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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찌라

레시피에 집착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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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늦깎이 요리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무도 요리가 사내답지 못한 일이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가정에서 남자가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이었다.

요리를 알기 시작 했을 때는 이미 부모님에게 물어보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변호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상의 음식은 삼겹살과 완두콩과 감자의 조합이었다. 완두콩은 물론 냉동식품이었고, 감자는 통조림 감자였으며, 나는 감자 통조림에 든, 들큼한 소금물을 그대로 마시길 좋아했다. 완두콩과 감자에는 버터를 흠뻑 녹여 먹었는데, 삼겹살이라고 예외가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시절 내 ‘요리’를 좌우한 주 요인은 가난, 솜씨부족, 보수적 미식 성향이었다. 그러다 어느덧 가슴살의 세계를 졸업하고 어깨살의 세계로 진출했다. 그리고 TV에서 본 레시피대로 소고기, 당근, 감자로 만든 커다란 파이를 곁들이곤 했다.

나의 요리 종목은 늘어났다. 고기와 채소는 정복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길들일 수 있는 재료가 되었다. 거기에 푸딩과 잡다한 수프가 더해졌다. 그라탱, 파스타, 리소토, 수플레 등이 식단에 포함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다. 생선 요리는 언제나 문제였으며 아직도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는 장을 보러갈 때 정확한 목록과 친절한 요리책이 있어야 한다. 장바구니를 팔에 걸고 경쾌하게 걸어가며 당일 최상의 식재료를 사와서 무언가를 임의로 요리해 만들어내는 일은 영원히 내 능력 밖의 일일 것이다. 


나는 부엌에 서기만 하면 노심초사하는 현학자가 되어 가스레인지의 온도와 조리 시간을 엄수한다. 나 자신보다는 주방 기구를 신뢰한다. 손가락으로 고깃덩어리를 찔러 익은정도를 알아보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레시피대로 요리할 때 내 마음대로 하는 부분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를 더 넣는것 뿐이다. 

나는 내가 많이 의존하는 요리책들에 분노하는 일이 잦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현학적인 태도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요리책을 들 여다보는 독학 요리사인 나도 누구 못지않게 현학적이다. 그런데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 


수술 지침서가 요리책 같다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관을 통해 마취약을 소량 집어넣는다. 환자의 살을 한 토막 잘라낸다. 피가 흐르는 것을 본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다. 구멍을 꿰맨다.......'


레시피에 쓰이는 단어는 왜 소설에 쓰이는 단어만큼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걸까? 전자는 몸에, 후자는 머리에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데 말이다. 

늦게 요리를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한다. 옛날에 어머니가 삶고 굽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다. 그랬더라면 다른 걸 다 떠나서 지금 이렇게 처절히 칭찬에 목마르지는 않을 것 아닌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손님을 떠나보내고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이렇게 푸념한다. “양고기를/쇠고기를/무엇무엇을 너무 익혔어.” 이 말은 곧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랬다 해도 상관없잖아, 안 그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로 맨부커 상을 수상하고

그 밖에도 많은 유명한 소설을 남긴 영국작가

줄리언 반스.

까칠해보이는 그도 집에서는 '그녀'를 위해 요리하는

다정한 남자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가, 집에 100여권의 요리책을 두고

레시피 곧이곧대로 요리하는데요.

요리앞에서는 초심자인 그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글은 그의 요리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에서 

각색하였습니다.

책읽찌라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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