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마흔이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조회수 2018. 3. 7.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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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날만 봄날이 아니다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해가 바뀌고,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마흔이 되니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다고 합니다.

아니, 마흔이 되어도 흔들리고 불안정하다니 도대체 내 마음은 몇 살쯤 평안해지는걸까요?


그런데 나이드는 것을 차분하게, 그리고 다소 즐겁게 받아들이는 책이 있어 소개합니다. 한귀은 교수님의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입니다.


인터넷으로 갱년기 전조 증상을 찾아본다. 온갖 증상이 다 갱년기에 포함되어 있다. 마치 갱년기가 병의 대명사라도 되는 것 같다. 너무 증상이 많다 보니 나한테 해당되지 않는 것도 있어 ‘갱년기’라는 개념을 일단 잊기로 했다. 아직 덜 늙었음을 확인하니 마치 숙제를 미뤄둔 기분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이 낯설어진다. 우리 집 거울 속의 ‘나’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다른 곳에서 무심코 본 거울 속의 여자는 너무 이상하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스캔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그나마 아직 덜 늙은 증거다). 저 모습으로 집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머리카락, 윤기가 없다. 몸, 긴장감이 없다. 얼굴, 어둡고 칙칙하다. 자신감, 없어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문제는 그 놀람도 잠깐이라는 것이 다. 놀람이 유지되었다면 미용에 좀 관심을 가졌겠지. 그러나 아줌마는 금방 잊는다.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금방 다시 ‘주부’로 돌아 갈 수 있는 거다. 친구에게 “나 조로인가봐”라고 했다. 허풍이고 과장이었다. 허풍과 과장을 떨고 싶었다.


나이 오십이 3년 남았다. 반백 년 운운하고 싶지 않다. 그래봤자 팔구십살 넘어 지금의 나를 회상하면 웃길 것이다. 웃기지 않으면 진짜 웃긴 일이 된다. 그때 만약 진지하고 우울하게 지금의 나를 떠올린다면 그건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의미일테니까.

아줌마는 소유욕이 강하다. 아이가 있고 살림이 있는 사람이 소유욕이 없다면 오히려 문제일 것이다. 누군가를 보살펴야 하는 주체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대상에 대한 소유욕망을 갖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보살필 수 있겠는가. 


사피엔스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 욕망은 과해질 수밖에 없다. 아줌마의 일인인 나도 그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소유욕이 강하다. 아이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늘 최면을 걸고 공표도 하지만 소유욕은 저 깊은 곳에서 복류하고 있다. 


공간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내 삶과 살림이 있는 영역은 거의 신성불가침에 가깝다. 쓸고 닦으면서 향유하기 까지 한다. 하나의 예술품처럼 대하니 소유욕이 남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기도를 할 때 무언가를 해주십사 하고 구복은 안 하는데, 여기에도 나름의 계산이 들어 있다. 일단 해주십사 기도하면 기대하게 된다. 기대하면 조바심치게 된다. 생활에 균형을 잃는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더욱 문제가 커진다. 그 때문에 신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스스로가 하잘것없는 인간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신이라면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 텐데 구구절절 구체적으로 소망을 언급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섣불리 기대를 안 한다. 맹목적인 낙관도 안 품는다. 기다린다. 그 기다림을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봄날이구나, 하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눈부신 봄날만 봄날이 아니다. 그저 조금만 따뜻해도 된다. 손바닥만 한 양지만 있어도 된다. 숨 쉴 만큼, 함께 이야기 나눌 만큼의 바람만 있으면 된다. 그런 날이 많지 않아도 된다. 


봄날이 그런 것 이라면 중년을 넘어도, 

더 나이가 들어도 간혹 와준다. 


그게 생(生) 이다.


이 이야기는 책읽찌라의 영상리뷰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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