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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다니면서 독립출판하는 작가 '서귤'

조회수 2018. 12. 1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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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귤님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며, 

2016년 『고양이의 크기』를,

2017년에 『책 낸 자』를 출간했습니다.


책 <나를 닮은 일>에서는 

자신만의 일을 하는 8인과 인터뷰를 엮었는데요,

책 속에서 서귤님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이전부터 경험이 있으셨나요? 『책 낸 자』를 보면 그림 그리는 걸 학창 시절에 그만두신 걸로 나오던데요.


어릴 때부터 좋아하기는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던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린이는 어린이다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교육의 틀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기준에는 제 그림이 별로 좋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꿈이 꺾였어요. 그림은 줄 세우기가 아니라 스타일이 다른 건데 그때는 줄 세우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중학교 때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보다 잘 그리는 이런 친구가 미대를 가야지 나 같은 애는 미대를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림과 관련해서 어린 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웃음)


그럼 언제 다시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건 2015년에 나에게 주는 선물로 액정 태블릿에 그릴 수 있는 펜을 사면서부터예요. 그때부터 뭐라도 조금씩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페이스북에 그림일기를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게 됐는데 지금도 갈 길이 너무 멀죠. 

책을 내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을 보면 ‘저질러 버린’ 걸로 나오는데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도 항상 ‘내가 이걸 그려서 뭐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그림을 올리고는 하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독립출판 워크숍 공고를 보고 그날 바로 신청을 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때마침 독립출판이라는 통로를 만나게 된 거 같아요. ‘나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책 낸 자』에서 “달리 즐거울 일이 없잖아”라는 대사가 나오잖아요. 그런 직장과 일상생활이 책을 만들게 한 것은 아닌지 유추해 본 적이 있어요.


그때가 바로 직장 생활 3년 차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보통 369라고 하잖아요. (웃음)

그즈음에 회사생활이 한계에 도달했어요. 그러다가 다행히 독립출판이라는 통로를 만나게 됐죠.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등단 과정 없이 책을 낼 수 있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생기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그 당시에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시는 게 힘드실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도움도 되실 거 같아요.


맞아요. 회사에서도 꽤 안정이 됐어요. 창작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갈증이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돈 벌고 끝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물론 야근이 있는 날엔 작품 활동을 못 할 때도 있지만요.


『책 낸 자』에서 직장 분위기가 굉장히 우울하게 느껴졌어요. (웃음)


창작 활동을 하면서 회사에 대한 관점 자체가 꽤 여유로워졌어요. 당시에는 그게 진실이었지만요. 지금은 퇴근 후에는 회사 일을 털어버리고 내 할 일에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멘탈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해야 해. 이것마저 안 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대사가 아프더라고요.


마음 아프죠.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어서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안 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기록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 털어내게 됐어요.

실제로 뭔가를 하다 보니, 다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거죠.

지금도 맞춰가는 중이지만, 요즘은 일과 삶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한때 백수로 지내본 적도 있었는데, 그전에는 백수가 되면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불안해서 오히려 못하겠더라고요. 일하면서 좋아하는 걸 하면 시간은 당연히 부족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안정이 돼요. 탄탄한 수입원이 있다는 게 창작에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물론 사람마다 성향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안정적인 게 없으면 삶이 흔들려서 창작 활동을 못 하는 타입입니다. (웃음)

책상 앞에 ‘매일 하면 직업이다’와 ‘책을 낸 후에 달라질 삶’이라는 메모를 붙여 놓으셨잖아요. 


그 두 문구가 좋았다는 독자분들이 많았어요. 본인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책에도 그런 뉘앙스가 있지만 ‘매일 하면 직업이다’는 지금도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하면 그게 직업이고, 매일 책을 만들면 작가다.

그런데 ‘책을 내면 달라질 삶’은 사실 헛된 기대거든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책을 내고 뭐가 달라졌어?’라고 자신에게 물어봤을 때 엄청난 변화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없다는 그런 답변을 하잖아요.

‘책을 낸 이후의 삶’은 주인공이 초반에 가졌던 헛된 기대를 상징하는 거예요. 주인공은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로 생각했던거죠.


저는 내용 중에 “바뀐 것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책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두 번째 책은 낼 수 없다”라는 말이 감동적이었어요.


사실은 ‘책을 낸 이후 달라질 삶’ 포스트잇을 붙였을 시점에는 인세로 백만장자 되는 걸 꿈꿨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실제 일어난 변화는 두 번째 책을 내는 거였죠.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정말 중요한 변화였어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제가 최근에 생각해 본 삶은 저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에요.

예전이라면 계속 뭔가를 창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언젠가 ‘더는 책을 만들지 않겠어’라고 말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왜 만들지 않아? 그건 잘못된 거야’라고 공격하지 않고 ‘만들지 않는구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그때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모두 포용해주고 사랑해주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제가 꿈꾸는 삶이에요.



나를 닮은 일은 각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자기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거나, 오래도록 자신의 일을 외롭게 지켜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인터뷰이 중 3분과 12월 13일 북토크를 한답니다.


√ 일하며 책을 3권이나 낸 서귤 님

√ 귀여운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드는 김지언 님

√ 3년이하의 로컬숍을 분석하여 책을 만드는 조퇴계 님


관심있는 분들은 놀러오세요 :)

이 책은 책읽찌라의 리뷰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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