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처형장소
조회수 2019. 10. 24. 17:05 수정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4대문 사이에
일반인들이 왕래하던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4소문 인데요.
이 4소문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없고 모습도 사라져버렸으니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지고 말았죠.
서소문은 광희문과 함께
상여가 드나들던 죽음의 관문이었습니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은 서소문 밖 네거리.
이름난 처형의 장소였습니다.
천주교, 천도교 선교자들과
많은 실학자들이 처형당했죠.
또, 44인의 성인을 배출한
국내 최대 천주교 순교지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동고동락을 함께한 서소문은
오랫동안 발길이 닿지않는 근린공원으로 있다가
2019년 6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지하4층의 웅장한 지하공간으로 지어졌는데요.
어마어마한 규모와 여러갈래의 길은
이 땅의 서슬퍼런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있죠.
근대화의 시기에 박해받으며 사라져간 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곳은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아름다운 천정과
전시와 함께 마주볼 수 있는 하늘.
저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비움의 의미로 다가왔는데요,
서소문 역사공원은 마치
서울의 시간을 박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번쯤은 이 곳에 들러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역사의 시간을 기리고
아름다운 서울을 두 눈 가득히
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속의 고요한 과거를 만나고 싶은날
꼭 찾아가보세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