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인프라 건설 사업으로 기록됐다. 빅딕의 초기 예산은 26억 달러(약 2조 9400억원)였지만 완공 후 실제 공사비는 5배가 넘는 148억 달러(약 16조7300억원)가 들었다. 사업 초기에 수립된 예산에는 공기(工期) 증가, 설계 변경, 민원·인플레이션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이런 관리상 헛점은 막대한 비용 증가로 이어졌고, 연방정부 예산 지원이 당초보다 적은 40억 달러에 그치면서 주 정부는 거대한 빚을 떠안게 됐다.



글=김윤주 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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