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가 말하는 고종-흥선대원군에 관한 5가지 오해와 진실

조회수 2021. 1. 1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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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틀렸다.

한국 역사 최고의 떡밥은 고종과 대원군, 그리고 명성황후다. 드라마 속, 대원군은 꼰대, 명성황후는 친일파, 고종은 우유부단으로 그려진다.


역사학자들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100시간 이상의 인문학 강의를 월 9900원에 볼 수 있는 다물어클럽의 <인물조선사> 속 3명의 역사학자 이야기를 요약해보았다. (학습지 포함 월 4900원 혜택 제공 주)

1. 흥선대원군은 망나니짓을 하지 않았다: 조선은 망나니 왕족을 두고 볼 나라가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의 유명한 일화는, 잔칫집에서 남은 고기 뼈다귀를 빌어먹고 다니며 ‘상갓집 개’ 취급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흥선군을 다룬 작품 중 흥선군을 이렇게 그리지 않는 작품이 없다.

영화 ‘명당’ 속 몸을 낮춘 흥선군의 모습

그러나 흥선군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던 것은 사실이나,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은 없다. 당시의 왕족은 존재만으로도 귀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 흥선대원군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

흥선군의 아버지는 왕족 핵인싸였다

2. 고종은 유약했고, 대원군과 명성황후가 대립했다? 아니, 왕은 그래도 왕이었다

개항기를 다룬 작품에서 고종은 보이지 않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왕비들의 정치 참여는 금지되어 있었고, 이는 철저히 지켜졌다.

대원군 섭정기 동안 바지사장이긴 했지만, 이후는 고종 자신이 실세였다

3. 대원군은 귀족들의 기를 누르고 집권했다? 나름 처세의 달인이었…

역사학자들은 다물어클럽 강의에서, 당시의 정치 구도는 복합적이었다 말한다. 흥선군은 안동 김씨는 물론, 세도가도 포섭하려 했다.


당시 왕실과 세도가는 결코 교과서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하지 않았다. 안동 김씨의 차세대 중책 라인(?)이었던 김병기 등과 대립하긴 했으나, 뭐 절멸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좌천 정도에 그쳤으니 연합정권이라는 틀이 깨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 흥선대원군은 직함이 없는 존재였다. 어디까지나 왕은 고종이고 흥선대원군은 그 신하였다. 결국 흥선대원군의 집권은 고종의 묵인이 없는 한 불가능한 케이스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급진적, 전면적이지 않았으며, 권력 구조 안정화에 주력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그럴 리 없다는 것~

3. 흥선대원군은 결국 ‘왕정’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복궁 중건으로 말아먹은 개혁

당시 서원의 유림은 세금도 안 내고 병역도 면제였다. 흥선대원군은 아예 서원을 철폐해버리고 특권을 앗아간다. 영조조차 유림과 척지기 싫어 포기했던 것을 흥선대원군이 밀어붙인 것이다. 이렇게 재정은 안정화하나 했더니…

상남자 대원군

그런데 이 돈을 죄다 경복궁 중건에 쓴다. 심지어 돈을 막 찍어내서, 유통경제가 무너진다. 강의에서는 이것이 바로 왕정적인 사고가 가지는 한계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왕권을 강화하면 다른 문제로 해결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당시는 신문물이 들어오는 격변의 시대였다.

너무 막 가며 정계의 신뢰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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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흥선대원군의 통산수교 거부정책은 온전히 그의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서양은 조선에 관심도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정책 때문에 근대화가 지연다는 것. 흥선대원군이, 세계의 급변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동양사학자들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서양 국가들이 조선 개항을 원했는가?
아니오… 걍 중국, 일본 가는 길이에요…

그럼에도 병인양요, 신미양요에서, 서구가 군함을 동원해 공격한 건 사실이다. 당연히 조선은 서구 열강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학자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척화는 필요했다. 근대화가 늦어진 것을 대원군만 탓하긴 힘들다.

조선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철수한 걸,
이겼다고 포장한 당시 조선(…)

5. 대원군과 고종은 서로를 마음으로 아꼈다? 흥선대원군의 문상도 가지 않았던 고종

대원군이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것도 사실이고, 원래 왕의 위에 누가 있는 게 정상도 아니다. 고종은 최익현 등을 통해 대원군을 몰아낸다. 대원군은 이후 임오군란으로 잠시 복귀하지만, 이후 여러 차례의 도전에도 실권을 잡지 못하고, 고종에게 완전 버림 받는다.

후레자식이라 하기에는 고종이 억울할만도…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역사학계의 평은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는 권력을 다룰 줄 아는 현실주의자다. 여러 세력과 균형을 이루며 장기간 섭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왕권에 갇힌 좁은 시야의 소유자였고, 결국 조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팩폭 날리는 역사학자들

마무리하며

아마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위 내용은 얼핏 알 내용들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드라마에서의 스테레오 타입대로 이해했을 것이다. 대원군은 꼰대, 명성황후는 친일파, 고종은 우유부단…


이는 역사 드라마와 영화는 재미있지만, 역사 자체는 재미 없다는 생각에, 역사를 좀 더 깊이 접근할 기회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다물어클럽과 함께 그 선입관을 깨보자. 비싸다는 핑계, 어렵다는 핑계 댈 필요 없다. 월 9900원에 무제한 영상이니. 따분함이 지식으로 바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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