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메뉴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ㅍㅍㅅㅅ

이집트 문명, 인류의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통해 탐험하는 3가지 방법

5000년 이집트 왕권의 부흥과 쇠퇴를 알 수 있다(!)

5,832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이집트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인류 최고의 불가사의로 늘 손꼽히는 피라미드일 것이다. 그런데, 이 피라미드만 공부해도 이집트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다. 그 거대한 크기만큼 강력한 왕권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 피라미드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통해 5000년 말도 안 될 만큼 긴 이집트 왕권의 부흥과 쇠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듯 낯선 이집트에 대한 강의는 유명 고고학자 곽민수가 진행했다. 그와 함께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향하는 짧은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참고로 곽민수 학자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전체 이집트 역사를 조망했으니, 이집트라는 거대한 국가이자 문명이 궁금하다면 꼭 클래스e의 강의를 찾아볼 것!


0.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해둘 것은, 고대 이집트 국가가 우리 생각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클레오파트라의 경우 프톨레미가 부르는 이집트 후기에 존재한 인물이다. 이집트 문명의 시작부터 프톨레미까지는 2500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프톨레미부터 현대 사이에는 다시금 2050년이라는 시간 공백이 존재한다. 


총합 5천 년에 가깝다(…) 덕분에 역사 구분 방식도 무척 복잡하다. 기본적은 편년은 다음과 같다.

몇 가지 원칙만 기억해 두자. 이미지 속의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은 통일 이집트 시대로, 이집트가 인근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때이다. 사이 사이의 중간기는 이집트가 상하로 분리되어 별다른 힘이 없던 시기다. 


이 글에서는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나누어 피라미드를 다룰 것이다.


1. 고왕국 이전: 피라미드 이전의 무덤, 당시의 혼란기를 보여준다

최초의 파라오는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 파라오에 대한 기록은 존재한다. 바로 ‘메르네이트’라 불리는 인물이다. 공식 기록에서 파라오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문헌을 통해 사실상 통치했음이 증명된다.


그런데 이 여성의 무덤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아비로스에 있는 움 엘-카아브라는 유적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일종의 왕실 공동묘지로서, 파라오들만 안치될 수 있는 장소였다.

공동묘지라고 언급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아직 피라미드가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메르네이트가 집권하던 초기 이집트는 분명히 통일은 되어 있었지만, 중앙집권화의 경향이 강하지는 않았다. 내부적으로도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당시 집권하던 파라오들을 기념하는 조각상인 ‘세레크’의 상징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래 파라오의 상징은 ‘호루스’라는 매의 모습을 한 신이다. 그런데 파라오 페립센의 시대에 갑자기 개 모양을 한 ‘세트’라는 신으로 대체된다. 당대의 권력이 호루스를 숭배하는 무리에서 세트를 숭배하는 무리로 이동한 것이다. 아직은 갈등을 겪는 시대였던 것이다.


세레크가 호루스로 변화한 것은 카셈케위라는 파라오의 시대가 시작되면서였다. 카셈케위는 그냥 호루스와 세트의 장식을 둘 다 사용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카셈케위가 당대 갈등 중이던 세력을 통합했다고 추측한다. 그로부터 강력한 왕권을 지닌 고왕국 시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부터 바로 이집트의 대표적인 건축물, 피라미드가 지어지기 시작한다.


EBS 클래스e 바로가기

곽민수 학자의 강의 「우리 안의 이집트」 바로가기


2. 고왕국 시대: 거대한 피라미드, 그리고 강력한 왕권의 시대

고왕국 시대. 이 시기를 ‘피라미드 시대’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피라미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조세르라는 파라오가 건축한 계단식 피라미드다. 이 피라미드는 현대 아파트로 치환하면 25~30층(!)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건축물이다.


이 즈음의 특징이라면, 조세르의 피라미드를 포함해 이후에 지어진 피라미드는 건설 기간 동안 확장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거대하다 보니 완공 이전 파라오가 사망하는 경우가 잦았고, 따라서 후대의 파라오가 선대가 짓다 만 건물을 완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이외에도 붕괴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 등이 나타난 것이다.

붕괴 피라미드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추정에 따르면, 붕괴 피라미드의 경우 계단식 피라미드를 지으려다가 실패했다는 이론(…)이 유력하다. 굴절 피라미드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스네페루라는 파라오가 선대 파라오인 후니가 짓던 파라오를 이어서 짓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굴절 형태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네페루는 선대 후니가 짓던 피라미드를 완성시키는 작업과 자신을 위한 피라미드를 따로 짓는 작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후니의 피라미드는 붕괴해 버렸다. 피라미드의 경사각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네페루는 부랴부랴 자신을 위해 짓던 피라미드의 경사를 낮출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경사각이 도중에 굴절하는 굴절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외부의 모습 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굴절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 어쨌든 이를 바탕으로 스네페루는 ‘붉은 피라미드’라 불리는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아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피라미드는 후대의 파라오 쿠푸가 건설했다. 지금 기준으로 약 40층 건물에 해당하는 높이, 50도의 경사각을 이루는 거대한 피라미드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이후 3800여 년이 넘게 인간이 만든 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로 군림하게 된다.


