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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대체 고기'는 누굴 위한 고기인가요?

조회수 2021. 4. 2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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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대안은 '대체 고기'가 아닌 '우리 땅에서 자란 채소와 과일'이다.

언어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다. 그래서 권력자는 언어를 선점한다. ‘대체 고기’란 단어를 마주하면서 채식주의자인 나는 소외감을 느낀다. 이제는 환경이든 건강을 위해서든 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고기 맛’은 포기 못 하는 집착이 만든 단어. 대체 고기란 단어를 통해, 여전히 유통망의 최전선이나 자본주의에 영향력 있는 이들은 고기가 필수라고 생각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


대체육 시장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도 서양처럼 ‘비건’이 대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깨닫는다. 고기 최고주의와 더불어 서양 식문화 분류법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오늘도 별생각 없이 가뿐하게 한식 제철 밥상을 차리는 나는, 육식주의자이자 서양 우월주의자들이 만든 언어들 속에서 소외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의 대안은 ‘대체 고기’가 아닌 ‘우리 땅에서 매일 자란 채소와 과일’이다. 대체 고기라는 용어가 고기가 인간에게 필수라는 가치관을 담고 있다. 대체되는 그 무엇이든 ‘고기’의 속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거니깐. 투자자들과 언론은 하나같이 고기 맛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설명하는데, 세 치 혀는 똘똘하다. 누구든 대체 고기를 먹어보면 고기 맛이 날 뿐 고기가 아님은 단박에 안다. 그런데도 기업은 나 같은 사람들이 고기 맛을 그리워할까 봐 ‘채식 고기’, ‘콩고기’를 내놓았다며 유혹한다.


고기라는 건 사전적으로 ‘동물의 살’을 뜻한다. 동물의 살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을 타깃으로 한 상품에 굳이 ‘고기’라는 단어를 붙여 판매한다. 요즘 마케팅과 세일즈는 ‘사용자 위주(User friendly)’가 대세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채식주의자가 되고서 먹을게 넘쳐났다. 고기 먹을 새가 없다. 우리나라는 절기에 따라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제철 과일과 채소가 나온다. 지난 계절을 버텨내 달고 영양도 풍부한 과일과 채소는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지금은 두릅이 한창이다. 어릴 적 꽃샘추위가 지나면 엄마는 두릅을 찌고 튀기고 볶아줬다. 어릴 땐 이게 왜 맛있나 했는데, 이젠 두릅의 가시를 직접 제거해 먹는다. 채소의 맛을 알게 됐고, 철이 지나면 새로운 채소를 맞이 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먹는다.


조미료와 버섯을 뭉개 놓은 것을 고기 맛이 난다고 홍보해도 거들떠도 안 본다. 특히 한국인의 밥상과 주전부리엔 고기보다 더 좋은 게 널렸다. 콩으로 만든 훌륭한 두부, 콩국물, 콩고물 등이 더 맛있고 건강하고 싸다. 조금 과장 섞인 말이지만, 채식주의자가 된 후에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더 자랑스러워졌다.

시장과 마트엔 우리 농산물이 절기에 맞게 진열된다. 그 농산물들이 지속가능한 음식이다.

비건 용어를 쓰는 것도 한국인 채식주의자에게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 하는 홍길동 같은 처지다. 나도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음 비건의 종류를 보고 내 인생 ‘비건’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간헐적으로 ‘페스코테리언(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 ‘정도는 됐다. 별 애쓰지 않아도 집밥이나 급식을 먹을 때 그랬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찰 문화가 뿌리 깊고, 이를 중심으로 절기별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 간장, 고추장, 도토리묵, 비빔밥 등 굳이 우유나 고기, 버터가 들어갔는지 따지지 않아도 되는 재료가 많다. 절밥과 옛 가정식은 자연의 섭리를 음식에 담았다.


그래서 오히려 서양의 전문가들이 지속 가능한 식습관의 예로 한국인의 식문화를 주목한다(WSJ 칼럼니스트 비 윌슨이 쓴 『식사에 대한 생각』에선 한국의 8,90년대 식사문화를 모범 예시로 든다. 이 책은 NYT 등 주요 외신이 추천한 책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우리의 식문화를 서양인이 만든 비건이니, 베지테리언이니 라는 카테고리에 우리를 끼어 맞춘다. 다 함께 막국수, 콩국수,시루떡을 먹은 날 굳이 친구들에게 이 음식이 비건이라고 소개하는 게 우스웠다. 무슨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설명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체육’, ‘비욘드미트’ 등 인간의 식습관엔 고기가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을 담은 용어 때문일까. 오늘도 누군가에게 고기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상식을 거스르는 사람이 된 거 같아 죄책감이 쌓인다. 고기를 포기 못 해 대체육까지 만들고 ‘이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니 나도 은연중에 ‘인간은 고기가 필수인데 내가 유별나구나’ 생각하게 한다.


굳이 따지면 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우유와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 정도 되지만, 식단을 짜기 전 고기와 버터를 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제철 채소가 무엇이고, 솜씨 좋은 스님의 사찰레시피나 요리연구가의 가정식 요리법을 활용해 만드는 즐거운 한식 요리법을 생각한다. 나부터 채식주의자, 비건, 이라는 말 대신 집밥, 사찰음식, 한식이란 용어를 쓴다. 비건은 맛없고, 규제가 많다며 찡그리던 사람들도 ‘들기름 막국수’, ‘콩국수’를 먹자고 말하면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속 편하고 좋지’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국내 비건인들을 타깃으로 ‘지속 가능한 식탁’을 연구하는 세일 담당자와 마케터는 분발해야 한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그리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속 가능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만의 언어를 찾아야 우리 식대로 식문화를 즐기고 그래야 해외가 주목하는 K-비건도 가능하다. 어느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 담당자가 한국인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기깔나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쓸 거다.


오늘도 ‘대체 고기’가 뜬다는 기사 제목을 읽으며 되묻는다. 도대체 누굴 위한 ‘대체 고기’냐고, 누굴 사로잡기 위해 만든 단어냐고.

블룸버그가 소개한 채식, 비건의 종류다. 우리나라도 한국식 지속가능한 식탁 분류표를 개발해도 좋을 듯하다.
원문: 배추도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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