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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활동을 '역주행'하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즉시 철회되어야만 하는 이유

조회수 2020. 12. 4. 13: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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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정안은 오히려 재계의 손을 들어준 조치이며,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다섯 달 전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서다. 이쯤에서 아마 직장인의 절반쯤은 페이지를 닫아버릴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 100명 중 88명[1]은 노조에 가입하지도 않았을뿐더러, ILO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핵심 협약이 알게 뭐란 말인가? 이 쟁점의 난점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것이 노조가 있든 없든 우리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좋든 싫든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단 훨씬 낫다.


ILO와 ‘국제노동기준’

ILO는 1919년 4월 체결된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따라 당시 국제연맹 산하 기구로 설립됐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해 노동자운동이 확산되고,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까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자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응 기제로 마련됐다. 너무 막장으로 가면 혁명까지 일어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ILO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위해 국제노동기준으로 만든 협약이 총 190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걸 꼽은 게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인데,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보장, 강제노동의 철폐, 아동노동의 근절, 고용‧직업에서의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한다.

“이 선언의 채택을 통해 ILO는 국제사회가 제시해온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세계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의 사회적 최소치를 확립했고, 이제 새로워진 낙관론과 함께 새로운 세기를 앞당길 수 있게 됐습니다.”

– 1999년 8개 핵심협약 채택 당시 마이클 한센(Michel Hansenne) ILO 사무총장

ILO 가입 이래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총 29개항에 대해서만 비준했다. 핵심 협약 8개항 중에서도 4개항 역시 비준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이 핵심 협약 4개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7개국뿐이다. 마셜제도‧팔라우‧통가‧투발루 등 인구 1만~10만의 작은 섬나라들을 제외하면, 전제군주 국가(브루나이), 독재 국가(중국), 그리고 한국뿐이다. ‘노동 지옥의 진원’이 여기구나 싶다.


그렇다면 4개항이 대체 뭐길래 비준하지 않았던 걸까?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협약'(29호·105호)인데, 크게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노조할 권리, 다른 하나는 징병제. 


한국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반영된 대목이다. 비록 아직까지 노동조합이 보편화되진 못했지만, 노조할 권리는 대다수 국민이 직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징병제와 군대에서의 강제노역 역시 언젠가는 바꾸어야 할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이다.

우리나라는 ILO, OECD, EU로부터 이 4개항의 비준을 요구받아왔다. 최근에는 EU가 한-EU FTA의 “핵심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압박해왔다.


자본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데 별수 있나? 수십 년간 꿈쩍 않던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을 국정목표로 제시하면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해왔다. 그러다가 2019년 10월에 105호 협약을 제외한[2] 3개 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런 기조는 21대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일단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87호와 98호가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


  • 노동자와 사용자는 각자의 이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떠한 차별도 없이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노동자 단체 및 사용자 단체는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로이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에 대해서 결정하고 그 계획을 수립할 권리가 있다.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어떠한 간섭도 중단해야 한다. 노동자 및 사용자는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
  • 노동자 단체 및 사용자 단체는 이들 단체와 동일한 권리 및 보장을 받는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를 설립하고 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이들 단체는 국제 노동자 단체 및 사용자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
  • 이 협약에서 규정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있어서 노동자 및 사용자 그리고 그 단체는 다른 국내법령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법령과 그 법령의 적용으로 인해 협약이 규정한 보장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


  • 이 협약은 단결권 행사 중인 노동자에 대한 보호,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간의 상호 불간섭, 자발적인 단체교섭 추진을 목적으로 한다.
  •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인한 고용거부, 조합원 또는 조합 활동 참여로 인한 차별 또는 편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는 서로 간섭행위에 대해 보호받아야 한다. 사용자나 사용자 단체가 노동자 단체를 지배‧재정지원‧통제하려는 행위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 필요한 경우 협약에 명시된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국 상황에 맞는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 필요한 경우 각국 상황에 맞는 조치들을 취하여 고용조건과 상황을 규제하기 위한 자발적인 단체교섭 개발 및 이용을 격려‧촉진해야 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요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ILO가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해온 것은 특수고용직이나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법‧제도적으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이나 하청 노동자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 보장, 노조 설립신고제도의 개선과 같은 내용들이 전무하다. 이런 점들을 개선하려면 노조법 2조와 12조의 해당 규정들을 개정해야 하는데,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기도 했다.