이후 카프라와 멘카우라 등이 연이어 거대하고 훌륭한 피라미드를 건축하게 된다. 이 시점이 피라미드의 최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푸의 대 파라미드

그러나 전성기 이후 피라미드는 쇠퇴의 길을 겪는다. 직후 파라오로 즉위한 셉세스카프가 피라미드를 포기하고 초기왕조 시대에 무덤으로 사용되던 마스타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주로 귀족층이 사용하던 무덤 양식으로, 파라오의 무덤으로는 격이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방식이었다. 신관들과의 갈등으로 선택된 양식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왕의 무덤은 다시 피라미드 양식으로 돌아오지만, 퀄리티가 상당히 나빠졌다. 국가적 역량을신전 건축 등에 나누어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요한 원인은 이집트의 국가권력 자체가 이전 대비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파라오의 권위 자체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우나스의 피라미드 현실 내부에는 문자가 가득 적혀 있다. 이 시기부터 파라오의 신성성이 부정당하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영면을 기원하기 위해 문자를 새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피라미드의 의의를 추측할 수 있다. 이집트의 국가적 역량, 파라오의 권위, 내부의 이데올로기 등이 반영된 총체적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3. 중왕국 시대: 새로운 부흥, 그리고 ‘벽돌 피라미드’의 탄생

앞서 언급했듯, 고대 이집트는 몇 차례 통일과 분열을 반복해 경험했다. 이 시기의 이집트를 다시 통일한 것이 멘투호테프 2세이다. 그의 시대는 군사활동이 중심이 되던 군국주의 시대였다. 그는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과는 다르게, 피라미드가 아닌 암굴묘(바위산을 깎아 만든 형태의 묘)를 사용하였고, 그 옆에 신전을 세우기도 했다.


이때 신전 뒤편의 지형은 피라미드와 같은 산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직접 건설하는 대신, 자연지형을 이용해 피라미드의 모습을 재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암굴묘

사실 멘투호테프 2세의 무덤과 신전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후대의 파라오들은 다시금 피라미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멘투호테프 2세 이후의 파라오 아메넴헤트 1세는 수도도 기존의 멤피스에서 이티 타위라는 지역으로 천도했다. 고왕국 시대처럼 강력한 이집트를 건설하려는 노력이자 상하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즈음의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주재료가 벽돌로 바뀐 것이다.

이 시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메넴헤트 이후 이집트는 다시 국가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국경도 확장했다. 문화적으로도 매우 부흥했다. <시누헤 이야기> <난파당한 선원 이야기> <말 잘 하는 농부> <자신의 영혼과 대화한 남자>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 시기에 쓰여졌다. 매우 화려한 장신구들도 만들어졌다.

참고로 이 시기에는 파피루스가 무척 귀했다. 그래서 학생이나 공무원은 ‘오스트라카’라고 부르는 석회암판에 문학 작품을 반복하며 필사하며 공부했다. 이때 남은 기록물들이 오늘날 이집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4. 신왕국 시대의 무덤: ‘왕들의 계곡’과 인류 최초의 파업

이후 나타난 제2중간기를 17왕조가 통일하면서 신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신왕국 시대는 우리에게 친숙한 람세스와 투탕카멘이 활약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이집트를 부흥시킨 파라오 투트모세 1세는 무덤도 매우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도굴 방지를 위해 왕묘를 계곡 깊숙한 곳에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의 무덤이 모인 장소를 ‘왕들의 계곡’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바람과는 달리 대다수의 무덤이 도굴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 신왕국 시대에는 독특한 시대 양상이 나타난다. 바로 인류 최초의 ‘노동자 파업(!)’이 나타난 것이다. 파업을 주도한 이들은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던 일종의 장인들, 예술가들, 노동자들이었다.


파라오의 무덤 조성 작업은 철저한 보안에 싸인 국가적 극비사항이었다. 그래서 이 작업에 참여하는 400~500여 명의 주민들은 약 70여채의 주택에 모여 살며 높은 수준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의 문서를 보면 경제적 문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당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신전에 들어가 밤샘 농성(…)도 벌이는 등 시위를 극단적으로 연출했다. 인류 첫 파업의 결과는 총리대신으로 받은 서신 등을 확인해 볼 때 어느정도 성공했던 것 같다고.

급여 밀리면 파업해야지 고럼고럼

마무리하며

고대 이집트는 태생적으로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시간상으로는 수천년의 공백이 있고 공간도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다. 시공간적으로 가장 먼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는 훨씬 친숙하기도 하다. 이집트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문화적 저변이 상당히 넓기 때문이다. 일례로 피라미드와 파라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디아나 존스>, <이집트의 왕자>, <미이라> 등 이집트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많다. 심지어 롯데월드에는 ‘파라오의 분노’라는 어트랙션도 있다.


하지만 고증은 정확하지 않은 편이다. 여성의 머리 장식을 남성이 착용하고 있다거나, 본래 붙어 있어야 할 동상의 다리 사이가 벌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아마 한국 내 이집트 관련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국내는 대중의 관심에 비해 이집트 관련 강의나 전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만약 이집트의 문화가 궁금하다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보자.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집트 관련 전시를 2회 진행했는데, 모두 흥행 면에서 2위와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바 있다. 덕분에 현재는 아예 박물관 3층에 ‘이집트 특별관’이 조성되어 대여해온 유물들로 장기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언제 찾아가도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말.


이집트의 전체적인 역사를 알고 싶다면, 이집트의 탄생부터 멸망까지 다루고 있는 고고학자 곽민수의 강의를 EBS 클래스 e에서 들어보자. 한 강당 25분, 총 10강으로 이루어진 집중력 높은 강의가 이집트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EBS 클래스e 바로가기

곽민수 학자의 강의 「우리 안의 이집트」 바로가기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