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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조차 불평등하게 찾아오는 사회, 김누리 인문학 교수의 일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고통조차 약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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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이 보여준 불평등의 민낯

코로나19 유행이 한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겨내자고.


하지만 사실, 코로나19의 충격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건 너무나도 명백히, 더 약한 사람들, 소수자들을 훨씬 더 힘들게 한다.


한 자동차 회사는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자, 본사 소속 정규직 직원에게는 1급 방진 마스크를,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직원에게는 방한용 천 마스크를 지급했다. 노골적인 차별에 사람들은 혀를 찼지만, 그건 현실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직에게는 방진 마스크를, 비정규직에게는 천마스크를.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여전한 비민주성

몇 년 전,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위대한 사건을 경험했다. 대통령 탄핵이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그를 끌어내렸다.


그때 우리가 보았던 건 완벽하게 작동한 ‘정치’였다. 수백만의 민심이 폭발했지만, 폭력적인 진압은 없었다. 국회는 민심을 거스르는 대신, 여당 일부까지 동참해 탄핵을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도 엄밀한 절차로 탄핵 심판을 진행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토록 놀라운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코로나19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을 폭로했다. 생명을 지킬 권리, 건강할 권리, 감염병 앞에서 안전할 권리 – 이건 아무리 세상이 불평등하다 해도, 그래도 최소한 지켜야 할 마지막 평등의 보루다. 코로나19는 그게 사실 허상이라는 걸, 삶이라는 권리조차 사실은 불평등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은 위 질문에 대한 김누리 인문학 교수의 답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이 근본적인 불평등, 비민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한 김누리 교수의 강의를 떠올렸다. 그는 장애인 시설을 기피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빌고 있는 장애인 어머니들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는 돈의 관점에서 인간을 본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불평등한 불행’ –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고난과 고통조차 약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엇이 이런 불행의 불평등을 만들었을까. 왜 우리의 불행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는가.


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68혁명’을 겪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물론 우리는 세계가 놀랄 민주화 혁명들을 이뤘다. 4.19, 6월 항쟁, 최근의 촛불 탄핵까지…


그럼에도 우리는 68혁명을 겪지 못했다. 군사정부와 국정농단을 몰아냈을지언정, 봉건적 체제, 가부장제, 젠더 고정관념, 무한 경쟁 자본주의… 이 모든 종류의 억압에 대해 의심하고, 해방을 추구했던 그 ‘혁명’의 과정을 우리가 겪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김누리 교수는 말한다.


68혁명,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혁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김누리 교수는 68혁명을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의 가치질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회를 지배해온 그 모든 질서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큰 호응을 얻어 연관검색어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가치질서란 무엇인가? 그는 방송과 책에서 세계적인 철학자가 본 한국의 모습을 인용한다. 1. 끝없는 경쟁, 2. 극단적 개인주의, 3. 일상적 사막화, 4. 생활 리듬의 초 가속화다. 굳이 풀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68혁명이 얼마나 유의미했는지는 동성애만 봐도 알 수 있다. 68혁명은 젠더 고정관념을, 유럽은 성소수자에 대해 완벽하진 않아도 열린 자세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동성애에 ‘반대’한다. 아니, 대놓고 ‘혐오’한다.


한국사회는 ‘사회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쉬운 ‘관성’에 의존해 무언가를 금지하고, 반대하고, 강요한다. 우리는 그 ‘관성’을 넘어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질문을 던지면 낙인을 찍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불행해진다.


소수자의 고난은 어디서든 계속된다

동성애 얘기가 좀 뜬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 문화적 불평등은 어디에서든 튀어나와 약자들의 목을 옥죈다. 심지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코로나19 유행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의 한 콜센터.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택근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1m 간격의 좁은 공간에서 마스크도 못 쓰고 일해야 했다. 반면 대기업 화이트칼라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 말이 조금 잘 안 들리더라도, 최소한 마스크라도 쓰고 일할 수 있게 해 줬다면 어땠을까.

콜센터는 이런 닭장 같은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어쩌면, 월급이라도 받는 직장인들은 상황이 나은 건지도 모른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이들에겐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타다. 텅 빈 식당과 술집에, 언제 손님을 돌아올지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 더한 절망을 낳는다.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럼, 68혁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은 68혁명이 낳은 제도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의 큰 기업은 이사회가 20명인데, 그중 10명은 주주가 뽑고 10명은 노동자가 뽑는다. 당연히 노동자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웹툰 ‘송곳’에서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노무사는 대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경제적, 사회적 평등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의 선의가 근로자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건 시스템의 몫이다. 독일처럼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장치뿐 아니라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존 체제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청소년은 높은 자살률에, 성인은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왜 바뀌지 않는가?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가

하지만 야당 대표 황교안은 그 와중에도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노동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최저임금을 더 낮춰야 한다고.


책은 우리 사회를, ‘보수와 수구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라고 칭했다. 복지도, 재정지출도 유럽에 비하면 한참 낮다. 문재인 정부도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황교안이 보기엔 그런 문재인 정부도 좌파다.

응…?

학벌사회는, 그런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잔인하다. 명문대 대나무숲을 보면, 대학 경쟁이 곧 신분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대학생들이 여럿 보인다. 그렇게 신분을 정해 그 기득권을 지키려 안달을 한다.


조금 늦은, 지각생의 68혁명을 위하여

책은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자체라고. 우리에게 ‘68혁명’이 없었음을, 우리의 민주화는 아직 미완임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일 것이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유럽은 우리보다 앞서 많은 실패를 겪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독일 나치는 역사상 가장 최악의 인종차별을 일으켰다. 어쩌면 지금 유럽의 사회 시스템은 그 실패에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행히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경제적으로 충분히 성장했으며, 탄핵 사태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높은 국민성도 가지고 있다. 지각생이긴 해도, 그 어떤 나라보다 제대로 할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할 수만 있다면. 아마, 이 책은 우리에게 소중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 해당 기사는 해냄출판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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