단결권을 축소하겠다는 정부 개정안

정부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단결권의 범위를 여전히 제한하거나, 더욱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종사근로자인 조합원’과 ‘종사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구분을 두어 사업장 출입과 노조 활동에 격차를 만들고, 해고자나 산별노조 조합원들의 노조 활동을 제한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개정안이 해고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는 지금도 산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지금이랑 거의 차이가 없다. 구색맞추기식 개정이란 뜻이다.


기업들의 반대로 산별 제도가 완비되지 못했지만, 민주노총이건 한국노총이건 한국의 대표적 노동조합들은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독일과 같은 ‘산별노조’를 지향한다. 가령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규직이든, 그 2차 하청 공장에서 사출 부품을 만드는 노동자건, 모두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같은 곳이야 나름의 파워가 있으니 사측과 교섭도 하고 쟁의도 할 수 있지만, 작은 공장들은 그러기 힘들다. 교섭력 확보조차 험난한 게 작은 사업장 노조들의 현실이다. 그 때문에 금속노조는 중앙이 보조하거나 지역별로 힘을 하나로 모아 대각선 교섭[3]과 지부별 집단 교섭[4]을 펼친다.


한데 어떤 회사 측이 안하무인으로 나온다고 치자. 임금 체불이나 열악한 현실에 열 받아 막 노조를 만든 작은 공장 노동자들은 쟁의 행위 한 번 하기도 매우 힘들다. 그때 산별노조 중앙이나 지역지부에서 힘을 합쳐 함께 싸우는 게 산별노조의 힘이다. 가령 출근 시간에 산별노조 활동가가 와서 피켓 하나 같이 들고 있는 것도 엄청난 힘이다. 정부 개정안은 이조차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이 지향하는 지향을 퇴색시키고, 중소영세 사업장이건 대기업 노동자건 그나마 구축해왔던 노동자들 간의 연대를 무너뜨린다. 노조할 권리를 침탈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감옥 보냈던 제3자 개입금지

1987년 여름을 돌아보자.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 물결 속에서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거리로 나섰다. 한데 가두시위 중 한 노동자가 최루탄에 직격당해 사망했다. 


당시 이 노동자를 위해 법률 자문을 해주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고, 변호사 자격도 상실한 바 있다. 이후로도 많은 부당한 탄압에 악용되다가 1997년 3월에 폐지됐다. 정부 개정안은 이것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 4호 라목의 단서 조항인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만을 삭제하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에겐 여전히 막혀있는 노조할 권리

'노조를 만들기 위해선 당국으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하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조도 만들 수 없다’는 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노조 인정은 가능해졌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여전히 외면하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ILO 권고와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응하려면, 노조법 2조의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고, 위의 규정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야 ILO가 권고하듯 해고 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노동자로 일하는데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25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노조할 권리’를 부여해야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노동자 대표가 사업장 접근을 포함해 그 기능의 적합한 행사를 위해 필요한 편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종사자와 비종사자 조합원을 구분하거나, 노조 활동에 차등을 둬선 안 된다. 이는 결사의 자유 원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기존 교섭권마저 후퇴

또한 정부 개정안은 단체교섭권을 여전히 제약한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함으로써 교섭권을 축소하고, 복수노조 하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존치한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한술 더 떠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안을 내놓았다.[5]


ILO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기본적으로 관련 당사자가 정할 사항이지만, 정부의 조치가 고려 중에 있다면 법은 노사정 합의를 반영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ILO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라는 권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항목은 정부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쪽에 가깝다. 그간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와 보수언론 등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4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을 과잉 침해한다. 더구나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함께 작동될 경우, 소수노조는 교섭대표 노조가 된 날로부터 최소 4년 이상 교섭 요구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교섭권도 없는 노조에 남아있을 노동자가 있을까? 이런 조치는 사형 선고에 다름없다.

사측이 추동해 어용 노조를 만들었던 무수한 사례들을 떠올려보자. 사찰과 감시로 노조 결성 낌새를 알아차린 회사 측은 사측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모아 어용 노조를 결성한다. 민주적 노조를 저지하기 위한 알박기 노조 사례도 즐비하다. 사측의 입김으로 어용 노조가 만들어지면 소수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아주 오랜 기간 아무것도 주장할 수가 없어진다.


교섭도 못하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1인 시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교섭권 박탈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내내 비판받아 왔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린다는 것은 이를 없애기는커녕 더 공고하게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자는 무슨 힘으로 현실을 바꾸나

개정안은 생산 및 그 밖의 주요 업무에 관련된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쟁의권을 심하게 제약한다.


