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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랩

세종대왕 영릉의 ‘발’ 만든 남자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전통 기능을 만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 114호 염장 조대용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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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

우리나라는 문화재의 종류를 크게 2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숭례문이나 불국사와 같이 형체가 있는 문화재는 유형문화재로, 형체 없이 옛 기능을 익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무형 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 


유형 문화재의 경우 사람들에게 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무형 문화재는 관람 가능한 형체가 아닌 무형이 되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조대용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1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4대째 대발 제작을 이어나가고 있는 염장이다. 부친인 조재규 선생에게 발의 제작 방법을 배웠다는 그는 자신의 공방에서 발 짜는 방법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삶에 밀접했던 발, 대나무로 정성을 엮다.


발은 대나무와 갈대에서 나온 대를 엮어서 만드는 일종의 전통 커튼이다.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커튼과 비슷하지만 발은 사이사이에 공간으로 바람이 통할 수 있었고 안에서는 밖이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 곤란했던 여인들이나 선비들이 많이 사용했다.


4대를 거쳐 전해지고 있는 가업


염장은 전통 발을 만드는 장인으로 우리나라에는 조대용 선생이 유일하다. 그의 집안은 가업 대대로 발을 제작하고 있는데, 철종 임금 당시 무관이었던 증조부로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조대용 선생은 어려서부터 발을 만드는 모습을 보아왔지만 군대에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발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고르는 법부터, 발을 엮는 법까지 배워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당시에는 수요가 보장되어 있어,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발 제작은 오랜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다


하나의 발을 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게는 35일부터 많게는 100일까지 걸린다. 조대용 선생이 만드는 발은 바닷가에서 자란 대나무를 이용해 제작되는데, 상황에 따라 삼 껍질이나, 싸릿대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만든다고 한다.


발 제작은 주 재료인 대나무는 12월 ~ 1월에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채취한 나무는 껍질과 속대를 벗겨낸 후 햇볕에 잘 말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푸른 대나무가 연한 갈색으로 바뀌게 된다. 


잘 건조된 나무는 구멍을 뚫은 쇠철판을 이용해 0.6mm의 대오리로 만들고 발을 엮게 된다.


대오리 뽑기 작업

조대용 선생은 대나무를 쪼개는 과정이 발을 만드는데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보통 2천개의 대오리를 뽑아내려면 1만번의 작업 과정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200개 가량은 부러져서 1,800개 정도만 사용이 가능하다. 


0.6mm밖에 되지 않는 나무를 가지고 발을 엮어내는 일은 숙달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척 어렵다. 

조대용 선생이 복원한 덕수궁 함녕전 '외주렴'

세종대왕 능과 덕수궁, 종묘의 발을 복원하는데 성공하다

조대용 선생은 한평생 발 제작에 몸담으면서 다양한 문화재를 복원하기도 했다. 세종대왕 능의 정자각과 종묘가 대표적인데, 정자각의 뒤쪽 신문과 종묘의 내부에는 모두 선생의 발이 걸려있다.


국내에 있는 능은 대략 40개 정도로 대부분 정자각도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들 정자각에는 발을 설치했었던 축이 남겨져 있는데, 조대용 선생은 “건물만 덩그러니 보존할 것이 아니라, 내부도 제대로 갖추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발을 제작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전수자의 부재, 경제적 어려움


조대용 선생이 발 제작을 이어 오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전수할 계승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순간 아파트로 바뀌어 버린 생활 양식 탓에 발을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아무도 배우려 들지 않았다. 


그나마 작은 아들 조영씨가 전수 장학생으로 가업을 물려 받으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자신이 겨우 설득해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아요.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조상들의 전통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발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찾아왔다. 많아 봐야 1년에 1개 ~ 2개 주문을 받는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감이 잡힌다. 


하지만 조대용 선생은 ‘돈’을 위해서가 아닌 ‘조상들의 비전을 이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잊혀져 가는 전통, 깊어져 가는 고민


한평생 자신의 길을 걸어온 조대용 선생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전통 기능을 보고 있자면 빠르게 바뀌어 가는 삶의 방식 속에서 나만 거스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발을 만들던 시대와 지금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다.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지만 한올한올 엮어가는 그의 손은 더욱 묵묵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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