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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나는 “건축학개론”이 조금 불편했다

오히려 첫사랑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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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첫사랑 영화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줄 알았다. 모두 그렇게 열광한 〈건축학개론〉을 난 아무리 봐도 ‘현 연인 바보 만들고 바람피우는 영화’로밖에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계속 넘나들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어린 승민이와 서연이 그리는 장면들은 참 예쁘지만 현재로 돌아올 때마다 첫사랑의 집을 지어주고자 결혼 날짜를 미루고, 단둘이 술을 마시고, 키스를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약혼녀가 비행기 안에서 그의 어깨에 기댈 때 서연 생각에 표정이 심란한 어른 승민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못났다. 결혼 준비는 예비 신부에게 다 맡겨놓고 지금 뭐 하는 짓인지. 과거 대학교 다닐 때 둘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든지 간에 현재 시점으로 넘어올 때마다 과거가 그렇게 현재를 마구마구 침범해오는 것이 그 시절에 대한 예의도, 약혼녀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사람들이 하도 아름다운 영화라고 하길래 내가 연애 중이어서 제대로 감정이입을 못 하고 봐서 그런가 싶어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 두 번이나 더 봤지만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누가 〈건축학개론〉 이야기를 하면 ‘아, 전에 짝사랑했던 여자랑 바람피우는 영화?’라고 비꼬며, 나의 감수성 부족을 탓했다. 나도 짝사랑 경력으로 어디 가서 명함 못 내밀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출처영화 〈건축학개론〉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시작조차 못 해본 첫사랑.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쉽고, 동경하고, 살면서 많이 생각날 수는 있다. 극 중 엄태웅은 첫사랑을 원망했고, 연락이 끊긴 채로 쭉 살았다.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본인도 다른 사랑을 하며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아쉬운 감정이 그냥 가볍게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코앞에 두고 저렇게 행동할 만한 정도인가? 저 첫사랑이 정말 저 정도였나? 그 부분에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졌다. 첫사랑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이 우스워진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괴리가 어른 승민과 서연에 대한 공감을 어렵게 했다.


그런데 〈라라랜드〉와 〈너의 결혼식〉은 나의 감수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물론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의 첫사랑은 아닐 수도 있지만, 첫사랑이 꼭 말 그대로 순서를 뜻하는 first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love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개념일 수도 있으니까. 그들이 한 유일무이한 연애,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고 자신의 꿈이었던 클럽 이름을 로고까지 그대로 미아가 지어준 것으로 바꾼 것, 마지막에 그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 것으로 서로에게 첫사랑에 버금가는 지위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두 영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더 진하게 다가왔다. ‘그 사랑이 저 정도였다고?’라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둘에겐 어렵게 함께 만든 아름다운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가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했음에도 망가져 버렸다.


힘들게 인연이 닿아 연애를 시작하고,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뜨겁게 사랑을 속삭이고, 서로의 중요한 시기에 힘이 되어주고. 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마주치며 그 알콩달콩했던 시절이 무색하리만큼 멀어지고. 싸우고. 기대하고. 또 싸우고. 결국 헤어지고. 연애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행복과 서운함, 상실감, 자격지심. 진심일 수도, 진심이 아닐 수도 있는, 끝을 재촉하는 안타까운 말실수들. 그 표현 방법이 놀라웠다.

출처영화 〈라라랜드〉

그렇다고 아예 시작조차 못 한 첫사랑의 아쉬운 감정이 덜하다는 걸 주장하는 건 아니다.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바로 그런 사랑을 그리는데 커징텅에게 션자이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여주의 결혼식에 갔을 때 얼마나 아쉬웠을지, 그 사랑에 충분히 공감했으니까. 커징텅은 첫사랑이었던 션자이를, 한 번도 제대로 시작해본 적 없던 그 소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때론 가까이, 때론 먼발치서, 계속 주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승민은 어땠는가.


무엇보다 공감하기 편했던 건 마지막이자 현재 사랑인 결혼 앞에서의 첫사랑의 태도이다. 첫사랑 영화들의 존재 이유, 목적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첫사랑 영화의 목적은 교육일까? 아니면 교훈일까? 역시 사랑은 타이밍인지 아닌지 토론하라고? 권고일까? 첫사랑을 잊지 말고 어서 연락해보라고? 굳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영화를 왜 만들까? 해피엔딩도 아니고, 이미 다 끝난 얘기인데 말이다.

출처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첫사랑은 과거다. 그러니 그 어떤 액션도 요구되지 않는다. 결혼할 것도 아닌데 내가 첫사랑을 왜 했을까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랑은 그냥 그 시절에 존재했다는 그 자체로 예쁘며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이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는 마음은 세바스찬처럼 마지막에 한마디도 서로 건네지 않고 그저 피아노곡 하나로, 우연이처럼 행복했던 시절 승희에게 받았던 ‘복도 많지, 날 낚다니’라는 그림체를 보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그 간격을 지키는 것과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인정이 바로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며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그에 반해 〈건축학개론〉의 첫사랑은 자기주장이 쓸데없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증명해 보이려 노력하는 느낌을 준다. ‘내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첫사랑이다!’라며. 극 중 수지와 이재훈이 그려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그런 사랑의 공감대가 엄태웅과 한가인이 그린 이야기로 무너졌다.


첫사랑이니까 그들처럼 행동해도 괜찮은가? 결혼 직전에 10년 전 첫사랑이 찾아오면 우린 저렇게 행동하려나? 은연중에 첫사랑이니까 면죄부를 던져준 것 같다. 나에겐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말을 오해해서 첫사랑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영화였다.


원문: 상추꽃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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