가령 노동조합이 파업했을 때 사측이 불법적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했다고 쳐보자. 이는 흔하게 존재하는 일이다. 해당 개정안이 도입되면 노조는 더 이상 대체인력 투입을 감시하기 어렵다. 피켓을 들고 있거나 침묵시위를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왜 노동조합에게 파업할 권리를 부여했겠는가. 


직장인에겐 뭉쳐서 함께 싸울 권리 외에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조차 보장하지 못하면 노동자는 어떻게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나? 불가능하다.


직장점거는 그 자체로 폭력이 아니다. ILO 역시 직장점거를 쟁의행위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요약집』784항에 따르면, 쟁의행위 수단에 대한 제한은 오직 쟁의행위가 평화롭지 않게 될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직장점거를 금지함으로써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려는 정부 개정안은 오히려 ILO 원칙을 어긴다. ILO 헌장 19조 8항은 “어떠한 경우에도 (…) 협약의 비준이 협약 또는 권고에 규정된 조건보다 관계 노동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고 있는 법률, 중재재정, 관습 및 협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 활동에 대한 역주행

우리 사회 노동 문제를 극복하려면 기업별 노조보다는 산업별 노조를 지향해야 한다. 한데 개정안은 기업별 노조의 경우 실업자와 해고자 등 비종사자인 조합원의 노조 임원 자격을 제한한다. 


이는 ILO가 제시한 “노동자 단체가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과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가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다. 어느 기업에 속해 있느냐는 것은 기업의 구분일 뿐이지, 노동자들의 단결권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더구나 이는 실업자‧해고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법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또한 개정안은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삭제하면서도 근로시간 면제제도(이른바 ‘Time Off’) 한도 내에서 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타임오프를 존속한다. 또, 타임오프 한도 초과 단협이나 기존에 개별 사용자가 동의한 내용을 모두 무효로 한다는 규정까지 신설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것이 사업주들에 의한 청부 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1997년 도입된 현행 타임오프제는 이미 노동조합 운동의 역량을 현저하게 약화시켜왔다. 몇 년간 노동조합에서 상근 활동가를 하다가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할 일은 태산인데 활동가 수는 제한되어 있는 현실이 그 원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전임자 급여지급에 국가가 관여해선 안된다”며,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안은 ILO가 정한 국제기준을 역주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웃음거리 되지 말아야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정부 개정안은 오히려 재계의 손을 들어준 조치이며,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스스로를 우습게 만드는 개정은 ILO 핵심 협약 위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제노동기준에 부합된 개정안을 도출하고,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게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기회를 주어야 한다.


EU와의 FTA 문제 때문에 ILO 핵심 협약 비준이 시급하다면 얼마든 방법이 있다. 우선 협약에 비준하고, ILO가 정한 유예기간 동안 ILO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노조법을 개정하면 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와 같이 권고하고 있다.[6]


얼마 전 한 연구[7]에 따르면, 작은 사업장(1~29인)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4.0%로, 중규모 사업장 19.7%, 300인 이상 대기업 33.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61.1%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밝히고 권리를 확대하는 일의 관건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더 노조할 권리가 확대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조라는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없는 88.2%의 노동자들이다. 국제노동기준은 그러한 울타리 없는 노동자들에게까지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한국 정부가 계속해서 이를 부정하고 어긋난 방식으로 회피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 역시 내내 억눌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보이지 않는 노동’에 권리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박탈하는 길이다.


[1]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노동자 1,937만 명 가운데 노조 가입자는 233만 명으로, 가입률 11.8%로 집계됐다. 2017년 말에 비해 1.1%포인트 오른 수치다.


[2] 참고로 105호는 “정치적 강압이나 교육의 수단이나 정치적 견해 또는 기존의 정치‧사회‧경제 제도에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가지거나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현 정부 하 105호 비준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3] 대각선 교섭 : 산업별 노조가 개별 기업과 직접 교섭하는 방식


[4] 집단 교섭 : 여러 기업 지회들이 그에 대응하는 사용자들과 집단적으로 교섭하는 방식


[5] 「홍준표의 ‘노동 3법’ 발의…”강성·귀족 노조 견제”」, <조선일보> 2020년 7월 28일자 기사


[6]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 결사의 자유 관련 ILO 제87호, 제98호 협약 가입 권고」, 2018년 12월 12일


[7] 박종식(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작은사업장 분포 현황과 특성」, <오늘의 전태일 보고서 :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대안 모색 토론회>,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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