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취업에 도움 되는 자격증이야?"

조회수 2021. 1. 8.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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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라고 답할 것이다.

주말 새벽마다 대구행 기차를 탔다. 돈 없는 취준생 시절이라, 부모님께 손을 벌려 차비를 충당했다. 여자친구가 대구에 있어서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서 인명 구조요원 ‘라이프 가드’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였다.


종일 취업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주말마다 대구까지 간다니 부모님 잔소리가 극에 달했다. 화가 난 어머니는 “그거 취업에 도움 되는 자격증이야?”라고 물으셨다. 현관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게 서 있다가 문을 나섰다.

취업에 도움 될까?
취업에 도움 될까?

기차에 앉아 어머니의 말을 되새겼다. 광고 기획을 하고 싶은 나에게 라이프 가드 자격증은 큰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취업을 앞두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육체적으로 힘든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연수간 배우게 될 구조방법과 필기 공부에 집중해 집에서 들었던 말을 덮어버렸다.


라이프 가드 교육은 8일 수업으로 총 4주간 진행했다. 수상 구조 방법과 영법은 수심 5M 두류 다이빙 풀에서 배웠다. 연수간 수상 훈련은 쉬운 편이다. 동네에서 수영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였고, 수영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5M 수심이 재미있어서 다들 웃으며 이겨냈다.

무서운 것은 지상 훈련이다. 입수 전 두류공원에서 기초체력 강화를 위한 몸풀기 운동을 한다. 


사실 몸풀기라고 하기엔 조금은 과할 수도 있다. 팔 굽혀 펴기, 쪼그려 뛰기, 죽음의 PT 8번 온몸 비틀기 등 유격 훈련을 방불케 한다. 길바닥에 드러눕는 건 기본이고 목이 쉬어라 소리도 질러야 했다. 비 오는 날엔 실내 운동을 기대했지만, 비 맞으면서 공원을 뛰었다. 예외란 없었다.


체조 자세가 안 좋거나 불성실한 사람에겐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조교는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딴 뒤, 라이프 가드를 양성하는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 사람이 한다.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조교들은 날아다녔다. 단체 뜀 걸음을 하던 중 인솔 조교의 모자를 뺏어오면 훈련을 종료한다는 미션이 내려왔다. 다들 이를 악물고 잡으러 갔으나 50명 중 그 누구도 조교를 붙잡지 못했다.


수상 훈련의 꽃은 ‘입영’이다. 손을 물 밖으로 올린 채 다리만 이용해 물 위에 떠 있어야 한다. 시험 필수 과목으로 3분간 유지해야 통과다. 입영 연습 중 포기자가 많이 나왔다. 나도 포기를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깊은 수심에서 수영한 적이 없어 발차기가 어색했다. 힘을 빼면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물을 한 바가지 먹었다. 이 훈련만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물 밖으로 나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물이 체질이었다.

빡센 입영을 소화하고 난 뒤 자신감이 붙었다. 수심 5M 아래에 있는 중량물을 잠수해서 둘러업고 25M를 헤엄쳐 나왔다. 나보다 몸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는 사람을 맨몸으로 구조하는 훈련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지상 훈련에선 도망치는 조교를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모든 과정을 열외 없이 이겨냈다.


드디어 시험이 다가왔다. 연습한 대로 하면 문제없다는 교관의 응원을 듣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필수 과목인 25M 잠영과 수심 5M 아래의 중량물 가져오기를 가볍게 통과했다. 가장 힘들었던 입영도 쉽게 성공했다. 


3분이 3시간 같았던 훈련과 달리, 시험 칠 땐 30초도 안 되는 것처럼 짧게 느껴졌다. 이후 수상 구조 방법과 심폐소생술, 자동제세동기(AED) 사용을 문제 없이 치러냈다.

4주간의 훈련을 버텨낸 결실은 달콤했다.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내 이름이 올라갔다. 함께 운동했던 대구 동기들과 카카오톡 메신저로 기쁨을 나눴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려는 순간, 답하지 못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거 취업에 도움 되는 자격증이야?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네 맞아요”라고 답할 것이다. ‘라이프 가드’ 자격증은 취업에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이력서 한 칸 채우는 용도가 아니었다. 취준생 시절 바닥 쳤던 자존감을 일으켜줬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자격증을 손에 넣었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걸 깨달았다. ‘비 맞으며 공원에서 뒹굴기도 했는데 이까짓 거 못 이겨낼까’라며 연속된 서류와 면접 탈락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면접 때는 자격증 덕분에 남들보다 질문을 더 받았다. 면접관은 ‘라이프 가드’ 자격증이 뭐냐고 항상 물어봤다. 틀에 박힌 자격증만 즐비한 취준생 가운데 나의 ‘라이프 가드’ 자격증은 눈길을 끄는 이력이었다. 


취득 과정을 간략히 말하고는 “힘든 훈련을 이겨낸 만큼 회사 생활도 잘 버티겠다”며 패기를 뿜어냈다. 면접관은 “운동 좋아하는 친구는 성실하게 일도 잘한다”는 긍정적인 말을 했다. 며칠 뒤 최종 합격자로 선정됐다(그 회사엔 가지 않았지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자격증은 큰 도움이 됐다. 나만의 스토리도 담을 수 있었고, 대구에서의 좋은 추억도 새길 수 있었다. 라이프 가드 자격증은 남을 구하기 위한 자격증인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나의 ‘라이프’를 구하는 자격증이었다. 취업난에 허덕이며 절망 속으로 침잠하는 나를 꺼내 준 ‘인명 구조요원’ 같은 존재였다.


내 인생 최고의 스펙을 묻는다면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내 삶과 타인의 삶을 모두 구할 수 있는 ‘라이프 가드’ 자격증이 있다고 말이다.


원문: 정소장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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