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빛과 물속 피사체의 형상을 담는 사람"

조회수 2023. 1. 11. 15: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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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게 보는 훈련이 남과 다른 사진을 낳는다는 강영길 사진작가 인터뷰

바야흐로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다. 텍스트 아닌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이 SNS의 대세가 된 게 오래전 일이고,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카메라의 기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경쟁들이다.현대인들은 사진을 찍고, 포토샵 등으로 사진을 보정하고, 카톡이든 페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사진을 전송해서 다른 이들과 나눠 보는 일을 즐긴다. 특별한 장소와 공간뿐만 아니라 한 끼 식탁도, 집안 야옹이도 수시로 찍어서 올린다.

사진이 일상화, 보편화될수록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사진작가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촬영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디지털 시대, 온갖 형상이 넘쳐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사진작가는 어떻게 그들만의 입지점을 찾아야 하는가.전문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강영길(47) 작가를 만나 사진의 세계에 대해 들어본다. 강 작가는 동남아시아의 강렬한 태양 빛 아래에서 촬영한 물속 피사체의 사진을 디지털 작업을 통해 여러 장 겹쳐 완성하는 ‘림보(Limbo)’ 연작을 10년 가까이 작업하는 중이다.

예전의 필름 카메라와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는 작가들의 작업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을 텐데요.

“필름 카메라로 어떤 대상을 촬영할 땐 사전에 촬영 과정과 그 결과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아무런 개념 없이 즉각적으로 촬영하거나 순간의 영감에 따라 촬영해도 부담이 없습니다. 촬영 결과를 작가 의도에 따라 재편할 수 있으니까요. 이 점에 제겐 가장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디지털이 사진 표현의 폭을 넓혔다는 말씀이군요.

“기존 예술의 프레임으로 보면 디지털 사진이 가볍고 소소하며 너무 일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특징이 이 시대 미술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봅니다.”

물속 피사체와 태양 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집중하시고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 추상을 하는 것. 그것이 제 의도입니다. 태국에서 산 형형색색의 유리잔 등 눈에 띄는 오브제를 사 모았다가 물에 넣어 촬영하지요. ‘랩소디 인 컬러’라는 연작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해 표현하는 건 물속 피사체가 아닌, 빛과 물결의 움직임과 그 색채입니다.”

사진의 중요 속성의 하나인 순간 포착에는 관심이 없으시군요.

“제 작업은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자리합니다. 제 작품에선 피사체의 형태가 흐릿하게 지워지게 되지요. ‘대나무 연작’에선 나무의 조형적 아름다움보다는 그 주위를 둘러싼 어둠이 돋보이게 처리했지요. 구체적 형상은 저에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실존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삶의 아이러니, 존재와 무(無)의 연관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작품에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서울예대 사진과를 나오고 프랑스 유학까지 했습니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지망했는데 사진과를 가게 됐습니다. 내친김에 프랑스 ‘파리광고진학교(E.F.E.T.)’로 유학을 갔지요. 파리의 미술관,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문화적 충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아, 이런 사진도 가능하구나’ 싶은 작품들이 많았지요. 표현의 자유로움과 그 폭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엔 상업사진가로 6~7년 광고와 패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현대오일뱅크 광고를 송혜교씨와, ‘부자되세요’의 비씨카드 광고를 김정은씨와 찍었지요. 배우 임수정씨와 함께 텔레비전 CF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선 일정한 수입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 점이 가장 큰 고충입니다. 제 작품이 큰 것은 가로 8m, 세로 2m에 이르는데 인쇄비 등 제작비만 수백만원이 들거든요. 작업 특성상 스태프가 제법 필요한데 이들의 아르바이트 비용도 만만치 않지요. 한 프로젝트에 1억원 가량 비용이 들기도 하니까요.”

사진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예술가의 길을 가라고 함부로 권하지 못하겠습니다. 경제적 측면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다면 모를까, 순수하게 작업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실제 삶을 우선할 수는 없으니까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사진의 경우, 테크닉은 누구나 배워서 할 수 있지요. 남과 다른 사진은 남과 다른 기술이 아니라, 남과 다르게 사물을 보는 훈련의 결과라고 봅니다.”

작가로서의 보람도 크시리라 믿습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관객들이 제 작품을 접하고 그 안에서 본인의 기억이나 기쁨, 고민을 만날 수 있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지요. 전업 작가로서 빛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탐색을 계속하면서 기회가 되면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작품화한 전시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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