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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모르는 뉴욕의 명물, 기이한 아파트

조회수 2021. 4. 13.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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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쭉한 집은 대체 뭐란 말인가요..?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스트릿이지(부동산 사이트)에서 집을 구경하다가 이런 아파트 평면도를 보았기 때문인데요. 집도 기숙사도 아닌 것이… 긴 터널에 방과 욕실을 욱여넣어 네 명이 살 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약간 무섭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방마다 창문과 벽장도 있고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딸린 주방까지 완비돼 있으니 살기에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길쭉한 집은 대체 뭐란 말인가요..?


알고 보니 뉴욕에는 이렇게 길쭉한 모양의 아파트 매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었으니, 이름하여, 바로 오늘의 주제인 뉴욕의 ‘레일로드 아파트’입니다.

흔한 뉴욕의 건물들.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새로 지은 건물들과 하늘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관광명소들이 지척인 미드타운에 살지만 제가 좋아하는 뉴욕의 매력은 더 조용한 곳에 있습니다. 진한 벽돌색이나 외벽에 위아래로 열리는 미닫이 창문들이 나란히 달린 오래된 건물들이죠.


3층에서 5층 정도의 낮은 아파트인 이런 건물들은 맨하탄의 주택가에 많이 있는데 남쪽으로는 소호와 이스트빌리지, 북쪽으로는 어퍼웨스트와 어퍼이스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낡은 비상계단에 키가 큰 가로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런 오래된 뉴욕식 아파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뉴욕의 매력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주죠.

정면에서 보면 한 가구가 살기에도 좁을 것 같은 작은 폭의 집들입니다. 양옆 건물들과 붙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이들은 왜 양옆 건물들과 붙어있는 건지, 저 사이에 창문은 없는 건지, 도대체 안은 어떻게 생긴 건지… 


러분도 궁금하신가요? 구글어스와 스트릿이지의 수많은 매물들을 이용해 분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집들의 모양은 앞뒤로 길게 생겼으며 이런 집들의 양옆에는 창문이 없다

하늘에서 본 이스트빌리지. 이 사람들은 자기 집이 서향인지 북향인지 신경도 안 쓴다

레일로드 아파트들의 모습입니다. 위에서 보면 이런 모양인데요, 집들의 너비에 비해 깊이가 배는 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특징인 판상형 아파트와 비교하면 채광과 통풍의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죠. 


정남향의 강렬한 채광과 부엌+거실의 맞바람을 이용한 초강력 통풍이 없으면 B급 매물로 취급하는 눈높은 조선인의 한 명으로서 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햇살을 받고 말 것이다! 채광에 환장한 한국식 판상형 아파트

1. 레일로드 아파트란?

방들이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들을 레일로드 아파트먼트, 즉 기찻길 아파트라고 합니다. 뉴욕 부동산 시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매물로, 상당히 긴 특이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좀 괜찮은 경우
좀 심한 경우. 웁스 내 방에 가기 위해 네 방을 통과할게

2. 레일로드 아파트의 탄생

많은 뉴욕 아파트들이 그렇듯 레일로드 아파트는 디자인적 영감이 아닌 순수히 필요에 의해서 생겼습니다. 좁고 사람 많은 도시에서는 최대한의 공간 활용을 해야 했기 때문인데요. 거실, 주방, 식당 등이 ‘중간공간’을 끼고 얽혀있는 고전적 형태의 주택(사치스러워!)에 비해 레일로드아파트는 마지막 한 평까지 쓸 수 있는 경제적인 구조였습니다.


이런 건축물은 대부분 19세기 중후반에 지어졌는데 당시는 주거용 건축물 관련 법이 제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조량, 공기 순환, 프라이버시 등 현대 기준으로는 필수적인 주거환경 조건들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리모델링을 거치는 집들도 많아졌지만 집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 생활환경의 불편한 점들도 어느 정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레일로드 아파트에 살아봤던 사람들의 주된 소견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현대식으로 잘 고쳐놓아도 100년 전 사람들이 당면했던 구조적 문제들이 아직도 나타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사회학자들이 레일로드를 대부분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3. 장단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라 스터댓은 레일로드 아파트에 대해 “면적 자체는 크지만 너비에 비해 매우 긴 극도로 어색한 비율”이라며 “인간의 생활공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위반한 것이다”고 묘사했습니다. 


사회학자인 토마스 J 골드만은 이런 아파트에서 자랐던 경험에 대해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프라이버시가 전혀 없다. 집의 가장 끝인 부모님의 방에 서면 거실과 부엌까지 보였다. 이 구조와 프라이버시의 결여가 노동계급의 일종의 피임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듣다 보니 시무룩해지는데요. 하지만 레일로드 아파트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무시 못 할 장점도 있습니다.


넓다! 공간이 넉넉하다는 점은 레일로드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상한 구조때문이긴 하지만 비슷한 가격의 매물들에 비해 훨씬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데요. 복도를 없애고 더 큰 방을 만들 수도 있어 한 평 한 평이 소중한 이 도시에서 나름 큰 효용성을 자랑합니다. 


벽을 허물거나 세우는 등 수리에도 용이해, 룸메이트(혹은 불특정 다수의 이방인들)와 함께 지내는 인구가 많은 뉴욕이란 도시에 찰떡궁합인 셈이죠.


멋지다! 또다른 장점은 고풍스러운 프리워( pre-war ) 디테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식 슬라이딩도어나 화로 등 매력적인 오리지널리티가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낡았음에도 인기가 좋은데요. 특이한 구조까지 상쇄할만한 매력이 있다는 걸 반증하죠.


4. 매물 살펴보기

좋은 보기로 여기 이스트빌리지의 근사한 (구)매물이 하나 있습니다. 633 E 11th St Unit 17입니다.

잘 빠진 평면도입니다. 비록 옆 건물의 벽으로 막힌 뷰라도 방과 욕실에 창문이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 두 개가 나란히 한 층을 쓰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건물의 창문이 한 층에 네 개씩 있는 것이죠. 


나무로 된 창틀과 문틀이 잘 보전돼 있습니다. 주방은 넓진 않아도 거실과 구분돼 있고 세탁기가 있다는 점이 큰 플러스네요. 볕이 잘 드는 거실과 전체적으로 밝은 집 분위기가 좋습니다.

주인장 내외.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이 영 불편합니다

하지만 사실, 정말 가까운 사람과 사는 게 아니면 평화가 지속되긴 어려운 구조이긴 하겠습니다. 한 기사에 나온 친구 둘이 함께 사는 경우를 발췌했습니다.

FIT 학생인 Chris와 Felicity가 나눠쓰는 브루클린의 한 레일로드아파트.

펠리시티: “제가 큰 방을 쓰는데, 크리스의 남자친구가 오면 둘이 방을 바꿔써요.”

크리스: “펠리시티가 짐이 많아서 큰 방을 쓰는데 저는 괜찮아요. 남자친구가 오면 펠리시티가 방을 빌려주고요.”(방을 빌려주다니??)

펠리시티: “별일은 아니에요. 저한테 고맙게도 큰 방을 양보했기 때문에 자고 가는 게스트가 오면 제 방을 빌려주고 저는 크리스의 방에서 자는 식이에요. 좀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손님과 함께 묵고 있는 그 방을 밤중에 지나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

두명의 룸메이트는 특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거실, 큰 식당, 분리된 부엌까지 있죠. 디너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제 친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결론: 한마디로 그닥 쾌적한 주거 환경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과 활용도 높은 구조가 특징인 레일로드 아파트였습니다. 매력적입니다. 이런저런 불편함도 결국 너무 근사한걸요!


원문: 뉴욕월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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